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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대 그만두고 택배 배달 … 한국판 폴 포츠 끝내 울었다

중앙일보 2013.03.22 00:04 종합 25면 지면보기
국내 최고 권위의 클래식 경연 대회인 제39회 중앙음악콩쿠르가 20일 막을 내렸다. 올해 콩쿠르에는 모두 446명이 도전했다. 지난해와 비교해 86명이 늘었다. 이 중 19명이 트로피를 받았다. 각 부문 영광의 얼굴을 소개한다. 앞으로 한국 음악계를 이끌고 나갈 기둥들이다.


제39회 중앙음악콩쿠르 영광의 얼굴들

◆ 성악(남자) 우승 김현민



2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중앙음악콩쿠르 본선에서 김현민씨가 열창하고 있다. [사진 중앙음악콩쿠르]


한국판 폴 포츠의 탄생인가-. 올해로 39회를 맞이한 ‘KT&G와 함께하는 중앙음악콩쿠르’에서 한 편의 휴먼 드라마가 펼쳐졌다. 남자 성악 부문에서다. 총 7개 부문에서 사흘간 열린 본선 무대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주인공은 김현민(30·한양대 대학원)씨. 그는 2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성악 남자 부문 시상식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날 시상식 무대에 오른 김씨는 입술을 깨물며 울음을 참아냈다. 그리고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우승은 전혀 예상을 하지 못했다”며 기뻐했다.



 그의 눈물에는 사연이 있다. 김씨는 중학교 때 아버지를 여의였다. 외환위기로 사업에 실패하고 병을 얻은 아버지께서 합병증으로 돌아가셨다. 어려서부터 노래에 소질이 있어 교회성가대 등에서 활동했지만 가정형편상 성악을 꿈꾸진 않았다. 대입을 앞두고 교회 전도사의 권유로 4개월 레슨을 받고 겨우 음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당시 음악은 그에게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보였다. 집안 사정으로 대학 1년을 다니는 데 만족해야 했다. 김씨는 “마음 놓고 학교에 다닐 만한 여유가 없었다”고 기억했다. 그리고 군대를 다녀와선 택배 배달을 하며 생계를 꾸려갔다.



 노래는 운명과도 같았다. “너는 노래를 해야 한다”는 주변의 권유로 스물넷에 한양대 음대에 입학했다. 6년 동안 중앙음악콩쿠르 등 여러 콩쿠르를 두드렸지만 모두 1차 예선에서 탈락했다. 그는 “본선 무대에 올라가서 노래 한 번 불러보는 것이 꿈이었다”고 했다.



 “콩쿠르 때마다 마음 졸이셨던 어머니께서 오늘만큼은 편하실 것 같아 기쁩니다. 남동생이 컨테이너 외항선에서 일하는데 1년에 한 번 정도 집에 오죠. 얼마 전에 전화 통화를 했는데 ‘열심히 하고 갈 테니 형도 꼭 1등 해라’라고 힘을 주었어요. 동생에게 이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하고 싶습니다.”



 김씨는 한국 가곡 ‘아무도 모르라고(김동환 시, 임원석 작곡)’를 즐겨 부른다. 그 노래 가사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아무도 모르는 샘물이길래. 아무도 모르라고. 도로 덮고 내려 오지요. 나 혼자 마시곤 아무도 모르라고.’ 이제 그가 혼자 마셔온 샘물(노래)을 남들에게 나눠줄 시간이리라. 2002년부터 중앙음악콩쿠르를 지원하는 KT&G는 연간 533억원을 사회 공헌에 환원한다.



◆ 피아노 최형록



최형록(20·서울대2)씨는 누나 따라 학원에 갔다 피아노를 시작한 경우다. 최씨는 “누나는 악보를 볼 줄 몰랐는데 저는 그걸 알았다”고 했다. 경북 구미 출신인 그는 “예술고등학교가 있는 줄 몰랐을 정도”라고 했다. 서울예고에 합격하자 혼자 상경해 자취를 하면서 공부했다.



 이번 콩쿠르는 도전이었다. 건반 테크닉에선 어느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지만 표현의 깊이에선 부족함을 느끼고 있어서다. 그는 “쇼팽의 연습곡이라든지 고난이도 테크닉이 필요한 곡들에는 자신이 있지만 슈만 등 음악성의 깊이가 있어야 하는 곡들은 소화하기 까다로웠는데 이번 콩쿠르를 계기로 몰입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최씨는 본선에서 선택한 스트라빈스키의 곡 연주에 앞서 발레 영상을 봤다고 했다. “테크닉 면에서 어려운 곡이라 미리 겁을 냈는데 발레 영상을 보면서 작곡가의 의도를 알게 됐다”고 했다. 꿈은 소박하다. 자만하지 않고 묵묵하게 음악을 연구하는 피아니스트다.



◆ 바이올린 옥유아



옥유아(20·한예종4)씨는 고교 1학년 때 한예종에 영재로 입학했다. 다섯 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했고 여섯 살 때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활을 잘 쓴다”고 말했다.



 옥씨는 “연습을 할 때는 바이올린 활로 스케일을 천천히 긋는다. 음악을 연주할 때는 왼손보다 활이 조금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의 연주는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 심사위원장 홍종화씨는 “유려한 선율과 유연한 리듬감이 뛰어났다”고 평했다. 옥씨는 중앙음악콩쿠르를 발판 삼아 국제콩쿠르에 도전할 작정이다.



 그는 타고난 무대 체질이다. 남들에 비해 긴장을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김남윤 교수님의 가르침이 가장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하루 5시간’이라는 연습량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운동을 좋아한다. 연주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아이스링크장에서 스케이트를 탄다.



