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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고도 낯선, 그럼에도 껴안을 수밖에 없는 …

중앙일보 2013.03.12 00:40 종합 26면 지면보기
소설가 조경란은 사람뿐 아니라 사물과의 관계에도 관심이 많다. 사람을 위로해주는 사물이 있고, 사람을 이해하는 데 사물이 하나의 통로가 될 수 있어서다. 소설집에 실린 단편 ‘성냥의 시대’는 성냥공장에서 평생을 보낸 아버지를 회상하는 아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소설가 조경란(44). 가족을 통해 관계와 소통의 문제를 파고들어온 대표적 작가다. 그가 5년 만에 내놓은 소설집 『일요일의 철학』(창비)의 화두도 여전히 가족이다.

소설집 『일요일의 철학』 펴낸 조경란



 다만 이번에는 좀더 여유로워졌다. 서로 어그러지고 삐걱대며 생채기를 냈던 예전 작품 속 가족들의 마음이 한결 따뜻해졌다. 상대를 품어 안는 모습도 보인다. 상처를 주고 받았던 가족이 시금치 씨앗을 심고 싹을 틔우는 과정을 지켜보며 화해하는 과정을 담은 단편 ‘파종’이 대표적이다.



 -왜 줄곧 가족인가.



 “가족은 세상에서 만난 첫 번째 사회적 관계다. 친밀하지만 어려울 때도 많고, 관계를 맺는 게 수월하지 않거나 고달플 수 있지 않나. 그런데 이제 보니 가족은 받아주는 능력이 필요한 대상이다.”



 -달라진 계기가 있었나.



 “내가 할 수 없는 게 세상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다. 받아들이고 포기도 하고, 의미 있다고 깨달아지면 맞춰가기도 하는 거다. 예전에는 나에게 너그럽고 남에게는 엄격했다. 그래서 세상과 부딪쳤던 게 아닐까 싶었다.”



 그의 작품에는 관계에 대한 고민이 많다. 이번 책도 마찬가지다. 면역질환에 걸려 은퇴한 교사와 투포환 선수의 꿈을 접은 채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는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학습의 생(生)’이나 가족과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머물며 낯선 이들과 조심스레 교류하는 작가의 이야기인 ‘일요일의 철학’ 등이다.



 -역시 사람은 힘든 존재다.



 “나 자신도 타인과 관계를 맺는 속도가 느린 편이다. 관계 개선이나 회복은 더더욱 힘들게 느낀다. 사람 사이가 단절됐다는 문제 의식은 있지만 혼자 사는 세상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고독한 사람이다.”



 소설 속의 인물은 조금씩 그를 닮았다.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고, 세상에서 받은 상처와 고통을 조용히 견뎌낸다. ‘단념’이나 ‘학습의 생’ 속 주인공은 타인의 무례나 세상의 오해에 적극 대응하지 않는다.



 -소설 속 인물이 지나치게 수동적이다. 때론 답답할 정도다.



 “고통스러운 상태를 유지하는 게 가장 강력한 저항이라 생각한다. 수동적인 조용한 방어를 하는 거다. 그런 사람은 응축된 힘을 갖고 있다. 조용한 방어로 밀어내는 상황에서 상처를 준 사람과 잘못한 상대도 자신들의 행위가 나쁜 일이라는 걸 알게 되는 거다. 그 과정을 조용하게 보여주려 했다.”



 -‘파종’ ‘일요일의 고독’ 등에 씨앗이 등장한다. 의도한 바가 있나.



 “나도 교열을 보다 확인하고 놀랐다. 사실 내가 ‘파종’과 같은 작품을 쓸 거라 생각은 못했다. 조카 넷을 키우면서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갖게 됐다. 그런 것이 반영된 것이겠지.”



 -단편 ‘밤을 기다리는 사람에게’에서 ‘꼭 가운데가 아니라도 (화)살을 쏘아 닿는 곳이면 어디나 명중일지 모른다는 의외의 확신 같은 것을 들게 합니다’라는 문장이 와 닿았다.



 “문학과 인생에 대해 고민할 때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우리는 보통 명중 여부만 따진다. 활을 들고 앞을 응시하고 쏘는 팽팽한 순간도 중요하다. 이제 나의 고민과 불안은 소설을 쓸 때 긴장감을 잃을까, 소설이 낡을까 두려운 거다. 과녁의 한가운데를 맞추느냐는 그리 중요하진 않다.”



 -문장이 시적이다. 독자가 빈칸을 채워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그런 지적을 많이 받았다. 독서는 발견의 과정이다. 독자도 집중력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 나는 수공업자다. 대패 같은 문장을 쓰기 위해 끊임없이 다듬는다.”



글=하현옥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조경란=1969년 서울 출생.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불란서 안경원’이 당선되며 등단. 일상의 사소한 사건에 세밀한 묘사가 특징이다. 소설집 『국자 이야기』 『풍선을 샀어』 등. 장편소설 『식빵 굽는 시간』 『가족의 기원』 『혀』 『복어』 등. 동인문학상·현대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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