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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회고록 쓰는 원자바오에 中심장 초긴장

중앙일보 2013.03.12 00:30 종합 8면 지면보기
원자바오
중국 전인대(全人大·국회 격) 개막일이었던 지난 5일. 1시간40분 동안 계속된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재임 중 마지막 정부공작보고(정부업무보고)가 끝나자 외신기자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지난 10년간 원 총리가 집착했던 ‘정치개혁’이라는 단어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정치개혁’ 대신 ‘정치 건설’ ‘정치적 용기’ 등 수사적 단어만을 나열했다. 지난해 전인대에서 “정치개혁을 하지 않으면 제2의 문화혁명이 올 수 있다”는 등 극단적 발언을 쏟아냈던 그였다. 외신들은 원 총리가 떠나는 사람으로서 체념했거나 후임자에 대한 배려 정도로 분석했다. 그러나 이유는 딴 데 있었다.


인터넷 매체 보쉰 보도 … “정치개혁 어떻게 공격받았는지 기술”

 미국에 서버를 둔 중화권 인터넷 매체인 보쉰(博迅) 잡지 3월호는 “원 총리가 퇴임 후 첫날부터 지난 10년을 돌아보는 회고록을 쓸 계획이며 이 회고록에는 자신의 정치개혁이 어떻게 공격을 받았고 좌절됐는지를 기술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는 전인대가 끝나는 17일 리커창(李克强) 상무부총리에게 총리 자리를 물려주고 퇴임한다. 회고록에는 개혁을 둘러싼 권력 투쟁 내용도 포함될 것으로 보여 시진핑(習近平) 당 총서기 중심의 새 국가지도부에도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원 총리는 2003년 총리 취임 이후 정치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수 차례 모욕을 당했다고 보쉰은 보도했다. 실제로 그는 2008년 쓰촨(四川) 대지진 발생 당시 현지에서 당과 군 관계자들에게 효율적인 구호작업을 위한 회의를 주재하던 중 군 관계자들로부터 “현실을 너무 모르고 비현실적인 개혁만 외친다”는 면박을 받기도 했다. 그는 전문 관료 출신으로 총리 재임기간 내내 중국 권력을 분점하고 있는 시진핑 총서기 중심의 태자당(혁명원로나 고위관료 자제 출신 정치세력),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중심의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 핵심간부 출신 정치세력),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 중심의 상하이(上海)방(상하이시 핵심간부 출신 정치세력)의 견제를 받았다. 특히 원 총리가 2011년 1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법치를 위해 사법부 독립이 필요하고 ▶민주권리를 위해 언론자유를 허용해야 하며 ▶경제개혁을 통해 공평사회를 건설해야 하는 등 정치개혁 5개 안을 밝힌 이후 당 내외 비판이 고조됐었다.



 보쉰에 따르면 원 총리는 회고록 작성 계획을 최측근 비서 3명에게 밝혔다. 원 총리는 자신이 직접 작성할 회고록에서 친인척들의 축재 관련 내용도 밝힐 예정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10월 원 총리 일가 재산이 27억 달러(약 3조원)에 이른다고 보도했었다. 이후 원 총리는 보도 내용이 사실무근이라며 당 지도부에 자신의 재산에 대한 조사를 주문해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다. 최근 그는 “인민과 역사 앞에 서서 잘잘못을 평가받고자 하며 그 평가는 역사만이 할 수 있다”며 회고록 작성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원 총리는 지난 1월 베이징(北京) 중난하이(中南海·중국 최고 지도부 거주지)에서 열린 한 내부 간담회에서 “내 아이가 비즈니스에 뛰어든 것을 막지 못한 것은 정치적으로 중대한 잘못이자 용서받기 힘든 실수로 내 평생 한이 될 것”이라고 반성했다.



 그가 회고록을 쓴다 해도 중국에서 출판될 수 있을지 여부는 미지수다. 원 총리는 “회고록이 중국 대륙에서 곧바로 출판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변화는 매우 빠르기 때문에 대륙에서 출판되기를 바라며 총리도 인민처럼 자신의 주장을 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내 회고록은 리펑(李鵬) 전 총리나 자오쯔양(趙紫陽) 전 총서기의 일기(자서전)가 아니다”고 밝혀 권력 내부의 민감한 내용도 과감하게 공개할 것임을 시사했다. 리 전 총리 회고록은 2010년 미국에서, 자오 전 총서기의 회고록은 2009년 홍콩에서 각각 출판됐다.



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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