◆ 첼로 이강현



이강현(19·한예종1)은 취미로 첼로를 시작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익혔다. 남들보다 늦은 출발이었지만 실력으로 따라잡았다. 2008년에는 부산음악협회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이씨는 “첼로는 나에게 외로움을 달래주는 악기이지만 연주가 되지 않을 때는 쳐다만봐도 짜증이 날 때가 있다. 그럼에도 결론은 평생 함께해야 할 동반자”라고 했다. 깊숙이 파고들어 가는 연주 스타일은 이번에 연주한 쇼스타코비치의 곡과 맞아 떨어졌다. 그는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에는 전쟁에 임하는 그런 자세가 들어 있다. 사람과의 갈등, 국가와의 갈등 그리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보이는데 그런 부분을 잘 표현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대학 새내기답지 않은 안목도 엿보였다. “연주를 하다 보면 전투적으로 하는데 그것이 장점이자 단점이에요. 전투적으로 하면 전체적인 음악을 보지 못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음악을 표현하기 힘들어요. 지금도 둘 사이에서 갈등하는 중이에요.”



◆ 플루트 김지우



김지우(21·이화여대3)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플루트를 시작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등 다른 악기도 고민을 했지만 결국 플루트를 택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는 전공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았다”고 했다. 악기를 시작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관악기보다 현악기나 피아노를 고르던 시절이다. “지금까지 후회를 한 적은 없어요. 플루트는 다른 악기와 비교해 곡을 배워가는 과정 자체에 흥미가 있었고 제가 바뀌어 가는 모습을 보면 재미가 있었어요.”



 김씨는 자신의 약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는 “플루트는 여성스럽고 예쁜 소리를 내는 악기지만 저는 남성스럽고 힘이 있는 스타일이라 열심히 불면 박자가 빨라진다”며 “콩쿠르를 앞두고 너무 조급해지고 긴장돼 보인다는 말을 들을 수 있어서 차분해지는 연습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의 머릿속엔 이상적인 플루트 소리가 들어 있다. “여기저기 잘 어울리면서 약간 여성스럽고 힘을 갖추고 있는 소리를 만들어 가고 싶어요.”



◆ 작곡 최진석



최진석(31·연세대 대학원)씨는 작곡 부문 본선 진출자 중 가장 나이가 많다. 콩쿠르에 들고 나온 곡도 묵직하다.



곡의 제목은 ‘북위38도’다. 최씨는 “북위 38도는 한반도의 분단을 표현한 곡이다. 연평도라든가 천안함 등을 생각하면서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곡에서 포격과 침몰 등을 묘사했다. 경기도 김포에서 군복무를 한 경험이 곡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단다.



 “그 동안 습작곡을 많이 썼지만 정작 내가 만든 창작곡이라 내세울 만한 것들이 없었어요. 이번에는 완성도보다 독창성에 무게를 두고 만든 곡인데 이렇게 수상까지 하게 돼 자신감을 얻었어요.”



 최씨는 “전쟁이나 분단과 같은 한국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곡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지휘자와 연주자들에게 공을 돌렸다. “지휘자 최영선씨와 연주자 분들에게 감사하다. 그분들의 창의성 덕분에 곡이 더 살아난 것 같다”고 했다.



◆ 종합 심사평





제39회 중앙음악콩쿠르 심사위원들은 “본선 진출자들이 좋은 음악가로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플루트와 첼로 부문에선 국내 젊은 연주자들의 실력 향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심사위원장 이혜경씨는 “한국 플루트의 수준이 날로 높아지고 것은 물론 고르게 발전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악기를 다루는 능력에 있어서는 이제는 세계적이라고 볼 수 있다”고 평했다. 이어 “자신의 악기가 내는 소리만이 아닌 음악 전체를 본다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좋은 소리에 좀 더 다양한 색깔과 표정 그리고 생각들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첼로 부문 심사위원장 홍종진씨는 “본선 경연자들의 연주를 들으면 우리나라 젊은 연주자들이 테크닉을 비롯해 곡 전체를 끌고 가는 느낌까지 고루 향상된 것 같다”며 “쇼스타코비치가 로스트로포비치를 위해 작곡한 곡이 가진 중량감 때문에 충분한 에너지를 보여주지 못했지만 작곡자의 의도를 잘 파악하고 연주했다”고 말했다.



 음악에 담긴 다양한 뉘앙스를 표현하면 좋겠다는 지적도 나왔다.



 피아노 부문 심사위원장 이혜전씨는 “바흐 곡을 연주할 때는 테크닉적인 정확성과 깨끗함만을 생각하기보다 짧은 악장에 들어있는 뉘앙스를 파악해 다양한 음색을 찾는 것을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성악 남자 부문 심사위원장 정복주씨는 “2차 예선 때까지만 해도 참가자들의 수준 높은 연주를 들을 수 있었지만 본선 때는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 같다. 각자의 소리에 맞는 아리아를 선택하기 바란다”고 평했다.



 바이올린 부문 심사위원장 홍종화씨는 “풍성한 울림이 있었지만 폭 넓은 역동성이 아쉬웠고 감성 표출이 조금 더 깊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작곡 부문 심사위원 정승재씨는 “각자 자기 목소리를 담아내려는 시도를 했지만 의미 부여가 과도한 듯한 인상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1위 입상자를 내지 못한 성악 여자 부문 심사위원장 정복주씨는 “무엇보다 발성의 기본을 다시 한번 생각했으면 한다. 콩쿠르 곡은 어떤 상황에서도 무리가 되지 않고 잘 소화할 수 있는 여백이 있는 곡으로 정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각 부문 심사평 전문은 중앙음악콩쿠르 홈페이지(concours.joins.com)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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