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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채무자 구제 남용하면 안 된다

중앙일보 2013.03.22 00:29 종합 33면 지면보기
이종휘
신용회복위원회 위원장
지난해 말 국내 가계신용 규모는 959조4000억원이다. 10년 만에 두 배를 훌쩍 넘어선 것이다. 가구당 평균 5300만원 이상의 부채를 지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부채가 가처분소득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이자부담이 큰 제2금융권 대출 비중도 높아지는 등 구조적 취약성도 내재되어 있다.



 한국은행의 2012년 가계금융 복지조사에 따르면 금융기관에 대출이 있는 가구가 전체 가구의 57.1%에 달한다. 부채 보유 가구의 13.1%는 대출상환액이 총수입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과다부채에 시달리고 있고, 18%는 채무를 연체한 경험이 있다. 앞으로 채무를 정상적으로 상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응답한 가구가 부채 보유 가구의 62.3%나 되는 것을 보면 그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가계부채 문제는 반드시 연착륙되어야 한다. 실패할 경우 가계와 금융회사가 동반 부실화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압박한다. 이는 성장잠재력을 저하시키고 사회안정성 위협으로 이어진다.



 현재 일련의 채무자 구제 프로그램이 가동 중이다.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과 프리워크아웃, 법원의 개인회생과 개인파산제도가 그것이다. 이들 채무자 구제제도는 경제적으로 실패한 과중 채무자가 재기하여 건강한 경제주체로 거듭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과중 채무자가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여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고, 도덕적 해이 차단을 통해 성실히 채무를 상환하는 채무자의 상대적 박탈감이 없도록 제도를 설계하고 적용하는 것이 채무자 구제제도의 핵심이다.



 신용회복위원회는 채무자와의 일대일 상담으로 채무문제 해결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아울러 개인워크아웃과 프리워크아웃 프로그램을 통해 채무조정 여부와 수준을 결정한다. 도덕적 해이 여부는 상담 과정에서 걸러진다. 신용회복위원회 협약에 가입한 3500여 개의 금융회사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채무조정 내용을 대부분 수용한다. 그동안 100만여 명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채무조정을 확정받았고 이 중 24만 명이 채무 상환을 완료했다. 현재도 매년 4만여 명이 채무 상환을 완료한다.



 새 정부는 가계부채 해결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결방안의 하나가 ‘국민행복기금’이다. 국민행복기금의 주요 골자는 금융회사의 부실채권을 매입해 과중채무자의 채무를 상당 수준 감면하고 나머지를 상환토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경영환경이 제각각인 금융회사들이 특정기준의 채권을 모두 매각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여러 금융회사에 채무가 있는 다중채무자의 채무는 국민행복기금으로 모두 매각되지 않는 경우가 상당수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어려움은 국민행복기금과 신용회복위원회 간의 상호 보완관계 구축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신용회복위원회의 상담기능으로 개인별 상황을 헤아려 도덕적 해이를 거르고, 채무조정기능으로 기금이 매입한 채무와 매입하지 못한 채무까지 원스톱으로 조정하는 효율을 기하자는 것이다. 과중채무자의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국민행복기금이 효율적으로 작동될 수 있을 것이다. 과중채무자가 건강한 경제주체로 거듭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으로 국민행복기금이 설계되기를 기대한다.



 채무자 구제제도는 개인의 실패에 대한 관용에 기초하고 있지만 남용은 방지해야 한다. ‘채무자의 경제적 회생 기회 제공’과 ‘도덕적 해이 차단’이라는 두 가지 가치 사이에서 사회와 경제가 용인할 수 있는 합리적 균형점을 모색해야 한다. 새 정부에서도 판단하고 있듯이 국민행복기금을 통한 채무감면 대책은 일시적, 한시적 조치여야 한다.



이 종 휘 신용회복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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