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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지원 20대女, "부모 재산 얼마냐" 황당

중앙일보 2013.03.12 00:15 경제 1면 지면보기
한 취업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지원서를 작성하고 있다. 적지 않은 취업준비생이 채용 과정에서 기업들의 신상정보 요구가 도를 지나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중앙포토]


서울의 모 사립대학 4학년인 김모(26)씨는 지난해 말 H대기업 입사 지원서를 작성하다 포기했다. 김씨는 “지원 서류에 ‘부모 학력’을 기입하게 돼 있었는데 구체적인 학교 이름까지 묻더라”며 “지방에 있는 부모님과 통화하다 (학력 때문에) 두 분이 부부싸움을 할 뻔했다”고 토로했다.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던 김씨의 어머니가 아들의 입사에 불이익을 주지 않을까 불안해 했던 것.

스펙 대신 끼·열정 본다더니
서류 전형 장벽 여전히 높아
“부모 재산정보 왜 필요한지”



 최근 취업 준비생들에겐 얼굴사진과 학원수강 항목 등을 없앤 올해 현대자동차의 ‘입사지원서 파괴’가 화제였다. 삼성은 집단토론 면접을 없앴다. SK는 11일부터 전국 6개 도시를 다니면서 오디션 형태의 면접, 합숙을 통한 과제 수행을 평가해 50여 명의 인턴사원을 뽑는다.



 이처럼 몇몇 대기업이 지원 절차를 간소화하고 스펙 검증 대신 ‘끼와 열정’을 가진 인재 선발 방식으로 입사 전형을 바꾸고 있다. 하지만 취업 준비생들은 여전히 ‘서류 장벽’이 높다고 하소연한다. 대다수 기업과 공기업·공공기관 등이 지원 서류에 가족사항과 부모 재산 같은 세세한 개인정보를 요구하고 있어서다.



 지난달 국가인권위원회에 한 공공기관의 공채 때 인권 침해가 있었다는 진정이 접수됐다. 오모씨는 진정서에서 “가족관계를 기입한 입사원서 때문에 면접장에서 ‘(지방에 있는) 홀어머니를 떠나 서울에서 근무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며 “이로 인해 모욕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처럼 ‘수퍼 갑(甲)’의 지위에 있는 기업이 전형과정에서 불필요한 개인정보를 요구한다는 지적이 많다. 대기업과 금융회사 50여 곳에 지원했다는 수도권 대학 4학년 김희정(여·23)씨는 “상당수 기업이 직무 연관이 거의 없는 키와 몸무게, 페이스북(소셜미디어서비스) 주소 등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증권사에 지원했던 대학 졸업생 이모(25)씨 역시 언짢은 기억이 있다. 지원서에 부모의 본적과 직업, 월수입, 부동산 가액 등을 빼곡히 적어내야 했기 때문. 이씨는 “취업은 내가 하는데 부모님 재산 정보는 왜 필요하냐”며 “회사가 영업을 위해 이런 정보를 요구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NH·신영·교보 등 일부 증권사가 입사서류에 가족의 재산과 월수입 등을 요구했다가 “일종의 사전검열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서류전형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여전하다. 최근 신입사원을 모집하고 있는 D보험회사는 가족사항 정보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기업의 인사 담당자 스스로도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내용이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기업 인사담당자 300여 명을 설문조사했더니 ▶재산 보유액 ▶본적 ▶거주 형태 ▶종교 등은 취업 때 불필요한 항목이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이를 기재하지 않았을 경우 42.7%가 불이익을 준다고 밝혔다. 선문대 우준모(동북아학) 교수는 “높은 서류 장벽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것은 지방대 학생이 대부분”이라며 “기업은 비용이 더 들더라도 역량 평가를 강화하는 쪽으로 채용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상재·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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