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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양의 진주, 그 속에서 부처의 분신을 만나다

중앙일보 2013.03.22 04:10 Week& 4면 지면보기
1 담불라 최대 석굴이며 가장 뛰어난 ‘위대한 왕의 사원’인 제 2 석굴. 56개 불상과 벽화가 있다.

하늘길 열린 불교와 홍차의 나라 스리랑카



‘인도양의 진주’로 불리는 스리랑카는 인도 남동쪽에 자리한 아름다운 섬나라다. 기원전 6세기쯤 북인도의 싱할라족이 이주해 처음으로 왕조를 세웠다. 한반도의 3분의 1 크기에 불과하지만 일찍이 인도의 영향으로 풍성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2000여 년 전의 초기 불교 유적이 열대림 곳곳에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8곳이나 되는 이유다. 그중에도 석가모니의 치아 사리를 봉안한 ‘캔디’의 불치사(佛齒寺)와 스리랑카 최대 석굴사원인 ‘담불라’의 황금사원, 싱할라



왕족의 비극이 깃든 고대도시 ‘시기리야’의 바위 요새가 유난히 인상에 남았다. 역사를 모른다면 돌덩이나 오래된 폐허에 그쳤을 낯선 풍경이, 사연을 알면 알수록 아리고도 매혹적인 속살을 내보였다.



글·사진=신동연 선임기자



부처의 진신 치아 사리를 모신 사원



지난 10일 9시간의 비행 끝에 스리랑카 콜롬보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아 유 보완(안녕하세요)!” 암갈색 피부의 현지 가이드가 흰 이를 활짝 드러내며 순박한 환영사를 건넸다.



행정수도인 콜롬보를 벗어나 제 2 도시 캔디로 향했다. 콜롬보에서 캔디까지는 120㎞ 이상 떨어져 있다. 자동차로 세 시간 이상 걸린다. 출발 전에 가이드가 “스리랑카에서 자동차로 다니려면 일정을 여유 있게 잡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스리랑카 특유의 교통란 때문이다. 스리랑카의 국도 대부분은 제한속도 시속 50㎞의 왕복 2차선 도로다. 도로에는 삼륜 택시가 활개를 친다. 같은 거리라도 교통상황에 따라 소요시간이 들쭉날쭉하다. 스리랑카 사람들이 기차를 선호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캔디에서는 다양한 불교유적을 만날 수 있었다. 부처의 진신 치아 사리, 즉 불치(佛齒)를 모신 사원 ‘불치사’가 가장 유명하다. 치아 사리는 기원전 543년 인도에서 석가모니 다비(茶毘) 때에 입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362년 인도 남부의 작은 나라 칼링가의 왕자가 머리카락 속에 숨겨온 사리를 스리랑카 왕에게 바쳤고, 이후 불치는 왕권의 상징이 됐다. 불치의 소유자가 곧 권력의 수장이어서 수도를 옮길 때마다 불치도 함께 이동했다. 지금 불치가 캔디에 있는 것도 캔디가 스리랑카 싱할라 왕조의 마지막 수도였기 때문이다.



캔디의 불치사는 홍차색 지붕과 우윳빛 벽으로 치장돼 있었다. 전형적인 싱할라 건축 양식이다. 남인도와 스리랑카 동북부에 사는 힌두교도 타밀족이 1998년 불치사를 폭격해 폐허가 된 것을 새로 지어 지금 모습이 됐다.



사원은 매일 개방되지만 불치가 있는 방 문은 하루 세 번만 열린다. 이때 관악기와 타악기 연주가 현란하게 울려 퍼지고, 연꽃 등 공물을 바치는 의식이 열린다. 북적이는 참배객 사이로 보석으로 장식된 금빛 작은 탑 모양의 일곱 겹 사리함이 보였다. 불치의 실체를 보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1년에 열하루, 페라헤라 축제 때는 불치가 법당을 벗어나 마을 나들이를 한다고 한다. 페라헤라 축제는 해마다 음력 7월 1일에 열린다.



2 석굴. 56개 불상과 벽화가 있다. 2 보석으로 치장한 금제 불치 사리함. 3 시기리야 바위 정상으로 향하는 사자 발톱 모양의 출입문. 4 프레스코화로 그린 시기리야 여인상은 풍만한 아름다움으로 눈길을 끌었다. 5 ‘스리랑카식 김치’ 디칼리(Dicale) 길거리 매점. 파인애플·바나나·올리브 등의 과일을 소금·고추가루로 버무린 스리랑카인의 간식이다.




불교 유적 삼각지대의 중심 담불라



담불라는 스리랑카의 불교 유적 도시 아누라다푸라, 폴론나루와, 캔디를 잇는 문화 삼각지대의 중심에 있다. 싱할라 왕조의 흔적을 간직한 시기리야와도 15㎞ 떨어져 있어 스리랑카에서 반드시 들러야 하는 관광 요지로 꼽힌다.



무엇보다 담불라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도시다. 스리랑카 최대의 석굴사원 황금사원이 담불라에 있기 때문이다. 스리랑카에 도착한 이튿날 황금사원에 올랐다. 기원전 1세기에 조성되기 시작했다는 사원은 180m 높이의 바위산 중턱에 있었다. 사원 입구에서 석굴까지 오르는 길의 경사가 제법 심했다.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사원 안으로 들어서니 오른쪽으로 회랑식 복도와 함께 동굴 다섯 개가 나란히 늘어서 있었다. 인도의 아잔타, 엘로라 석굴처럼 인공적으로 파내어 만든 게 아니라 자연동굴에 승려들이 기거하며 조금씩 다듬어간 것이라고 한다. 고르지 않고 울퉁불퉁한 벽과 천장에서 누천년의 손길이 엿보였다.



