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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칼럼] ‘한반도 그랜드 디자인’을 주목한다

중앙일보 2013.03.22 00:25 종합 35면 지면보기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지금 의심되는 대로 방송국과 은행들의 전산망을 마비시킨 사이버공격이 북한 소행으로 밝혀지면 북한의 대남 도발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진화했음을 의미한다. 현대전은 전자전인데 전시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의 전쟁 수행 능력은 치명적인 수준까지 떨어진다. 사이버공격에 대한 효과적이고 충분한 대응책이 개발·강화되지 않은 총체적인 대북 억지력은 우리의 안보를 보장하는 수준에 훨씬 못 미칠 것이 분명해졌다.



 북한의 당장의 도발이라는 발등의 불을 끄고 시간을 번 다음 대화를 통한 남북 문제의 포괄적인 해결을 논의하는 방도를 찾아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최대한의 억지력을 갖추고 미국의 확장억지력을 확실히 확보하면서 북한과의 대화의 문을 열어두고 유엔 안보리 결의 2094호에 규정되지 않은 추가 제재에 신중한 것은 옳은 자세다.



 남북 문제 해결에 관해서는 많은 방안이 나올 만큼 나왔다.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더 하지 않고, 남북한 긴장에 최소한의 소강상태가 일정 기간 계속된 뒤에는 다시 길고 지루한 대화 모드가 회복될 것이다. 그때 비로소 박근혜 정부의 신뢰 프로세스가 가동을 시작할 것이다.



 신뢰 프로세스의 틀 안에서 비전 코리아 프로젝트라는 한반도경제공동체 구상이 논의될 때 남북한과 주변 이해당사국들의 이익에 맞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정 속의 번영을 보장할 것으로 보이는 구상을 소개한다. 세계적인 도시설계자·건축가 김석철 교수의 『한반도 그랜드 디자인』에 들어 있는 (1)두만강 하구 다국적도시와 (2)서해와 동해를 연결하는 동서운하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두만강 하구는 북한·중국·러시아의 국경이 맞닿는 황무지다. 지금은 방치되어 있는 황무지를 북한·중국·러시아가 각각 330만㎡(100만 평)씩 제공한다. 한국과 일본의 자본과 기술이 참여해 중국의 관광도시, 러시아의 석유·화학도시, 한국의 창조도시, 일본의 항만도시를 건설한다. 타원형 성채(城砦) 모양의 다국적도시를 남단의 굴포항으로 연결하는 10㎞의 회랑에 전자와 조선단지가 들어선다.



 다국적도시에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만주횡단철도를 연결하면 중국 동북3성의 중공업제품과 농축산물은 지척에 있는 태평양으로 나가는 통로를 얻고, 가스저장기지에 모인 러시아의 천연가스는 한국과 일본으로 수출된다. 대륙 가는 길이 막혀 답답한 일본에는 중국과 러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한국의 기업들은 거기서 만든 제품을 값싼 물류·수송 비용으로 중국과 러시아와 유럽 시장으로 보낸다. 다국적도시의 남쪽에 위치할 굴포항 일대는 선사시대의 유물이 즐비한 빼어난 잠재적 관광지대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설득에 발 벗고 나설 것이라는 게 이 프로젝트 최대의 강점이다. 땅과 노동력 제공으로 엄청난 경제적인 이득을 얻게 될 북한에는 뿌리칠 수 없는 매력일 것이다. 현안의 정치·군사 문제와 남북경제협력은 이 프로젝트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시병행으로 풀 수 있을 것이다. 이 다국적도시를 나진·선봉 경제특구와 연결하면 북한의 동북부 국경지대는 21세기형 북한 경제의 심장이 될 수 있다. 김정은이 이런 노다지 프로젝트를 마다할 수 있을까.



 두만강 하구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시점이나, 아니면 약간의 시차를 두고 동서운하를 논의한다. 한반도에는 백두대간이 등뼈처럼 북에서 남으로 흘러내려 동서교류를 가로막는다. 그러나 추가령구조곡이라는 골짜기 비슷한 저지대가 백두대간을 가로질러 동서로 뻗어있다. 서울~원산 간 경원선도 이 저지대를 따라 터널 하나 없이 건설되었다. 운하는 경원선과 나란히 이 저지대를 따라 뚫는다. 운하 바닥에 시베리아와 사할린 가스를 남한으로 보낼 가스관을 묻고 운하 주변에 250만㎾의 열병합발전소를 세우면 동서운하는 에너지 회랑으로 천지개벽된다. 운하 건설에 걸리는 기간은 2년, 예산은 2조원이다. 2조원의 경비는 임진강에서 채취할 모래를 팔면 충당된다는 계산이다.



 꿈같이 들리지만 실현 가능한 꿈이다. 남북 문제도 진화한다. 어느 시기에 가면 한국의 어느 정부든 김석철 교수의 큰 그림의 가치를 인정할 것이다. 미래의 정부 기다릴 것 없이 박근혜 정부가 주도할 만한 구상이다. 박 대통령의 한반도경제공동체의 큰 축이 될 구상이 아닌가. 백낙청 교수가 쓴 서문 탓인지 대선 기간에는 박근혜 캠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대선은 끝났다. 북한도 호전적 자세와 동시에 미국에 대화하자는 신호를 보낸다. 한국도 늦지 않게 평화가 뒷받침하는 남북한 공존공영을 생각할 때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김석철의 설명을 직접 들어볼 것을 권한다.



김 영 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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