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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樂學[낙학]

중앙일보 2013.03.11 09:53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논어(論語)』 ‘옹야(雍也)’ 편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박 대통령은 이어 “배움을 즐길 수 있고, 일을 사랑할 수 있는 국민이 많아질 때 진정한 국민행복 시대를 열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부는 누구나 즐길 수 있을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다.



 공자는 『논어』 ‘계씨(季氏)’ 편에서 공부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이렇게 구분했다. “태어나면서 아는(生而知之) 사람은 최상이며, 배워서 아는(學而知之) 사람은 그 다음이며, 막혀서 필요해 배우는(困而學知) 사람은 또 그 다음이지만, 막혀도 배우지 않는(困而不學) 사람은 최하이다.” 그래서 옛 석학들조차 서재 이름을 곤학재(困學齋)로 지었지 요학재(樂學齋)로 삼지 않았다.



 작고한 민두기(동양사) 서울대 교수는 말년에 ‘곤학(困學)의 여로(旅路)’란 제목으로 학문세계를 회고한 글을 남겼다. 민 교수의 제자인 이성규 전 서울대 교수는 “왜 하필 ‘곤학’이라고 하셨습니까? ‘樂學’이라 하시지 않고요”라고 물었던 일화를 소개하며 “내가 보기에 선생님은 정말 공부를 좋아하셨으니 적어도 배우는 것이 좋아서(樂學·요학) 배움을 즐겨(樂學·낙학), 배워서 아는(學而知之) 분이었다”고 선생을 추억했다.



 한자 樂은 ‘요’로 읽으면 ‘좋아한다’는 뜻이 되고 ‘낙’으로 읽으면 ‘즐거워한다’는 뜻이 된다. 樂은 무당에서 유래한 글자다. 아래의 나무(木)는 손잡이, 위의 백(白)은 방울을 본떴다. 좌우의 요()는 실로 만든 장식이다. 갑골문자 樂에는 방울[白]이 없었다. 나무 자루에 방울이 달린 줄을 매단 물건을 상형(象形)한 글자였다. 樂은 무당이 귀신을 즐겁게 만들어 불러내는 도구였다. 신기(神氣)가 들 정도로 열심일 때 비로소 즐기는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의미다.



 공부는 본래 ‘가난하여 고생하며 배우는 것(苦學)’이지 나면서 즐기는 것이 아니다. 곤학을 거친 곤지(困知)가 많아져야 새 정부가 강조하는 가치가 창조된다. 아이들에게 낙학을 말하기 전에 곤학을 가르침이 먼저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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