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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치료보다 예방이다 ‘청정한 마음’부터 닦아야

중앙일보 2013.03.12 00:42 종합 25면 지면보기
도교의 내단 수련을 통해 순수하고 바른 기(氣)로 이루어진 ‘참된 몸’을 성취함을 상징하는 그림. ‘좌단출신입화도(坐丹出神入化圖)’라 불린다. 중국 원나라 때 윤진인(尹眞人·생몰년 미상)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성명규지(性命圭旨)』에 실려 있다. 『동의보감』에는 이런 도교의 양생술이 새롭게 해석돼 있다. [사진 원광대]


허준의 『동의보감』은 수많은 문헌과 임상 자료를 섭렵한 끝에 나온 결정체다. 실제로 『동의보감』에 인용된 문헌에는 의학서만 있는 게 아니다. 도교 관련서를 다수 인용한 점이 눈에 띈다.

한의학사 최고봉, 동의보감 400년 ⑤·끝 동의보감과 도교 양생술



 의학은 전통적으로 도교 사상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발전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의학서인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부터 그런 경향이 시작됐다. 도교-의학의 상호 관계는 『동의보감』에서 더욱 새롭게 발견된다.



 도교 사상과 전통 의학은 둘 다 인간의 전인적 생명을 잘 보전한다는 양생론(養生論)의 입장을 공유한다. 의학은 철학적 기반을 도교 사상에 두고 발전했고, 도교는 의학적 연구성과를 받아들이며 양생법을 보완했다. 도교와 의학의 분화현상이 뚜렷해지는 송나라·원나라 이후에도 양자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전승돼 왔다.



 『동의보감』은 양자의 유기적 관계를 다음과 같이 밝혀 놓았다.



 ‘도가(道家)는 청정수양을 근본으로 삼고, 의가(醫家)는 약이침구로써 치료를 하니, 도가는 정미하고 의가는 거칠다(道家以淸淨修養爲本, 醫家以藥餌鍼灸爲治, 是道得其精, 醫得其粗也).’ 이는 대개 질환 치료보다 발병 이전에 건강을 잘 관리하자는 예방의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으로 해석된다.



 도교와 의학 둘 모두에 해박했던 고옥(古玉) 정작(1533∼1603)이 『동의보감』 편찬에 직접 참여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고옥은 조선시대 선가(仙家)의 주요 인물로 손꼽히는 북창(北窓) 정렴(1506~49)의 친동생이다. 북창 가문에는 대대로 도교 수련가들이 배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북창과 고옥은 계향당(桂香堂) 정초(1495~1539)와 함께 일가삼선(一家三仙)으로 불렸다.



 한무외(韓無畏·1517~1610)가 지은 『해동전도록(海東傳道錄)』은 한국 선가의 흐름을 소개하고 있는데, 북창은 매월당(梅月堂) 김시습(1435~93)의 선맥을 계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매월당은 당나라 때 저명한 의학가이면서 도교적 양생을 실천했던 인물인 손사막(孫思邈·581~682)의 풍모를 흠모했다고 하는데, 『천금요방(千金要方)』이란 저술을 남긴 손사막에게서 고옥의 풍모가 연상되기도 한다.



 『동의보감』에 보이는 도교와 의술의 연관 구조는 『황제내경』과 대체로 상통한다. 기(氣)의 원활한 움직임을 중시하면서 몸과 마음을 통합체로 보는 인간관,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통합적으로 사고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세계관 등이 기본 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도(道)를 체득하여 궁극적으로 도와 하나가 된 진인(眞人)을 이상적 삶의 전형으로 제시하고 있는 점도 전통적 맥락과 통한다.



 나아가 『동의보감』은 『황제내경』 이후 발전된 의학 이론과 도교 사상을 폭넓게 종합해 냈다. 『동의보감』의 신형편(身形篇)에는 그 같은 성과가 집약돼 있다. 특히 도교의 대표적 수련법인 ‘내단(內丹)사상’을 제시하고 있는 점을 주요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내단사상의 대표적 고전인 『황정경(黃庭經)』, 『참동계(參同契)』 등이 중요하게 인거되고 있다. 당·송대 이후의 내단사상은 불교와 유교를 융합한 삼교융합(三敎融合)의 경향을 보이는데 『동의보감』에는 이같은 경향까지 모두 중시되고 있다.



 『동의보감』이 의서인 이상 병자를 상대로 하는 대증요법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병을 낫게 하고 건강을 회복하는 것을 기본 목표로 삼는다. 동시에 성숙한 도교적 수행법을 소개하고 있는 것인데 『동의보감』의 도교적 관점에 대해선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인간의 몸에는 선천적인 원기(元氣)가 깃들어 있으며, 장수와 건강의 비결은 수행을 통해 원기를 회복하는 데 있다.



 둘째, 선천적 원기의 회복은 마음 수행을 포함한다. 송대의 백옥섬(白玉蟾·1194~?)은 도(道)와 마음이 둘이 아니라는 도심불이론(道心不二論)을 제기했는데, 『동의보감』에도 청정한 마음을 지녀야 도가 깃든다는 시각이 수용돼 있다.



 셋째, 선천적 원기(세분하면 元精·元氣·元神)를 회복하는 수행에서 단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상·중·하로 구분하는 삼단전(三丹田)에 관한 논의에서, 중국 내단사상의 경우 하단전은 정(精)을 단련하고, 중단전은 기(氣)를 단련하며, 상단전은 신(神)을 단련하는 부위로 대개 간주하곤 한다.



 하지만 『동의보감』에서는 하단전을 정, 상단전은 기, 중단전은 신으로 연결시키는 독창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 같은 『동의보감』의 단전 이론을 오늘날 수련 단체의 하나인 국선도(國仙道)에서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에 관해서는 앞으로 좀 더 탐구해볼 가치가 있다.



 넷째, 『동의보감』에는 『황정경』에 나오는 존사법(存思法·도교 수행법의 하나)이 소개된다. 존사법은 인체에 깃든 신(體內神)을 관조함으로써 심신을 잘 기를 수 있다고 보는 일종의 명상법이다. 또 『참동계』에서 밝혀놓은 수(水)-화(火) 두 기운의 만남, 즉 물 기운은 위로 올라가고 불 기운은 아래로 내려오게 하는 과정(水昇火降)을 통해 단(丹)을 결성하는 것과 같은 전문적 도교 이론까지 알려주고 있다. 세계와 인간을 보는 시각, 올바른 삶의 길이나 이상적인 인격의 제시에서부터 고도의 양생술에 이르기까지 상당 부분 도교적 관점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김낙필(원광대 교수)



 ◆내단(內丹)=도교 양생술 용어. 오래 묵은 기(氣)를 내뱉고 신선한 기를 들이마시는 일종의 호흡법이자 정신수련법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함께 관조하는 수련을 중시한다. 단학(丹學), 혹은 선도(仙道)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불로장생을 위해 외부의 약물을 복용했던 외단(外丹)과 구별된다. 『동의보감』에는 중국 당·송나라 이후의 내단사상이 많이 반영돼 있다.



◆김낙필=1949년생. 서울대 철학박사. 인하대 철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원광대 한국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도교 가운데 내단사상의 이론과 실천적 방법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저서 『조선시대의 내단사상』, 공역서 『내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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