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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층간 소음에 막힌 르 코르뷔지에 아파트 유토피아의 꿈

중앙일보 2013.03.11 00:23 종합 35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강일구]


‘아파트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1887~1965). 그는 ‘아파트 유토피아’를 꿈꿨다. ‘쉬고 먹고 놀고 즐기는’ 인간사 모든 것이 갖춰진 건 기본이요, 나아가 ‘삶의 욕구는 물론 정신을 고양하는 인간 중심의 공간’이 그것이다. 단순히 집뿐 아니라 마을, 공동체까지 포함한 건축개념이다. 이를 위해 1930년대 아파트형 파리 재개발을 추진했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정치권 반대에 밀려 무산됐다.



 그가 아파트 유토피아의 꿈을 되살린 건 제2차 세계대전 덕분이다. 프랑스 임시정부는 전화(戰禍)로 폐허가 된 도시 재건을 그에게 맡겼다. 그는 마르세유에 거대 고층 공동주택 ‘유니테 다비타시옹’을 짓는다. 현대 아파트의 효시로 건축사에 이름을 올린 그 건물이다. 이후 아파트는 세계인의 주거문화를 바꿨다. 당시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던 앙드레 말로는 그를 그리스의 피디아스, 미켈란 젤로에 이어 인류 3대 건축가로 치켜세우기도 했다. 르 코르뷔지에가 되살아나 한국의 아파트를 보면 뭐라 할까. “괜한 아이디어를 냈다”며 땅을 치지는 않을까.



 수치로는 어느 나라보다 아파트 유토피아에 근접한 게 우리다. 인구의 65%가 공동주택에 산다. 대도시 공동주택 비율이 80%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겉모습뿐이다. 속내는 어떤가. 우리 스스로 아파트를 어떻게 부르는지 보면 안다. 닭장·성냥갑·판박이에서 심할 때는 ‘인간 보관용 콘크리트 박스’까지. 여기엔 르 코르뷔지에의 ‘정신 고양’ ‘인간 중심’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이 대목에서 한국 아파트의 슬픈 전설 한 토막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한 정보기술(IT) 회사 임원이 십 몇 년 전 들려준 얘기,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음 직한 얘기다. 그는 “IT강국 코리아를 만든 건 8할이 아파트”라고 했다. 오밀조밀 한곳에 몰려 있어 광통신망을 까는 비용이 덜 들었고, 이웃과 단절시켜 인터넷 문화 확산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한국 광대역 통신망 보급률은 지금도 세계 최고다. ‘오죽 한국 아파트가 내세울 게 없었으면…’ 하며 혀를 찼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엊그제 또 아파트 층간 소음 때문에 칼부림이 났다. 위층의 쿵쾅 소리에 잠 설치고 아래층의 항의 방문에 아이들 조심시킨 기억, 어느 누군들 없으랴. 층간 소음은 수십 년 해묵은 문제지만 대책은 지지부진하다. 방음 건축 비용이 많이 비싼 게 주원인이다. 보다 못해 주민들이 소음 관리규정을 만들고 서로 감시에 나선 곳도 있다. 이걸 IT 코리아처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순 없을까. 싸고 강력한 방음 신기술 개발, 아파트 주민들 간 소통 강화가 이뤄지는 계기 말이다. 그렇게만 되면 르 코르뷔지에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큰 박수를 쳐줄지도 모를 일이다.



글=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사진=강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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