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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전쟁 불감증보다는 전쟁 괴담이 차라리 낫다

중앙일보 2013.03.12 00:18 종합 35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덴아줌마’가 있었다. 미혼인데도 아이고 어른이고 다 그렇게 불렀다. 지금쯤 여든 가까운 할머니가 되셨을 것이다. 손재주가 좋아 자수를 기막히게 놓았다. “저 조막손으로 어떻게….”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솜씨였다. 바느질뿐이랴.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잘했고 입담도 구수했다. 어디서 다툼이라도 나면 조목조목 사리를 따져 잘잘못을 가려주었다. 부지런하고 싹싹해 홀몸이라도 살림살이가 궁하지 않았다.



 딱 하나 ‘덴’이 문제였다. 얼굴과 목 전체가 화상으로 벌겋게 일그러지고 뒤틀린 모습이었다. 처음 만난 아이들은 울음부터 터뜨렸다. 두 손도 성한 손가락이 드물었다. 10대 소녀 시절, 6·25전쟁 와중에 방공호에서 조금 일찍 나오는 바람에 폭격을 맞았다고 했다.



 내 또래 장년층이 어릴 때엔 덴아줌마처럼 마을마다 전쟁의 상처를 생생하게 안고 사는 이들이 있었다. 갈고리손 상이군인이 있었고, 전쟁 끝나고 10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무작정 기다리는 어미가 있었다. 장마철엔 야산에서 몸체가 드러난 불발탄을 두드리다 다치고 죽는 사고도 가끔씩 일어났다. 아직 흔했던 미군 탄약통은 썰매로, 군용 철모는 거름 푸는 용도로 요긴하게 쓰였다.



 무엇보다 6·25를 직접 겪은 부모세대로부터 듣는 전화(戰禍)의 참혹함에서 전쟁이 먼 나라 얘기가 아님을 실감했다. 공비에게 산으로 끌려가다 기지를 발휘해 탈출한 어머니, 38선을 넘다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아버지. 국군이었던 친척어른은 “캄캄한 밤중에 정신없이 퇴각하다 보니 내가 인민군 대열을 따라 걷고 있더라”는 경험도 말한다.



 1953년 휴전 이후 올해까지 60년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보기 드문 전면전 없는 시기였다. 서양·일본이 섬을 비롯해 우리 영토를 침범하기 시작한 19세기 중반 이후를 돌아보라. 청일·러일 전쟁 때는 우리 영토·영해가 전쟁터였고, 일제시대의 중일전쟁·태평양전쟁도 우리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겼다. 6·25는 말할 것도 없다. 그나마 북한이 저지른 무장공비 침투, 각종 테러에 이은 연평해전, 천안함 피격이 전면전도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교훈이자 경종(警鐘)이다. 지난 60년도 사실은 휴전에 불과했다.



 거안사위(居安思危)는 만고의 진리다. 북한이 ‘핵 불바다’ ‘제2 조선전쟁’ 협박을 해대자 카카오톡 등을 통해 전쟁 괴담이 빠르게 번진다고 한다. 전국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졌다거나 포항 산불이 북한 소행일 것이라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나돌았다. 패닉 현상도 문제지만 전쟁 불감증이야말로 위험한 증세 아닐까. 불안은 전염성이 강하나 한 차례 파도를 넘기면 원인과 대응책을 냉정하게 따져보게 된다. 전쟁을 모르는 세대에겐 차라리 괴담 소동이 약이 될지도 모른다.



글=노재현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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