기원전 1세기 타밀족의 끊임없는 침략에 시달리던 싱할라족 발라감 바후 왕은 결국 수도 아누라다푸라를 떠나 담불라에서 14년간 피란생활을 했다. 마침내 타밀족을 물리치고 수도를 되찾았을 때 왕은 그 공덕이 불교에 있다며 담불라에 사원을 지으라고 명했다. 이후 황금사원은 차츰 석굴과 불상 수가 늘면서 지금의 형태로 완성됐다.



가장 오래된 제 1 석굴 ‘데바 라자 비하라(왕의 사원)’에는 길이 15m의 황금빛 와불이 불꽃을 닮은 꽃무늬 발바닥을 드러내고 우아하게 누워 있었다. 폭 52m 길이 25m의 제 2 석굴 ‘마하 라자 비하라(위대한 왕의 사원)’는 담불라에서 가장 크고 빼어난 석굴이다. 석가모니의 생애, 싱할라족과 타밀족의 전투 장면이 그려진 가운데 불상 56개가 늘어서 있었다. 이어 제 3~5 석굴은 스리랑카가 유럽 열강의 식민지배에 시달리던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했다. 굴욕의 세월을 인고하며 2000여 년간 마르지 않은 불심(佛心)의 역사 앞에 절로 마음이 숙연해졌다.



시기리야, 죽기 전 꼭 가봐야 할 곳



스리랑카 여행 사흘째 되던 날, 유럽에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로 꼽는 바위성 시기리야로 향했다. 시기리야는 비가 오지 않는 건기엔 광포한 코끼리가 민가에서 소동을 피울 만큼 열대림이 우거진 오지다.



검표소를 지나 해자를 건너자 양쪽으로 기하학적 대칭을 이룬 ‘분수정원’이 시야를 압도했다. 숲 안으로 들어서자 해발 370m의 흑갈색 바위성이 위용을 드러냈다. 90도 경사로 깎아지른 200여m 높이의 화강암 덩어리에 성을 두른 꼴이었다. 애초 ‘시기리야’라는 이름도 싱할라어로 사자란 뜻의 ‘싱하’와 목구멍을 뜻하는 ‘기리아’가 합쳐 만들어졌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과거에는 사자가 입을 벌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벽돌과 벽토로 된 돌계단을 오르자 철망으로 벽이 쳐진 나선형 계단이 시기리야 절벽에 아찔하게 매달려 있었다. 힘겹게 계단을 올라 절벽 한복판에서 풍만한 미녀를 만났다. 가슴을 훤히 드러내고 갖은 장신구로 치장한 미녀들이 생동감 넘치는 프레스코화로 그려져 있었다. 시기리야를 세계적인 명소로 만든 벽화다. 애초 500명 넘는 여인이 그려져 있었지만 풍파에 훼손돼 지금은 18명만 남아 있다. 벽화의 유래에 대해서는 시기리야를 세운 카샤파 왕의 아내나 후궁을 그린 것이라는 이야기와 카샤파 왕이 부왕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불교신화의 천녀 압사라를 그렸다는 설이 공존한다. 그런데 카샤파 왕은 무슨 이유로 이 깊은 밀림 속까지 들어와 왕국을 세웠을까.



카샤파의 어머니는 천민 출신이었다. 그는 순수 왕족 혈통의 이복동생 목갈라나에게 왕위를 빼앗길까 두려웠다. 열등감에 시달리던 카샤파는 급기야 아버지 다투세나 왕을 시해하고 왕권을 찬탈한다. 동생의 보복이 두려웠던 카샤파는 수도를 아누라다푸라에서 시기리야로 옮기고 난공불락의 바위요새를 지어 은신했으나 11년 뒤 목갈라나의 군대에 패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왕이 된 목갈라나가 수도를 다시 아누라다푸라로 천도하면서 시기리야는 밀림 속에서 서서히 잊혀졌다. 1875년 한 영국인이 우연히 발견하기 전까지 말이다.



너른 마당에 이르러 숨을 골랐다. 마당 한쪽 사자 발톱 모양 출입구로 들어서 정상까지 난 마지막 층계를 올랐다. 1200개가 되는 철계단을 밟아 다다른 정상에는 허물어진 왕궁 터만 휑하게 남아 있었다. 왕권에 대한 광기 어린 집착의 말로는 허무하고도 씁쓸했다.



●여행정보=스리랑카는 사철 고온다습한 열대몬순기후 지역이다. 우리나라 여름철 복장이면 충분하다. 중부내륙 고산지대를 여행할 경우 가벼운 겉옷을 준비하는 게 좋다. 카레를 주로 먹는 편이며 수질이 좋지 않아 물은 반드시 끓여 마시거나 시판되는 생수를 사먹어야 한다. 불상이 있는 법당에 들어갈 경우 모자와 신발을 벗어야 하며 반바지도 불가다. 사원이나 불상 앞에서 허락 없이 사진을 촬영해선 안 된다. 대한항공(kr.koreanair.com)이 스리랑카 콜롬보와 몰디브를 잇는 직항 항공편을 주 3회(월·수·토요일) 운항한다. 스리랑카 관광청 www.lank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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