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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친구가 된 예수와 붓다

중앙일보 2013.03.22 00:31 종합 32면 지면보기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조니 뎁이다. 편의점에서 마주친 여고생들이 “조니 뎁 닮았어”라고 수군거리는 데 우쭐해, 언젠가 그와 함께 영화에 출연하는 걸 꿈꾼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 붓다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는 데쓰카 오사무다. 자신의 삶을 진짜보다 더 흥미진진하게 그려낸 만화 ‘붓다’에 큰 감명을 받아서다.



 이 무슨 불경한 농담이냐고? 최근 재미있게 읽고 있는 만화 『세인트☆영멘』 속 이야기다. 일본 만화가 나카무라 히카루의 작품으로, 한국에선 단행본으로 7권까지 출간됐다. 밀레니엄을 정신없이 보낸 예수와 붓다가 모처럼 천계에서 하계로 휴가를 온다. 둘은 일본 도쿄의 작은 아파트에 함께 머물며 중생, 혹은 어린 양들의 삶을 몸소 체험한다. 이들에게 요즘 세상은 신기한 것 투성이다. 붓다는 24시간 만화방에 빠져 ‘코믹만화 보며 웃지 않기’ 수행을 하고, 예수는 온라인 게임 매니어가 돼 휴가 중에도 악마를 퇴치하는 데 여념이 없다. 붓다를 알현하고자 동물들이 앞다퉈 집 앞으로 몰려들고, 예수가 들어가면 목욕탕 물이 자꾸 포도주로 바뀌는 등 지나친 신성(神性) 때문에 이런저런 해프닝도 겪는다.



만화 『세인트☆영멘』 4권 표지 [사진 시리얼]
 불교와 기독교의 독실한 신자라면 ‘신성모독 아니냐’며 화를 낼지 모르겠다. 하지만 만화에는 두 종교의 역사와 교리를 알지 못하면 즐기기 힘든 기발한 웃음이 가득하다. 영화관에 간 두 성인. 붓다는 스포일러를 극도로 싫어해 팸플릿조차 읽지 않으려 한다. 그러자 예수가 말한다. “난 아무렇지도 않아. 우리 아버지가 ‘스포일러 대마왕’이거든. 이 세계의 종말 같은 걸 대놓고 스포일러하는 바람에. 게다가 그걸 책으로 모아서 내버리고 말이야.” 석가탄신일엔 예수가 붓다에게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적힌 축하카드를 건넨다. 그러자 붓다는 “젊은 객기로 했던 말”이라며 “나의 ‘흑역사’를 생일마다 되새기게 되다니”라고 민망해 한다.



 모처럼 종교 관련 뉴스로 마음이 훈훈했던 한 주였다. 의전용 리무진 대신 셔틀버스를 타고, 자신이 묵은 호텔 방값까지 직접 챙겼다는 ‘호감 교황님’ 프란치스코 1세 덕분이다. 그의 즉위식에는 개신교·이슬람교·불교 등은 물론 960여 년간 가톨릭과 냉랭한 관계였던 그리스 정교회 사절단까지 참석했다 한다. 어떤 신을 믿건, 아픈 영혼을 위로하고 평화를 희구하는 종교의 본질은 결국 하나임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러니 모르는 일 아닌가. 예수와 붓다가 같은 시대, 같은 동네에서 자랐다면, 이 책의 설정처럼 둘도 없는 ‘절친’이 되었을지도.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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