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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욱의 과학 산책] 유전자를 훔친다 … 극한의 생존법

중앙일보 2013.03.12 00:23 종합 32면 지면보기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
코메디닷컴 편집주간
다음과 같은 능력을 두루 갖춘 생물은 무엇일까.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뜨거운 온천 속에 산다. 여기서는 햇빛의 에너지를 이용한 광합성으로 당분을 만들어낸다. 오래된 광산의 캄캄한 갱도 속 배수로에도 산다. 이때는 박테리아를 먹이로 삼는다. 배터리 용액처럼 부식성이 강하고 비소와 중금속이 고농도로 포함된 물속에서 번성한다. 답은 물속에 사는 홍조류의 일종인 갈디에리아(Galdieria sulphuraria)다. 조류(藻類)란 구조가 간단한 수생식물을, 홍조류란 김이나 우뭇가사리처럼 붉은색을 띤 종을 말한다. 단세포 생물인 갈디에리아는 어떻게 이처럼 놀라운 탄력성과 회복력을 갖출 수 있었을까.



 미국 오클라호마대와 독일 하인리히하이네대의 공동연구팀이 지난주 ‘사이언스’ 저널에 발표한 내용을 보자. 그 핵심은 선조에게 물려받지 않은 유전자, 다시 말해 다른 종에서 훔치거나 빌려온 유전자에 있었다. 원래 이 같은 ‘수평적 유전자 이동’은 박테리아, 즉 세균의 전매특허인데 이번에 홍조류에게서도 확인된 것이다.



 고열을 견디는 능력은 지놈 내에 수백 벌의 복사본 형태로 존재하는 유전자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이들 모두는 수백만 년 전 고세균에서 훔쳐온 단 하나의 유전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해석된다. 수은이나 비소 같은 독극물의 해를 입지 않고 단백질과 효소를 운반하는 능력은 박테리아에게서 슬쩍한 유전자 덕분이다. 고농도의 염분을 견디는 능력, 엄청나게 다양한 대상을 먹이로 이용하는 능력은 자신과 동일한 극한 환경에 거주하는 박테리아의 유전자를 복사한 것이다.



 갈디에리아는 박테리아나 고세균과 달리 세포 내에 핵을 둘러싼 핵막이 있는 진핵생물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생물은 다른 종의 유전자를 베껴올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번에 이런 한계를 뛰어넘은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갈디에리아는 생명공학 기술의 꿈을 실현시킨 사례”라고 평가했다. 여러 종의 각기 다른 생물에게서 흥미로운 능력을 지닌 유전자를 가져온 뒤 이를 통합해 제대로 기능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어내고 독특한 능력과 적응력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단세포 생물이 이미 이룩한 결과를 따라잡기 위해 지금도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폐기물에서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는 특정 조류(藻類)에 독극물 내성 단백질을 만드는 갈디에리아의 유전자를 이식하는 것도 그런 분야의 하나다.



조 현 욱 객원 과학전문기자·코메디닷컴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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