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60년 간 한결 같은 명성 …구찌 장수 비결은 장인의 손길

중앙일보 2013.03.22 04:10 Week& 10면 지면보기
1 1953년 구찌 홀스빗 로퍼의 디자인 스케치
이탈리아 브랜드 ‘구찌(Gucci)’의 단화(短靴), ‘홀스빗 로퍼’가 세상에 나온 지 예순 번째 해를 맞았다. 1953년 산(産).

이탈리아 구찌 단화 ‘홀스빗 로퍼’



꽤 긴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이 브랜드의 대표 신발로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대개 해외 유명 브랜드는 이따금씩 고유의 ‘장인 정신’을 홍보하기 위해 언론 관계자, 특급 고객 등을 초청해 제작 현장을 공개한다. 집중을 요하는 장인의 작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1년에 한두 차례만 현장 취재가 가능하다. week&이 제작 현장을 찾아 이 구두의 장수 비결을 살펴 봤다. 구찌 ‘홀스빗 로퍼’는 이탈리아 문예부흥의 본산인 피렌체 서북쪽 온천마을 몬숨마노테르메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피스토야(이탈리아)=강승민 기자



유명 고가 브랜드 국제화의 시초



구찌의 ‘홀스빗 로퍼(horsebit loafer)’는 1953년 세상에 처음 선을 보였다. 홀스빗은 말 안장 양 옆으로 늘어진 줄 끝에 달린 등자(<9419>子)를 가리킨다. 양 발을 넣도록 돼 있는 반원 형태의 고리 부분이다. 로퍼는 편하게 신는 목 짧은 단화란 뜻. 구두에서 발등을 덮는 갑피 부분 제일 위쪽에 등자 모양의 금속 장식이 달려 있어 ‘홀스빗 로퍼’로 이름이 붙었다. 구두의 종류로 따지면 ‘모카신(moccasin)’에 속한다. ‘인디언의 신발’로 알려진 모카신은 신발의 틀이 잡혀 있지 않아 ‘양말 같은 구두’로도 불린다. 이 구두가 태어난 53년도는 구찌 브랜드 창립자인 구치오 구치의 세 아들 알도·바스코·로돌포가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장하기 시작한 때다. 미국 뉴욕에 사무실을 열고 당대의 할리우드 스타들에게 브랜드와 제품을 알렸다. 이탈리아 영업에만 집중하던 브랜드가 홀스빗 로퍼란 대표 상품을 들고 미국이란 최대 고가 시장에 적극 진출한 것이다. 할리우드 스타들 눈에 든 이 신발은 금세 유명해졌다. 배우 알랭 들롱, 클라크 게이블, 존 웨인, 영화감독 프랜시스 코폴라 등이 애용했다. 80년엔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마련한 ‘패션 명예의 전당’에 선정돼 소장품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패션 역사에서 이 구두가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 홀스빗 로퍼에 천연 염료를 묻혀 낡은 듯한 가죽 느낌을 내는 작업 3 완성 직전의 구두 갑피 윗 부분을 다듬는 과정 4 구두 제작의 마무리 단계에서 별모양 인두로 멋을 내는 단계 5 홀스빗 로퍼 60주년 기념 상품
구둣골 직접 제작 … 명품 브랜드 중 유일



브루노 감바키 구찌 신발제작 총괄의 안내로 홀스빗 로퍼 제작 과정을 살펴 봤다. 처음 안내 받은 곳은 구둣골을 만드는 곳이었다. 작업자들은 연구소 박사들처럼 흰 가운을 입은 채로 도면을 들여다 보며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어떤 작업자는 발 모형을 들고 요모조모 살펴보고 있었다.



감바키 총괄은 “구둣골을 직접 만드는 명품 브랜드는 구찌뿐”이라고 주장했다. 영어로 ‘라스트(last)’라 불리는 구둣골은 구두를 만드는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전 과정에 쓰인다. 그 위에 가죽을 덮고 못질을 하고 구두 모양을 잡아 가죽에 광을 낼 때까지, 작업 과정 내내 라스트가 실제 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애초에 구둣골 자체를 잘못 만들면 편한 신발도, 아름다운 신발도 만들 수 없는 것이다. 감바키는 “새로운 구둣골을 만드는 데만 두 달 넘게 걸린다. 구두 디자인별로 라스트 개발을 다 따로 해야 할 만큼 까다롭다. 그러니 웬만한 명품 브랜드라 해도 전문업체에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구찌 역시 라스트 제작 부서를 회사 내부에 둔 건 2001년부터다. “디자인 기밀 유지, 장인의 기술 보존 등에 필요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게 그 이유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라스트 자체 제작 유일 브랜드’란 자부심 때문인지 이 부서에 대한 설명이 길게 이어졌다. 요지는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으로 편한 신발을 만들 수 있다는 거였다. “정말 편안한지, 신어보기 전까진 모르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표준 사이즈로 시제품을 만들어 실제 보통 사람에게 신겨 본다. 평범한 발 모양, 통통한 발 모양, 날씬한 발 모양 등 세 종류로 한다. 일주일쯤 평소 생활하는 곳에서 신어본 사람들에게 소감을 듣고 라스트를 수정한다. 수정한 라스트로 표준 사이즈, 그보다 반 사이즈 큰 것과 작은 것, 세 가지 시제품을 만들어 같은 방법으로 실험한다. 이 테스트를 모두 통과해야 ‘편안한 라스트’ 검증이 끝난다.”



인간적인, 인간을 위한 상품 생산



취재를 위해 공장에 들어서기 전, ‘상품 재료인 가죽의 냄새, 신발 제작에 쓰는 접착제 등 온갖 화학 약품 냄새로 머리가 어지러울 것’이란 예상을 했다. 하지만 안내하는 어느 누구도 보호장비 착용을 권하지 않았다. 현장의 장인들도 마스크나 보호 안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작업에 열중하는 장인에게 “마스크를 안 써도 괜찮으냐”고 질문했다. 오히려 질문 받은 장인이 기자의 질문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감바키는 “가죽 자체도 화학 처리를 최소화한다. 화학 약품으로 수질을 오염시키면 안 된다는 까다로운 규제가 있는 덕분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생산된 가죽만 써야 하는 것도 명품 브랜드의 의무다. 작업에 쓰는 접착제도 그렇다. 구두를 신는 고객도, 만드는 장인도 건강해야 하지 않겠나. 천연에 가까운 접착제를 쓰기 때문에 공장 안 공기가 정말 깨끗하다”고 설명했다.



홀스빗 로퍼 제작의 마지막 단계는 광내기와 인장 찍기. 대량 생산하는 기성화는 수십 켤레의 신발을 기계에 걸어 한번에 광택을 낸다. 하지만 홀스빗 로퍼는 장인 한 명이 수작업으로 가죽의 상태를 살펴가며 광을 내고 있었다. 감바키 총괄은 “사람 눈, 사람 손보다 정확한 건 없다는 게 우리의 원칙”이라고 했다. 광내기 장인은 마지막으로 별 모양 쇠를 불에 달궈 구두 굽 끄트머리에 별 도장을 찍고 있었다. 예부터 구두 장인들이 자신의 작업임을 표시하기 위해 하던 일종의 문장 새기기라고 한다. 지름 5mm도 안 돼 보이는 장식을 끝으로 ‘작품’ 하나를 완성해 낸 장인의 표정에서 뿌듯한 자부심이 읽혔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