본문 바로가기

[부부의사가 쓰는 性칼럼] 신사임당의 눈물

중앙선데이 2013.03.24 01:20 315호 20면 지면보기
“저는 신사임당 같은 현모양처로 살아왔다고 자부해요. 최선을 다했는데 왜 이 지경이 된 건지….” 남편의 외도로 가정 붕괴의 위기를 맞은 중년 여성 S씨. 한국엔 S씨처럼 ‘신사임당 같은 현모양처’를 모토로 살아온 여성이 많다. 그런데 신사임당이 위인임에는 틀림없지만 행복한 삶을 살지는 못한 것 같다.

 알다시피 신사임당은 이율곡의 어머니로, 어머니와 아내의 자격에 있어선 으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어려서부터 영특했던 사임당은 부친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딸의 재능을 높이 산 부친은 결혼 후에도 딸이 서화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일부러 좀 만만한 사윗감을 골랐다.

 남편은 과거공부에 집중한다며 집을 떠나 산에서도 살았고, 홀로 자녀를 키운 신사임당은 그런 남편과 10년간 떨어져 지냈다. 한 번은 아내가 그리워 집으로 돌아온 남편을 질타해 돌려보낸 적도 있다.

일러스트 강일구
 남편의 입신양명을 위한 신사임당의 내조와 고귀함이 오히려 부담이 되었던 것일까. 남편은 주막집 권씨와 외도를 했고, 이는 사임당의 귀에도 들어간다. 무식하고 천한 권씨와 외도행각을 벌인 남편에게 신사임당의 실망과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스트레스 탓인지 급기야 병석에 눕게 되었고, 끝내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순간까지 신사임당은 남편에게 자신이 죽더라도 그 주모를 후처로 들이지 말라고 애원했다. 사임당의 간절한 부탁에도 남편은 사임당이 죽은 뒤 기다렸다는 듯이 권씨를 후처로 맞아들였다. 권씨는 신사임당 소생의 자녀들을 구박하고 못살게 굴었는데, 사임당이 특히 아끼던 아들인 율곡 이이와 마찰이 컸다고 한다.

 어머니 사망 당시 15세였던 사춘기의 율곡은 모친의 사망과 부친의 재혼에 충격을 받고 승려가 되기도 했다. 종교에 귀의해 마음을 추스른 덕인지 얼마 후 집으로 돌아온 율곡은 새어머니의 구박에도 극진하게 효도를 했다. 율곡 이이는 처첩제도에 대해 비판적이었는데, 그런 율곡도 결혼 후에 첩을 두 명이나 뒀다는 것은 당시 사회제도를 감안하더라도 이율배반적인 면이 있다.

 남편과 자녀에게 헌신했던 신사임당이 왜 결혼생활을 불행하게 끝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부부가 10년을 떨어져 지낸 것도 전문가의 눈엔 문제점으로 보인다. 함께 살며 시간을 공유하지 못한 부부관계는 멀어질 위험이 크다.

 한편으론 남편에게 입신양명의 목표와 너무 교과서적인 이상만을 요구했다면 문제였을 수 있다. 부부관계는 때론 원초적인 본능에 자연스레 몸과 마음을 맡겨야 하는데, 교과서적이다 보면 어색해진다. 언제나 반듯하고 정숙하고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내를 남편은 숨막혀 했을 수 있다. 이유야 어떻든 남편의 외도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훌륭한 아내를 두고도 천박하고 원초적인 여성과 외도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분명 있다.

 현대에 태어났다면 원하는 삶을 당당히 살았을 천재 예술가 신사임당이 남편의 외도에 맘고생을 하며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참 안타깝다. 비록 남편과의 관계는 불행했지만, 신사임당은 귀감이 될 여성임은 분명하다. 부부 사이에 올바른 성품과 학식도 중요하지만, 알콩달콩 자연스러운 친밀관계나 애정관계가 없다는 것은 서로 불행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