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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50대가 부르는 슬픈 노래

중앙일보 2013.03.12 00:17 종합 35면 지면보기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베이비부머의 막내 63년생이 올해 50대 연령대로 진입했다. 1955~63년생 인구집단을 흔히 베이비붐 세대라고 통칭하므로 이제 한국의 50대는 베이비부머로 가득 찬 셈이다. 베이비부머 715만 명, 이들이 바로 지난 대선에서 3% 승리를 만들어낸 작전세력이다. 주식시장의 작전세력이라면 몽땅 잡아들여야 하겠지만, 대선판의 작전세력이야 집권당으로서는 고맙기 한량없는 든든한 후원자다. 정권을 뒤집고 싶어 안달했던 청장년세대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한국의 부와 권위를 다 거머쥐고, 강남 고층아파트에서 강북 달동네를 지긋이 내려다보면서, 젊은 층을 스펙전쟁에 몰아넣는 그들의 우렁찬 승전가 앞에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외쳐봐야 아무 메아리가 없음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아니다. 3% 승리를 만들어낸 작전세력은 ‘50대 보수 골통’ 전체가 아니라 베이비부머 중하층에 포진한 500만 명이다. 이들은 승자가 아니라 루저, 아주 처절한 루저다. 퇴직했거나 빚투성이 루저, 거기에 부모 봉양과 자녀 부양의 짐을 잔뜩 지고 있는 평범한 가장들이다. 불투명한 앞날, 궁핍한 현실이 주는 불안심리가 급진 변혁보다 점진 개혁을 택하도록 부추겼는데 그 배경에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막연한 향수가 깔려 있었다. 못 배워도 일자리가 널려 있었다는 그 시대의 흐릿한 기억 말이다. 베이비부머 중하층 500만 명 중 300만 명은 영세 자영업자고, 200만 명은 퇴직, 실직, 무직자들이다. 어떻게 생겼냐고? 근처 구멍가게에서 흔히 볼 수 있고, 평일 산에 가면 틀림없이 마주친다. 50대들이 산으로 가는 이유는 너무 많다. 한국의 등산장비업체가 몇 년 사이 세계적 경쟁력을 뽐내게 된 서글픈 이유다.



 이 슬픈 루저들이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일등공신이었음을 누가 알아줄까. 알아준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만, 이들이 70~80년대 산업공단을 가득 채운 공돌이, 공순이의 원조였다. 월급 5만원, 그래도 휴일엔 판탈롱바지에 백구두 닦아 신고 디스코텍을 드나들었고, MJB커피를 맛있게 날라주는 다방레지와 마치코바 소사장을 꿈꿨다. 지하다방에는 장래 희망이 사장님인 별별 인사들이 붐볐다. 가끔 산업공단의 불순분자를 색출하려는 정보부원도 섞였다. 립스틱 짙게 바른 얼굴마담이 “김 사장, 전화!”를 외치면 적어도 열 명 정도는 돌아보던 시절이었다.



 10년 뒤 이들은 진짜 소사장이 됐다. 대졸 학력의 오파상은 무작정 비행기를 탔고 어디선가 용케도 주문서를 낚아 왔다. 증산, 수출, 건설의 함성에 청춘을 바친 세대였다. 고무신을 냇물에 띄워 놀던 소년들이 세계적 조선산업을 일궜고, 실패에 태엽을 감아 놀던 아이들이 자동차산업의 주역이 된 세대였다. 그런데 10년 뒤 느닷없이 찾아온 IMF환란에 공장이 쓰러지는 것을 바라봐야 했고, 어림잡아 세대원 20~30%는 직장을 등져야 했다. 기어이 살아남은 사람은 10년 뒤 밀려났다. 요즘에 일어나는 일이다. 평균 퇴직연령 52.7세, 3억원 아파트와 1억원 현금을 손에 쥐고 고용보험과 연금도 없는 무소득의 절벽으로 무작정 떨어지는 사람들이 한국의 50대, 그 서글픈 자화상이다. 자녀 결혼과 학비, 8년의 무소득 기간을 아파트와 퇴직금으로 충당해야 하는 이들 베이비부머들은 중산층에서 급히 퇴거하고 있는 중이다. ‘중산층 70%’ 공약에 귀가 솔깃했던 이들은 알고 있다. 자녀 분가 임무를 완수한 60세에 이르면 빈곤층으로 이주신고가 되어 있으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빈곤층 입주를 예약한 이들에게 가장 절박한 것은 일자리다. 대통령이 공약한 60세 정년연장은 어떻게 가능할까? 일본 단카이(團塊)세대의 빈곤화를 막은 건 정부가 추진했던 정년연장과 고용유지 전략이었다. 일본 기업과 노조는 임금피크제와 일자리 나누기에 선뜻 힘을 모았다. 고용촉진자금과 세제혜택이 뒤따랐다. 벌써 퇴직했어야 할 60세 이상 원로직원을 절반 임금으로 고용한 기업이 전체의 60%를 넘는다. 일본은 ‘중산층 살리기’를 그렇게 실행했다. 25년 직장인을 무작정 밀어내는 한국의 현실, 직장과 작별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베이비부머의 막막한 심정에 가로등처럼 걸린 건 ‘중산층 70%’라는 공약이다.



 가왕 조용필씨가 필자에게 건네준 곡에 가사를 붙였다. 겨울 해가 짧은 석양을 풀어내던 시각, 첫 구절이 떠올랐다. ‘돌아오는 길목에 외롭게 핀 하얀 꽃들/어두워진 그 길에 외롭게 선 가로등이.’ 그리고 빛나는 기억들과 울렁이던 젊은 시절이 스쳐갔다. ‘내 푸른 청춘의 골짜기에는 아직 꿈이 가득해~’를 쓰다가 쓴 소주를 들이켰다. 퇴직대열에 전입신고 하는 연 100만 명의 베이비부머들, 속울음 우는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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