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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1일 오후 2시46분… 일본, 희망의 시간으로 바꾸다

중앙일보 2013.03.12 00:31 종합 8면 지면보기
11일 미야기현 게센누마에서 한 주민이 황량한 공터로 변해버린 옛 집터에서 묵념하고 있다. 당시 떠밀려온 어선 ‘제18 교토쿠마루호’가 방치돼 있다. [게센누마 로이터=뉴시스]


3평 남짓한 가설주택 마루의 벽에 가지런히 붙어 있는 31장의 사진.

일 언론, 대지진 2년 맞아 고통 이겨낸 사람들 소개



 장녀인 린(琳·당시 6세)은 유치원 운동회에서 힘차게 손을 들고 있다. 차녀 레이(麗·당시 4세)는 주먹밥을 손에 쥔 채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다. 그리고 두 딸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내 마키에(당시 36세)의 모습.



 “보배 같은 딸들이었습니다. 아내는 제가 한눈에 반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진 속 모든 게 이와테(岩手)현 리쿠젠타카타(陸田高田)시의 49세 닛타 미쓰구(新田貢)에게는 일상의 행복이었다. 그러나 2년 전 쓰나미가 세 명을 앗아갔다. 처음엔 괴로워서 사진을 붙일 수 없었다고 한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울컥 눈물이 쏟아져서…. 시신을 확인한 뒤로는 하루 종일 눈물로 지새웠습니다. 이러다 미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난 여덟 살 때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목수였던 아버지가 펑펑 우는 모습에 충격을 받아 난 그때 이후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습니다. 아들에게도 ‘남자는 우는 게 아니야’라고 말해 왔는데….”



 닛타는 현재 아들 유(佑·11세)와 둘이서 산다. 아버지의 말 때문인지 3·11 때도 유는 닛타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집에서는 울지 않는 유가 할아버지 집에 가면 고다쓰(책상난로) 속에 들어가 엉엉 운다는 이야기를 나중에야 들었습니다. 참고 있었던 거죠. 제 마음이 미어졌습니다. 그때부터입니다. 눈물이 나와도 제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게 된 건.”



 닛타는 마음을 다잡고 아내와 딸 사진을 다시 꺼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3·11 동일본 대지진 발생 2년을 맞는 11일 사회면에서 닛타의 스토리를 소개했다. 쓰나미로 아내와 두 딸을 잃고 아들과 둘이 살아가고 있는 닛타의 지난 2년의 심적 고통과 역경, 재출발의 모습을 통해 “이제 눈물을 닦고 힘차게 앞을 향해 걷자”는 메시지다.



 지난해 여름 리쿠젠타카타를 찾은 한 스님을 만난 이후 닛타의 생활은 180도 변했다.



 “따님과 부인의 모습은 안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실은 언제나 당신 곁에 와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말을 들은 이후 꿈에 딸과 아내가 나오기 시작했다. 너무나 기뻐 꿈속에서 딸을 안고 소리를 질렀다. 아내와는 꿈의 대화도 나눴다. 한시라도 빨리 다시 만나고 싶어서일까. 그날 이후 닛타는 매일 일찍 잠자리에 든다.



 “아내와 딸들이 늘 내 곁에 있다는 생각에 더욱 즐거운 곳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들과 둘이 한국도 가고 몽골도 갔습니다. 린도 레이도 아내도 우리와 함께 즐기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아내에겐 결혼하기 전 ‘어디든지 데리고 다닐게’란 말을 했는데 그게 죽은 후가 될 줄은….” 이제는 가는 곳마다 기념품을 사 와 벽에 걸린 아내와 딸 사진 옆에 장식하는 게 기쁨이 됐다.



 “2년 전 제 인생은 사실상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이젠 마음을 열고 살아가자는, 그런 생각입니다.”



 한편 일본 정부는 11일 도쿄 국립극장에서 일왕 내외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3·11 2주기 추도식을 개최했다. 1만5881명의 사망자, 2668명의 행방불명자가 발생한 미야기(宮城)·이와테·후쿠시마(福島)의 각 피해지역을 비롯해 일본 곳곳에서도 지진이 발생했던 오후 2시46분을 기해 일제히 묵념을 올렸다.



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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