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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유럽 위기 ‘피그스’ 다음은 ‘피시’?

중앙일보 2013.03.22 00:44 경제 10면 지면보기
이성한
국제금융센터 원장
‘키프로스 사태’로 유럽 재정위기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신조어도 계속 생산되고 있다.



 지난 수년간 유럽위기를 상징했던 단어는 ‘피그스(PIGS, 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였다. 여기에 구제금융 국가인 아일랜드를 더하면 PIIGS가 된다. 말장난인지 통찰력을 담은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요즘에는 ‘피시(FISH)’라는 신조어도 인용된다.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네덜란드(Holland)를 의미하는데, 지난 2월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에서 언급된 이후 인용 빈도가 높아졌다. 몇몇 유럽 국가의 첫 글자를 따 ‘돼지 다음은 물고기’라는 식으로 경고하는 것은 억지스러운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피그스뿐만 아니라 프랑스·네덜란드와 같은 우량국가들이 처한 현실도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유럽의 상황은 암환자들에 대한 치료 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 그리스·포르투갈·아일랜드는 환부가 깊어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의 구제금융과 채무재조정이라는 수술을 받은 환자로 볼 수 있다. 스페인·이탈리아는 유럽중앙은행(ECB)의 국채 직매입 방침과 은행권 구제금융을 통해 비수술적 항암치료를 받은 상태다. 피시 중 프랑스·네덜란드는 아직 확진을 내릴 단계는 아니지만, 향후에 암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어 주시해야 할 환자로 볼 수 있다.



 피그스는 정부와 민간 부문의 총체적인 채무불이행 위험이 부각됐다. 반면 피시에 대한 우려는 실물경제의 악화에 초점을 맞췄다. 유로존 2~5위 경제대국의 경제성장률 등에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지난 4분기 유로존의 경제성장률은 -0.6%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1분기(-2.8%) 이후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피시 국가들도 일제히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어떻게 보면 -1%가 안 되는 수준의 경기위축이 ‘큰 불’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한 국가씩 사정을 살펴보면 피시 국가들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시각이 커질 여지가 충분하다.



 프랑스는 올해 0% 내외의 성장이 예상되며 재정·경상수지가 모두 적자를 나타내고 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올해에도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이탈리아의 정부부채비율은 올해 127%에 달해 유로존 국가 중 그리스에 이어 둘째로 높다. 여기에 정치적 불안도 가세하고 있다. 스페인은 정부부채비율은 높지 않지만 악화되는 속도가 빠르다. 재정적자와 경상적자가 각각 국내총생산(GDP)의 7%, 1.9%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쌍둥이 적자 규모가 이탈리아보다 크기 때문이다.



 피시 국가 중 양대 신용평가사로부터 유일하게 트리플 A등급을 부여 받고 있는 네덜란드는 가계부채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네덜란드의 가계부채 비율은 GDP의 107%로 스페인(52%)의 배가 넘는다. 주택가격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보다 20% 넘게 하락했다.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은행권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제 펀더멘털과 관련된 요인들은 중앙은행의 돈 풀기만으로 단기간 내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다.



 미국 주가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어 국제금융시장의 체감 온도는 뜨거운 편이다. 실제 미국 경제가 주택·고용시장을 중심으로 나아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현재 미국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는 것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돈의 힘’이다. 성장률·실업률·소비자신뢰·주택가격 등 주요 지표들은 주가가 전고점을 형성했던 2007년 3분기 때보다 좋지 않다. 단순히 미국 주가만 보고 대외 금융시장 상황을 판단할 경우 착시에 빠질 수 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유로존이 부분 해체될 가능성이 크게 낮아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피그스 국가들은 아직 치료가 끝난 상태가 아니다. 유로존 경기회복이 아직까진 상당히 오랜 기간 소요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렉시트(Grexit)로 표현되는 유로존의 해체 위기가 당장 닥치지는 않겠지만, 크고 작은 파고(mini-crisis)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유로존의 진정한 위기탈출(Crexit)을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다.



이 성 한 국제금융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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