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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 유일한 혈통 이은 충절·기개의 한옥마을

중앙일보 2013.03.22 00:20 종합 16면 지면보기
조선시대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육신사(六臣祠)’가 있는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묫골’ 전경. 사육신 중 한 사람인 박팽년의 후손(순천 박씨)이 모여 사는 곳이다. 묘리는 밖에서 마을이 전혀 보이지 않는 묘한 마을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프리랜서 공정식]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대구 도심에서 서쪽으로 20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시골 마을이다. 달성군 다사읍에서 성주군 쪽으로 가다 칠곡군 왜관읍 방향으로 틀면 오른쪽에 있다. 묘리(妙里)는 묘하게 생긴 마을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밖에서 마을을 볼 수 없고 안에서도 마을 밖을 볼 수 없어서다. 주민들은 ‘묫골’이라고 부르고 있다. 사찰의 일주문처럼 생긴 ‘충절문’을 지나 마을에 들어서면 길 양쪽에 50여 채의 한옥이 늘어서 있다. 북쪽 끝에는 사당인 ‘육신사(六臣祠)’가 있다. 조선 세조 때 단종 복위운동을 하다 숨진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 등 사육신(死六臣)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사육신 사당은 의절사(서울 노량진동)·창절사(강원 영월군)와 육신사 등 전국에 모두 세 곳이다. 사육신의 묘소가 있는 곳에 의절사가, 단종의 능이 있는 곳에 창절사가 있다.

[대구의 재발견] 달성군 하빈면 묘리 육신사



 묘리는 사육신과 직접 관련이 없다. 하지만 박팽년(1417∼56)의 후손이 이곳에 살고 있다. 그는 충남 회덕(현 대전시 동구) 출신이다. 연고가 전혀 없는 곳에 후손인 ‘묫골 박씨’(순천 박씨 충정공파)가 뿌리를 내린 것이다.



육신사의 정문 모습. [프리랜서 공정식]
 이야기는 조선 세조 때인 145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왕위를 찬탈한 세조를 끌어내리고 단종을 다시 왕으로 세우려던 계획이 실패하면서 주도 세력인 사육신이 모두 처형되거나 숨진다. 박팽년의 아버지와 아들 셋도 모두 처형됐다. 이때 그의 둘째 며느리인 성주 이씨가 친정인 묫골로 쫓겨 온다. 이씨의 임신 사실을 안 조정에서는 아들을 낳으면 죽이고 딸을 낳으면 관비로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씨는 아들을 낳았다. 마침 딸을 낳은 여종이 있어 아이를 바꾸면서 목숨을 부지했다. 이 아들이 박팽년의 손자인 박일산(1456∼?)이다. 묫골 박씨의 입향조(入鄕祖·어떤 마을에 맨 먼저 터를 잡은 사람)인 셈이다. 사육신의 제사를 지내기 시작한 사람은 일산의 손자인 계창(1523∼71)이었다. 그는 고조부인 박팽년의 제사를 지낸 뒤 잠이 들었다. 꿈속에 사육신 중 나머지 5명이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나 사당 앞에서 서성거리는 것을 보았다. 이들 모두 대가 끊긴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곤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묫골에는 50여 가구 중 15가구가 순천 박씨다. 이들은 매년 음력 9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 사육신을 기리는 제사를 모신다. 국회의장을 지낸 박준규(88)씨와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부인 박두을(2000년 작고) 여사도 이곳 출신이다.



 마을에는 일산이 지었다는 정자인 ‘태고정’(보물 제554호)이 있다. 조선 명필인 한석봉이 쓴 ‘太古亭(태고정)’과 안평대군의 글씨인 ‘一是樓(일시루)’라는 현판이 있다. 입구에는 사육신 이야기와 마을의 내력을 알려주는 ‘사육신기념관’도 있다. 휴일에는 100명 안팎의 관광객이 찾는다. 후손인 박우순(56)씨는 “육신사는 충절과 기개를 가르치는 교육장”이라며 “마을 한옥을 개방해 관광객을 맞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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