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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정치광대에 왜 열광하나

중앙일보 2013.03.11 00:26 종합 33면 지면보기
이안 부루마
미국 바드대 교수
수많은 이탈리아인이 얼치기나 불신임당한 거부 출신 정치인, 또는 코미디언에게 투표해 정부 구성이 애매해지면서 유럽 주식시장의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대중이 정치인을 불신하면서 이탈리아는 통치 불능 상태에 빠진 듯하다.



 이는 이탈리아만의 현상이 아니다. 기성 정치인에 대한 분노는 글로벌 현상이다. 중국 블로거, 미국 티파티 행동가, 영국 유럽연합(EU) 회의론자(EU 탈퇴를 주장하는 그룹), 이집트 이슬람주의자, 네덜란드 포퓰리스트, 그리스 극우파, 그리고 태국 붉은 셔츠(집단 행동을 일삼는 포퓰리즘 지지자들)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현 상태에 대한 증오와 자국 엘리트에 대한 경멸이다. 우리는 지금 포퓰리즘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전통적인 정치인과 미디어의 권위는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정당들이 무기력증에 빠지고 매스컴이 정치권력에 지나치게 가까워지며 관료주의가 대중 요구에 둔감해질 때 포퓰리즘은 필요한 구제수단이 될 수도 있다. 금융가와 기술관료가 통제하는 글로벌화한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은 공공 문제에 대한 발언권을 잃고 버려진 것처럼 느낀다.



 정치인들은 현재의 위기를 풀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자신들의 이해관계만 따지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악당들을 내쫓기 위해 이전 같았으면 생각도 하지 않았을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뿐이다.



 요즘 두 종류의 포퓰리스트가 주목을 받는다. 하나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나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 같은 거부이며 또 하나는 광대다. 거부도, 광대도 민주주의 시대에 지도자로선 그리 적합하지 않다.



 광대는 정치에서 언제나 역할을 맡아 왔다. 중세 궁정에서 어릿광대는 전제군주 앞에서 바른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오늘날 코미디언은 권력이나 대중에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존재다. 미국에서 자유주의적인 정치 논평은 존 스튜어트나 스티븐 코버트와 같은 코미디언이 도맡는다. 이들은 전통적인 뉴스 진행자보다 더 높은 신뢰를 얻고 있다. 광대 같은 우익 성향의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들은 현재 미국 유권자 사이에서 주류 미디어의 언론인보다 인기가 높다.



 몇 해 전 커다란 붉은 코와 밝은 녹색 가발 차림의 보로조라는 이름의 광대는 멕시코 텔레비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 해설가였다. 그는 선거에 출마한 모든 후보의 구애를 받았다. 1980년대 프랑스 광대 콜루슈는 실제 대통령 경선에 나섰다가 한 신문사의 조사에서 지지율이 16%에 이르는 것으로 나오자 대선 결과에 지나친 영향을 미칠까 봐 사퇴하기도 했다. 네덜란드 코미디언 핌 포루투인은 화려한 쇼맨십으로 근대 유럽 포퓰리즘의 선구로 불린다.



 이제 이탈리아에서 베페 그릴로라는 코미디언이 정치 일선에 등장했다. 그는 최근 이탈리아 총선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유럽에서 직업 코미디언으로는 처음으로 주요 정당 지도자가 됐다. 하지만 광대와 관련해 생각해 볼 점은 지금껏 자기 나라를 통치하려는 대망을 가진 인물이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릴로의 경우 범죄 전력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직장을 얻을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 광대들은 사람을 자극하지만 이는 오히려 건전할 수 있다. 그들은 직업 정치인 계급의 일원이 되는 것보다 자신들의 견해로서 세상에 영향을 끼치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때로 불편하지만 진실인 것, 꼭 언급해야 할 이야기를 입에 올린다.



 필요한 것은 무엇이 대중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주류 정치인이다. 광대들이 말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Project Syndicate



이안 부루마 미국 바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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