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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평화를 주는 섬, 우리 꿈은 옳았습니다

중앙일보 2013.03.22 04:10 Week& 2면 지면보기
1 섬 동쪽 언덕 위에 남편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먼저 간 남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최호숙 대표. 2 외도의 대표 풍경인 비너스가든. 외도에 있는 거의 유일한 평지다. 30년쯤 전에 여기서 돼지를 키웠다.


최호숙 외도 대표, 10년 전 세상 떠난 남편에게 …



영감, 기억나세요? 우리, 섬에서 허구한 날 싸우기만 했잖아요. 지금도 섬을 걸어다니다 보면 옛날에 당신하고 싸운 기억밖에 안 나네요.



그렇게 갑자기 가버릴 줄 알았으면 조금이라도 살갑게 굴 걸 그랬나 봐요.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서울에서 기자가 내려왔네요.



이창호(1934∼2003)·최호숙(77) 부부가 일군 외도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네요. 오랜만에 옛날 기억을 더듬었어요.



우리, 참 열심히 살았지요? 우리 부부는 성공한 것보다 실패한 게 훨씬 더 많은데 세상은 성공한 모습만 보고 부럽다고 하네요.



그러고 보니 당신은 성공한 모습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갔네요. 그래도 당신, 당신 있는 곳에서도 우리 섬이 잘 보이지요? 참 예쁘지요?



글=손민호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3 섬 동쪽 끝에 세운 교회. 4 TV드라마 ‘겨울연가’에 등장했던 ‘천국의 계단’. 연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다.
남쪽 나라는 따뜻하지 않았지요



1969년이었지요. 낚시하러 내려왔던 당신이 태풍을 피해 이 섬에 들어왔던 게. 지금 생각하면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 아이들이나 가르치던 우리들이 서울에서 열네 시간이나 걸리는 이 남해의 작은 섬으로 들어와 살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때 당신이 했던 말이 지금도 생생해요. 추운 이북에서 내려와 늘 따뜻한 남쪽 나라가 늘 그리웠다고. 그래요, 우리는 한반도 맨 남쪽 끝 볕 잘 드는 섬에 터를 잡았어요.



막막했지요. 전기도 없고 물도 부족한 이 낙도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우리는 무작정 섬에 들어왔지요. 우리 처음에 감귤 농사했던 거 기억나세요? 남해안에서도 감귤나무가 잘 자란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무턱대고 귤나무를 심었지요. 온갖 정성 기울여 5∼6년을 키워 수확을 앞둔 시점, 갑자기 한파가 몰아쳐 3000그루나 되는 귤나무가 모두 죽고 말았지요.



다음엔 돼지를 키웠네요. 돼지는 1년이면 승부를 볼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 8마리를 사서 1년을 키웠더니 80마리로 불어났지요. 당신이나 나나 참 귀가 얇았어요. 그게 다 몰라서 그랬던 거였겠지요. 돼지가 제법 살이 올라 이제 팔아도 되겠다 싶을 때 돼지 파동이 터졌지요. 돼지보다 사료가 더 비쌌던 때, 사료를 적게 준 밤이면 돼지들이 섬이 떠나가라고 울어댔지요. 꽥꽥꽥꽥. 그때 돼지 우리가 있었던 비너스가든에서는 지금도 배 고파 울던 돼지 소리가 들리는 듯해요. 생명 있는 것을 굶겨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결국 구조라 주민들한테 돼지를 나눠줬지요. 돼지를 뭍에 두고 섬으로 돌아오던 날, 당신은 울었던가요?



기억나세요? 1995년 4월 25일



생각대로 일이 안 되거나 당신이랑 싸우거나 하면 나는 섬 동쪽 끝 언덕에 올라 바다 건너 서이말등대를 보고 혼자 울곤 했어요. 왜 하필이면 거기냐고요? 서이말등대는 뭍에 있잖아요. 섬보다는 고향에 한 발짝이라도 더 가까이 있잖아요.



그 언덕에 교회를 세운 건 정말 잘한 것 같아요. 비록 작고 볼품없는 교회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교회를 찾아와요. 교회에 놔둔 방명록을 읽어 보면, 수십 년 전 나처럼 이 언덕에서 많은 사람이 힘을 얻고 가는 이야기가 적혀 있어요. 예전에는 위안을 얻으려고 언덕에 갔지만 요즘에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려고 가요.



아이들한테는 지금도 미안하지요. 막내가 한 살일 때 섬에 들어왔으니까요. 당신은 섬에 틀어박혀 있고 나는 친정에 아이들을 맡기고 섬과 친정을 왔다 갔다 했지요. 부모가 곁에 없어도 4남매 모두 무탈히 장성해 대견하기도 하고 미안하네요. 당신도 그렇지요?



1995년 4월 25일 첫 손님을 맞은 날은 당신도 또렷이 기억할 거예요. 당신이랑 나랑 흙먼지 묻은 작업복 벗고 정장 차림으로 선착장으로 나가 손님들하고 일일이 악수를 했잖아요. 처음에는 우리가 만든 세상을 돈을 내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었지요. 그때 내가 말했던 거 기억하세요? 우리가 가꾼 정원이 옳다고는 자신할 수 없지만, 우리가 꾼 꿈은 옳았다고.



섬을 돌아다니다 보면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가 들려와요. 나는 그 소리가 그렇게 좋아요. 내가 만든 세상을 그들도 공감한다는 뜻이잖아요. 우리, 잘은 몰라도 무언가 뿌듯한 일을 한 건 맞는 거 같아요.



