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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법원의 블랙코미디

중앙일보 2013.03.22 00:30 종합 33면 지면보기
최경호
사회부문 기자
구치소 안에서 팔굽혀펴기를 하던 피고인이 신병 치료를 핑계로 법원의 보석 결정으로 풀려났다. 학교 예산 1004억원을 자신의 쌈짓돈인 양 빼돌린 서남대 설립자 이홍하씨가 그 당사자였다. ‘사학 비리의 종합세트’라 불리는 중범죄자를 풀어준 법원의 결정에 비난 여론이 빗발쳤다. 여론은 이씨가 선임한 변호사와 담당 재판부 사이의 친분 관계에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검찰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집요하게 보석 취소를 법원에 촉구했으나 법원은 40여 일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단 하루 만에 검찰과 법원의 줄다리기가 끝이 났다. 검찰은 이씨의 추가 범죄 사실을 밝혀내 20일 새로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사법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검찰의 조치는 “이래도 보석 취소 결정을 미룰 셈이냐”는 최후통첩인 듯했다. 구속영장이 청구되면 법원으로선 영장 발부냐 기각이냐의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자 즉각 법원이 움직였다. 상급법원이 검찰의 항고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하급법원의 보석 결정을 사실상 취소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구속영장 청구 4시간 반 뒤의 일이었다.



 법원 관계자는 이를 두고 “구속영장 재청구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밝혔다. 법원 스스로 오랫동안 보석 취소 문제를 숙고해 온 끝에 독자적으로 내린 결정이며, 하필이면 날짜가 검찰의 영장 청구와 겹쳤을 뿐이란 얘기였다. 정말 그랬다면 우연치곤 기막힌 우연인 셈이다. 하지만 여론은 법원의 그런 설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구속, 불구속과 유·무죄는 별개”라는 원론적 입장을 되풀이하던 법원이었기에 여론은 더더욱 그런 해명을 미더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홍하씨의 보석을 둘러싼 공방전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와 같았다. 법원이 허가한 보석을 법원이 스스로 취소했고, 그것도 검찰의 압박과 여론의 비난에 등을 떠밀리는 모양새를 고스란히 노출시켰으니 말이다.



 이홍하씨는 다시 구속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그걸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언론이 집요하게 이홍하씨 보석에 관한 전말을 보도하고 여론이 민감하게 반응했던 이유는, 이른바 향판(鄕判)이라 불리는 지역법관제와 전관예우의 폐해가 이홍하씨 보석 사건에 압축돼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홍하씨는 구속될 때마다 번번이 솜방망이 처벌로 풀려난 경험이 있다. 그는 평소 “아무리 길어도 두어 달이면 풀려난다”고 장담했다. 더 이상 그의 큰소리가 통하지 않게 하는 일, 이야말로 법원이 해결해야 할 진짜 과제다.



최 경 호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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