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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재형펀드가 안 팔리는 진짜 이유

중앙일보 2013.03.22 00:47 경제 10면 지면보기
김수연
경제부문기자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다.”



 근로자 재산형성저축 펀드(재형펀드)의 판매 부진에 대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약 2주 동안 은행 재형적금에 1000억원이 들어왔는데 재형펀드에는 달랑 60억원 모였다. 60개 펀드가 1억원씩 모은 셈이다. 설정액이 ‘0원’인 것도 수두룩하다.



 재형펀드는 재형저축의 한 종류다. 여느 펀드처럼 국내외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해 수익을 돌려주지만 은행 재형적금처럼 연간 1200만원 한도에서 이자·배당 소득세(14%)가 면제된다.



 사실 재형펀드의 부진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재형펀드 판매를 시작하기 전부터 “상품을 내놓긴 하지만 기대는 안 한다”고 말했다. 그럴 만했다. 세법상 국내 주식의 양도차익에 대해서는 이미 비과세다. 주식형 재형펀드가 기존 펀드에 비해 유리할 게 없는 것이다. 재형펀드에 주어진 비과세 혜택은 채권형이나 해외채권형 펀드에만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런 상품은 주로 투자여력이 있는 자산가들이 해오던 것이다. 재형펀드 가입 대상인 연봉 5000만원 이하 직장인과 종합소득 3500만원 이하 개인사업자에겐 익숙지 않다. 은행 재형저축이 고금리 경쟁을 벌이는 바람에 시장금리를 따라가는 채권형 펀드의 매력이 줄어든 측면도 있다.



 결정적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판로가 막힌 것이다. 펀드를 포함해 거의 모든 금융상품의 유통은 은행이 맡고 있다. 그런데 은행 창구에서는 자신들의 상품인 재형적금 팔기에 여념이 없다. 설명할 것도 작성할 서류도 더 많은 펀드까지 창구 직원이 팔 이유도, 짬도 없다. 마트 진열대에 전시도 안 돼 있는 상품, 먼지를 뒤집어쓴 채 구석에 방치돼 있는 상품에 비유할 수 있다.



 적금·펀드·보험 등 재형 상품 중 어느 것이 금융 소비자에게 더 좋은지는 가입 목적에 따라, 사후 성과에 따라 달리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열대에 다양한 상품이 깔려 있지 않아 미리 선택기회부터 차단당한다면 그건 분명 소비자의 손해다.



김수연 경제부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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