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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형마트 판매품목 제한, 발상부터 괴이하다

중앙일보 2013.03.11 00:25 종합 34면 지면보기
서울시가 대형마트가 파는 품목까지 제한하겠다고 나섰다. 며칠 전 서울시는 대형마트와 기업형 수퍼마켓(SSM)에 야채와 수산물, 두부·계란 등 신선·조리식품 등 모두 51개 품목을 팔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강제가 아니라 권고라는 말도 덧붙였다. 내달에 공청회를 열어 품목을 새로 조정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설령 그렇다 쳐도 어떻게 이런 발상이 가능했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게다가 앞으로 권고에 그치지 않을 태세인지라 더 걱정스럽다. 효과가 없을 경우 법 개정을 건의하겠다고 하니 말이다. 또 신규 출점하는 SSM에 사업조정 신청이 들어오면 심의 과정에서 품목 제한을 하겠다고도 한다.



 서울시는 전체 시민을 위한 지자체다. 시민이 안락하고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다. 비록 서울시가 재래시장과 영세상인을 돕는다고 해도 그건 시민의 권익과 건강을 담보하는 범위 안이라야 한다. 하지만 이번 조치는 그렇지 않다. 시민의 편의와 건강, 물가 안정을 희생시켜 재래시장과 영세상인을 돕겠다는 모양새다.



 소비자로서의 시민 불편은 앞으로 매우 커질 것이다. 한 끼 식사를 장만하기 위해 당근과 호박은 대형마트에서 사지만 감자와 상추는 재래시장에서 사야 한다. 꽃게와 새우는 대형마트에서 사고, 낙지와 조개는 재래시장에서 사는 일도 비일비재할 것이다. 1000만 서울시민이 끼니마다 이런 불편을 겪어야 한다는 얘기다. 식생활에도 적신호가 걸린다. 재래시장과 영세상인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 중 하나가 신선식품의 관리 문제다. 만일 제대로 관리가 안 된 수산물을 재래시장과 영세 가게에서 사는 바람에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면 서울시는 대체 어쩔 요량인가. 시민의 장바구니 물가가 오르는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형마트의 가장 큰 장점이 대량 구매에 의한 저렴한 가격이라는 건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게다가 이번에 판매가 제한된 품목들은 하나같이 장바구니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들이다. 물가가 올라 시민 생활이 쪼들린다면 서울시가 책임을 질 것인가.



 재래시장과 영세상인을 살리겠다는 서울시의 정책 목적을 폄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렇더라도 방식이 틀렸다. 우리가 그동안 누차 지적했지만 대형마트와 SSM을 규제할 일이 아니다. 재래시장과 영세상인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서울시가 정말 재래시장을 살리겠다면 유통 및 물류체계의 개선부터 서둘러야 한다. 그럼으로써 장바구니 물가를 낮추고 식품의 신선도를 최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1993년 처음 생긴 대형마트가 오늘날 이토록 성공한 비결도 이것이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된다면 제주도의 수퍼마켓협동조합에서 배워라. 지역 상권이 똘똘 뭉쳐 물류센터를 건설하고 원스톱 배송시스템을 갖춰 대형마트와 당당히 경쟁하고 있다. 아무리 목적이 좋아도 시민을 괴롭히는 정책이 돼선 안 된다. 시민 소비자들이 궐기를 해야 정신 차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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