5, 6 이달 초순 외도에는 이미 봄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7 외도에는 최 대표가 갖다놓은 아기자기한 장식물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8 봄꽃 화사한 정원에서 최 대표.
실패 하나하나가 헛되진 않았어요



요즘 외도에는 동백이 한창이에요. 풍년화도 피었고 매화도 피었지만, 우리 섬은 역시 동백이지요. 우리 부부에게 가장 고마운 나무이기도 하고요. 우리가 외도에 들어와서 처음 수익을 낸 것도 동백나무였잖아요. 동백 씨를 받아서 5년을 기른 뒤 동백나무 5000주를 팔았었지요.



우리 부부가 나무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동백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만 해도 생소했던 관광농원이란 꿈을 꾼 것도 동백을 내다 판 다음이었으니까요. 서울에서 묘목 들여오던 일이 생각나네요. 서울에서 묘목 80주를 사다가 보따리에 20주씩 넣어서 당신과 내가 두 개씩 메고, 버스 타고 택시 타고 배 타고 섬에 들어왔던 날들 말이에요. 묘목이 크거나 조각상 같은 걸 들여올 때는 트럭을 불렀지요. 인부 살 돈이 없어 직접 나섰다가 네 번이나 팔이 부러지기도 했었네요. 그렇게 겨우겨우 섬에 들여놓은 꽃과 나무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말라 죽으면 내 가슴도 새까맣게 타들어갔었지요.



돌이켜 보면 실패 하나하나가 헛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바람 막아준다고 당신이 감귤나무 앞에 편백나무 심어서 방풍림을 만들었잖아요. 그게, 쑥쑥 커서 제법 운치 있는 풍경이 빚어졌잖아요. TV 드라마 ‘겨울연가’에 나온 ‘천국의 계단’이 옛날에 귤밭이었던 걸 요즘 사람은 모를 거예요. 비너스가든이 외도에서 유일한 평지인 까닭이 돼지를 키우던 터였기 때문이란 것도 모르겠지요.



나는 우리 섬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외도의 아름다운 경치만 보고 가는 게 아쉬워요. 아름다움을 지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보고 가야 하는데.



8 봄꽃 화사한 정원에서 최 대표
팔순을 앞둔 지금도 꿈을 꿉니다



당신은 참 무심한 사람이에요.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가버릴 수 있나요? 10년 전 당신이 뇌졸중으로 급하게 가버리고 나서 나는 세상의 한 축이 무너져 내린 것 같았어요. 이제 막 우리 부부의 노력이 결실을 보는 순간인데, 고생만 하다 가서 내 가슴이 얼마나 먹먹했는지 아시나요.



그해 여름 태풍 ‘매미’를 겪고서는 정말로 다시 일어날 힘이 없었어요. 여섯 번째 세운 선착장도 다시 날아가 버렸고, 측백나무 방풍림도 다 뽑혀 버렸어요. 당신도 없으니, 싸울 사람도 없고 기댈 사람도 없었어요. 그때 자식들이 돌아왔어요. 유학 갔던 아들이 돌아왔고, 막내 딸과 사위가 섬으로 내려왔어요. 제대로 살펴주지 못해 평생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혼자 남은 어미가 섬에서 외로이 버티는 꼴이 안타까웠나 봐요.



요즘엔 나도 섬에 오래 있지 못해요. 길어야 한 달에 일주일 정도 섬에 있어요. 당신도 알고 있는 우울증도 여전하고, 무릎은 수술을 했는데도 많이 시리네요. 혈압약·당뇨약 받아먹으러 병원 다니는 일도 지치네요.



이제는 섬을 한 바퀴 도는 것도 숨이 차요. 그래도 여전히 섬을 걸어다닌답니다. 옛날처럼 지게 지고 짐을 나르지도 않고, 손수 나무를 심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섬에서 자라는 풀·꽃·나무 하나하나가 여전히 내 피와 살과 뼈 같아요. 내 45년 인생이잖아요.



나는 오늘도 꿈을 꿔요. 우리 부부가 일군 세상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콘텐트로 거듭나는 꿈이요. 당신도 같은 마음이라고 믿어요. 이 꿈만 이루면 이제 아쉬울 게 없을 것 같아요. 그 꿈을 이룬 언젠가 나도 당신 곁에서 우리가 일군 낙원을 내려다보고 있겠지요.





●여행정보=외도 여행은 불편하다. 외도에 들어가려면 거제도까지 내려가서 배를 타야 한다. 구조라·장승포·학동·도장포·해금강·와현 등 거제도 동남 해안의 항구 6곳에서 외도행 유람선이 뜨는데, 6개 유람선 회사에서 외도행 유람선을 모두 33척이나 운행한다. 그만큼 외도는 거제도 관광의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관광 환경은 열악하다. 외도와 4㎞ 거리여서 외도와 가장 가까운 구조라 항구의 경우 외도만 들렀다 나오면 1만4000원(어린이 8000원), 해금강까지 둘러보고 오면 1만6000원(어린이 9000원)을 유람선 요금으로 내야 한다. 거제도 유람선은 외도와 무관한 업체여서 외도 입장료 8000원은 별도로 내야 한다. 그럼에도 외도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평균 1시간30분에 불과하다. 아직 전기가 안 들어와 섬에서 자체적으로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만들어 쓰고, 상수원이 연결돼 있지 않아 물이 부족하다. 숙박시설도 없고, 변변한 선착장 시설도 없다. 온종일 배가 못 들어가는 날이 1년에 50일, 반나절만 들어가는 날이 50일 정도다. 그럼에도 외도는 1995년 개방 이래 14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했다. www.oedobotania.com, 070-7715-3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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