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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자신과 싸웠고 … 아사다, 연아와 싸웠다

중앙선데이 2013.03.24 01:31 315호 21면 지면보기
김연아(왼쪽)와 아사다 마오의 주니어 시절 모습.
누구는 김연아(23)가 모차르트, 아사다 마오(23·일본)는 살리에리 같다고 한다. 밀로스 포먼 감독은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따라가지 못한 살리에리의 좌절과 질투를 그렸다. 김연아는 2년 만에 나선 2013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올 시즌 여자싱글 최고 점수(218.31점)로 우승했고, 마오는 3위(196.47점)에 그쳤다.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에 이어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에서도 아사다는 김연아에게 왕관을 내줘야 할 처지다.

두 피겨 천재의 엇갈린 운명, 왜?

 축구로 치면 김연아는 리오넬 메시(26·FC 바르셀로나), 마오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7·레알 마드리드) 같다는 비유도 있다. 둘은 스페인 라이벌 팀에 소속돼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비교되지만 호날두에게 ‘축구의 신’ 메시는 결코 넘지 못할 존재다. 『삼국지』에서는 촉나라 제갈량의 지략을 이기지 못한 오나라 주유가 “하늘은 왜 나를 낳고 또 제갈량을 낳았는가”라며 원망했다. 동시대에 태어나 서로 다른 편에 서는 건 고약한 운명이다. 더구나 한쪽이 모차르트나 제갈량 같다면 그 운명은 더욱 가혹하다.

2004년부터 15경기서 만난 '징한' 라이벌
“분하다.” 아사다는 지난 18일 캐나다 런던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를 마친 뒤 완패를 시인했다. 단지 한 대회에서 패한 소회가 아니었다. 지난 10년간 경쟁한 김연아에 대한 솔직한 심정이었다. 김연아는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뒤 사실상 잠정 은퇴 상태였다. 그러고는 2년 만에 세계무대로 돌아와 여자싱글을 다시 평정했다. 캐나다 일간지 ‘글로브 앤드 메일’은 “김연아는 다른 별에서 연기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김연아가 돌아온 것만으로도 아사다는 흔들렸다. 이번 시즌 치른 5개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며 승승장구했던 아사다는 눈빛부터 불안정했고 점프 실수를 했다. 아사다는 “강한 라이벌을 만나 분하다”고 했다. 피할 수는 있어도 이길 수 없는 상대, 세상사람들이 비교하기를 너무나 좋아하는 상대를 가진 아사다의 원망과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난 말이었다.

 김연아도 아사다를 의식한다. 대회를 마치고 김연아는 아사다와의 인연에 대해 한마디로 요약했다.
 “징하다.”

 승자와 패자가 처음부터 결정돼 있었던 건 아니다. 천재 소리는 아사다가 먼저 들었다.

 아사다는 피겨선수였던 언니 아사다 마이를 따라 스케이트를 시작했다. 꼬마는 어느 순간 점프를 성공했다. 마이를 피겨선수로 만들기 위해 온 신경을 쏟았던 아사다의 어머니도 깜짝 놀랐다. 피겨 천재의 탄생. 아사다는 일찌감치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 기대주로 주목받았다. 일본빙상경기연맹을 비롯해 각계의 지원을 받아 풍족하게 훈련했다. 주니어 시절 각종 대회를 휩쓴 아사다는 일본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처음 마오 선수와 마주친 경기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렸던 2004년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이었다. 나와 비슷한 체형, 같은 나이였다. 연습 때도 마오 선수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너무나 가볍게 점프들을 성공시켰다. 트리플 악셀도 실패하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세상에 뭐 저런 애가 있나’ 하고 생각했다.”
 -김연아 자서전 『김연아의 7분 드라마』 중-

 아사다는 이 대회를 비롯해 주니어 첫 시즌(2004~2005 시즌) 모든 대회에서 김연아를 앞섰다. 자서전에서 김연아는 “자존심이 상했다. 왜 하필 저 아이가 나랑 같은 시대에 태어났을까 이런 생각도 들었다”고 속상했던 감정을 드러냈다.

