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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여야 주파수 협상안, 위험하다

중앙일보 2013.03.12 00:20 종합 33면 지면보기
윤현보
한국전자파학회 명예회장
박근혜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을 놓고 여야가 대치하면서 주파수 정책까지 협상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협상 테이블에 올라와 있는 주파수 관련 업무 안은 정보통신 발전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개악이다.



 국회 여야의 정부조직법 협상 테이블에는 통신용 주파수 등은 미래창조과학부, 방송용은 방송통신위원회, 주파수 재배치는 국무총리실 전파정책심의위원회가 각각 담당하는 안이 오르내리고 있다. 주파수를 용도별로 나눠 관리하고, 재배치는 무조건 심의위원회에서 처리하자는 발상이다. 이는 주파수가 마치 공산품처럼 용도별로 나눠지는 것으로 아는 무지의 소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미국·일본·영국 등 주요 선진 각국에서도 그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조정 안이 확정되면 우리의 정보통신 발전은 더뎌지고 국제 경쟁력마저 추락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주파수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현대사회의 공기와 같은 존재다. 스마트폰 통신, 방송, 위성 통신, 군 통신, 컴퓨터의 블루투스 등에 사용되는 등 사회 곳곳의 ‘혈맥’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핵심이자 새로운 산업 창출의 동력원이다. 공산품을 찍어 내듯 마구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사용할 수 있는 양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 이 때문에 주파수를 가장 값지게 사용할 수 있는 신기술을 개발하고, 활용도가 미흡하면 거둬들여 재배치하는 등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관리가 필요한 것이 주파수다. 방송용으로 쓰다가도 주파수 신기술이 개발되거나 용도가 없어지면 재빠르게 통신용이나 기타 용도로 돌려 쓸 수 있고 그 역도 가능하다. 더구나 통신과 방송의 구분이 거의 없어진 마당에 그렇게 분할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이미 우리는 아날로그 지상파 방송에 디지털 신기술을 적용함에 따라 남게 된 주파수를 새로운 용도로 재배치해 신산업을 일구고 있다. 국회 여야의 협상안이 그대로 굳어진다면 정보통신 발전을 저해하는 갖가지 역기능을 낳을 것이다.



 첫째는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 잡은 방송과 통신의 융합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될 것이다. 협상안대로라면 스마트폰에서도 TV를 보는 세상에 어느 주파수를 방송용 또는 통신용으로 볼 것인지 궁금하다. 통신용과 방송용으로 주파수를 나눠 관리하다 보면 신기술 개발과 효율적인 재배치 등은 부처 간 이기주의에 짓눌려 뒷전으로 밀려날 것이 뻔하다. 그동안 부처 이기주의에 손실 입은 국익이 한 두 번이 아니지 않는가.



 둘째는 주파수 관리 주체가 3원화됨에 따라 세계적인 흐름에 뒤처지고, 정책에 혼선이 생길 수밖에 없다. 주파수를 활용한 각종 신산업 창출도 쉽지 않게 된다. 더구나 공이 있으면 자신들의 몫이라고 외치겠지만 골치 아픈 일은 서로 떠넘기는 등 책임행정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연구에 의하면 특정 주파수를 회수해 재배치하는데, 새로운 서비스와 기술 분석, 기존 서비스의 재배치 등에 10년 이상 걸렸다.이를 3개 기관(조직)이 한다고 해보자. 5년마다 정부가 바뀌고, 부처 이기주의가 극심한 우리나라 풍토에서 제대로 굴러갈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새 정부의 당초 구상대로 주파수 신기술 개발과 관리를 모두 미래창조과학부로 일원화해야 한다. 규제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가 할 일이 전혀 아니다. 세계 추세에 역행하고 논리에도 어긋나는 주파수 관련 여야 협상안은 당장 폐기되어야 한다. 급변하는 세계 정보통신기술을 선도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어도 모자랄 판에 주파수가 정쟁의 도구화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윤 현 보 한국전자파학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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