 주니어 시절 아사다는 세상 꼭대기에 있는 것처럼 자신만만했다. 김연아는 아사다의 존재에 가렸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두 사람의 운명은 뒤바뀌었다. 서로를 대하는 생각의 차이 때문이었다.

아사다의 트리플 악셀 집착도 연아 때문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피겨선수, 1m65㎝에 약간 미치지 못하는 키, 동양인답지 않게 길고 가는 팔다리 등 체격조건까지 둘은 많은 점에서 닮았다. 김연아와 아사다는 2004년 이후 10년 동안 15경기에서 만났다. 둘이 만나면 국가대항전이었다. 어린 소녀들에겐 엄청난 부담이었다.

 김연아는 자신과 싸웠다. 아사다와의 라이벌 의식을 묻는 집요한 질문에 “아사다를 이기려고 피겨를 하는 건 아니다”고 답했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더 보강했다. 김연아는 ‘록산느의 탱고’ ‘죽음의 무도’를 발표하며 피겨계의 주목을 받았다. 트리플 악셀을 하지 않은 대신 다른 점프들을 보강했다. 빠르고 높은 그의 점프는 피겨의 교과서가 됐다. 자신감이 생기자 작품 이해력과 표정 연기가 훨씬 더 좋아졌다.

 라이벌 구도는 양쪽 모두에게 고단하다. 굳이 더 피곤한 쪽을 꼽자면 추월당한 아사다였다. 시니어 무대로 올라온 뒤에도 아사다는 2007~2008 시즌까지 4승3패로 김연아를 앞섰다. 그러나 격차는 점차 줄어들었고 아사다가 더 큰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후 8차례의 맞대결에서 김연아가 6승2패로 이겼다. 아사다는 무섭게 성장하는 김연아를 초조하게 바라봤다. 경기가 끝난 뒤 눈물을 떨어뜨리는 일이 잦았다.

 두 선수 공통의 목표였던 밴쿠버 올림픽. 큰 무대에서 둘의 차이는 더 확연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아사다는 흠 잡을 데 없는 연기를 펼쳐 관중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열기가 채 식기 전에 김연아가 등장해 ‘본드 걸’ 연기를 펼쳤다. 보란 듯 ‘클린’을 해내며 78.50점을 얻었다. 아사다보다 4.72점 많은 세계기록이었다.

 프리스케이팅에선 김연아가 먼저 나와 세계기록(150.06점)을 세웠다. 합계 228.56점. 패배를 예감한 아사다는 점프에서 여러 차례 실수를 했고, 결국 완패했다. 정재은 대한빙상경기연맹 심판이사는 “프리스케이팅이 끝난 뒤 아사다가 화장실로 뛰어가 우는 모습을 봤다. 안쓰러웠다”고 떠올렸다.

 아사다가 트리플 악셀에 집착하는 것도 결국 김연아 때문이다. 아사다는 여자싱글에서 트리플 악셀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선수다. 또 그게 아킬레스건이다. 주니어 시절 곧잘 뛰었던 트리플 악셀의 성공률이 최근 극히 떨어졌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프리스케이팅에서 트리플 악셀을 비롯해 7개의 점프 중 6개를 실패하기도 했다.

 이후 아사다는 트리플 악셀을 포기했고, 올 시즌 4차례의 대회에서 우승했다. 그러나 김연아의 복귀와 함께 아사다는 다시 트리플 악셀을 뛰었다. 방상아 SBS 해설위원은 “다른 점프도 썩 좋진 않기 때문에 트리플 악셀을 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착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일본 방송인 데리 이토는 세계선수권 대회 중계를 하며 “김연아는 자신 외에 다른 이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느낌이다. 그러나 아사다가 라이벌을 의식하는 게 남들 눈에도 보인다”고 말했다.

 아사다가 스스로에게 더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아사다는 “너무 강한 라이벌 덕에 나도 성장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김연아는 라이벌을 의식하는 대신 자신의 잠재력을 세상 밖으로 꺼내 뽐냈다. 어쩌면 아사다는 김연아를 추격하느라 자기 길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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