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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사리 한데 모은 초상화 55점 보러 한밤까지 관람 인파

중앙선데이 2013.03.08 22:55 313호 14면 지면보기
1 ‘제비꽃을 든 베르트 모리소(Berthe Morisot with a Bouquet of Violets)’, 1872, 캔버스에 유화물감
다음 달 중순 내로 런던 방문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이 전시를 놓치면 안 된다. 로열 아카데미 오브 아츠(RA)가 있는 런던 벌링턴 하우스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에두아르 마네(1832~1883)의 전시 ‘Portraying Life’다. 미국 오하이오주 톨레도 미술관과 공동 기획해 톨레도 미술관에서 지난해 소개된 후 런던으로 건너온 순회전이다. 마네가 그린 초상화가 55점이나 소개되는 블록버스터급 전시다.

로열 아카데미(RA) 주최 마네 ‘Portraying Life’전

RA 마네전은 일찌감치 미술 애호가들 입에 오르내렸다. 1월 26일 개막 테이프를 끊기도 전 RA가 “전시기간 중 금요일과 토요일 폐관시간을 평소의 오후 6시에서 밤 11시까지 5시간 연장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사전예약을 받은 결과 평소처럼 운영할 경우 몰려드는 인파를 도저히 소화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RA는 지난해 여름 데이비드 호크니전 때도 야간 연장을 한 바 있다.

그럼에도 전시장은 그림보다 앞사람 뒤통수를 더 많이 보아야 할 정도로 붐볐다. RA가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사이는 피해달라고 당부할 정도다. 일요일 저녁용 프리미엄 티켓은 입장료 15파운드(약 2만5000원)의 2배인 30파운드를 받고 음료와 오디오 가이드를 제공한다.

마네전의 열기는 이 인상파의 선구자가 갖는 이름값을 감안하더라도 다소 이례적으로 보인다. 마네는 근자에 새롭게 조명된 현대 화가도 아니고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한 근대 화가다. 게다가 인상파 중에서도 르누아르나 모네 등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대중의 선호도가 덜한 편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마네가 그린 초상화만 모은 최초의 대규모 회고전이라는 희소성 때문 아닐까. 마네 작품을 한꺼번에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이 없어 오슬로·리스본·뮌헨·파리·보스턴·워싱턴·도쿄 등 30여 개국에서 한두 점씩 ‘깨알같이’ 모았다는 점도 전시의 ‘몸값’을 높인 요소로 분석된다.

2 ‘기찻길(Railway)’, 1873, 캔버스에 유화물감.
3 ‘비눗방울 부는 소년 (Boy Blowing Bubbles)’, 1867, 캔버스에 유화물감
30여 개국서 한두 점씩 ‘깨알같이’ 모아
전시장은 마네의 가족, 마네의 화가 친구들, 마네의 소설가·배우 친구들, 마네의 그림 모델, 유명인 등을 주제로 나뉘어 있다. 그는 역사적·문학적 영웅을 주로 그렸던 과거의 화풍과는 확실히 선을 그었다. 대신 당대의 사람들을 그리는 데 집중했다.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나 자신의 예술적 후원자였던 시인 보들레르의 영향이었다. 그의 인물화를 통해 19세기 부르주아 사회의 풍경을 엿볼 수 있는 건 이 때문이다. 때론 당시 화가들이 그리지 않던 파리 기층 여성들을 그려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도 나온 빅토린 뫼랑을 모델로 한 ‘거리의 가수’(1862)가 대표적이다. 뫼랑은 마네의 논란 많은 작품 ‘올랭피아’ ‘풀밭 위의 점심’(1863)의 모델이기도 하다. 하녀와 소년 등을 등장시켜 가정의 일상을 묘사한 ‘화실에서의 점심’(1868)은 화단으로부터 저속한 주제라는 평가를 받았다.

초상화 속 다채로운 인물들은 화가의 폭넓은 교우관계를 보여주기에 더욱 흥미롭다. 법무부 고위 관리였던 아버지와 외교관의 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유복하게 자란 그는 사교적인 성격 덕에 파리지엔들로부터 최고의 초대손님으로 꼽히곤 했다. 보수적인 화단의 비판에도 그를 비평적으로 옹호했던 작가 에밀 졸라를 비롯해 훗날 문화부 장관을 지낸 죽마고우 앙토냉 프루스트,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 등과 두터운 교분을 다졌다. 프랑스 총리를 지낸 조르주 클레망소도 기꺼이 친구를 위해 모델을 섰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마네의 작품은 평단으로부터 거부반응을 종종 일으켰다. 이유 중 하나는 기법 탓이었다. 붓 자국이 채 마르기도 전에 다른 색을 덧칠하는 특유의 방법에 섬세한 음영 표현을 중요시하던 전통 화단은 뜨악해했다. 초상화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네의 가장 큰 걱정은 인물의 자세를 어떻게 구성하느냐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 사람의 내면을 보여준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모델은 장시간 동안 같은 자세를 취해야 했다. 졸라는 모델을 서던 때를 “그는 마치 인간이라는 동물의 존재를 심혈을 기울여 복사하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평론가들은 대상의 내면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피상적인 묘사라고 흠을 잡았다. ‘에밀 졸라의 초상’(1868)은 “인물의 개성을 잘 전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인물화가 아니라 정물화”(화가 오딜롱 르동)라는 비판을 받았다.

아내와 사뭇 다른 아름다운 제수씨 초상
총 8개의 전시실을 돌다 보면 이런 비판이 부당했다는 생각이 든다. 평면적이고 밋밋하단 이유로 카드 그림이라는 폄하를 당했던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그의 초상화 속 인물들은 시대를 뛰어넘어 말을 걸어오는 매력이 있다. 뭐니 뭐니 해도 눈길을 잡아끄는 건 미모의 여성 베르트 모리조를 그린 작품들이다. 근대 화가 중 검은색을 가장 즐겨 사용했던 마네의 장기를 유감 없이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가 ‘제비꽃을 든 베르트 모리조’(1872)다. 모리조는 마네와 알게 됐다가 훗날 마네의 동생 외젠과 결혼한 화가다. 마네가 가장 선호했던 모델이었고 둘의 염문설이 돌기도 했지만 확인되진 않았다. 분명한 건 마네의 아내 쉬잔의 초상화 속 모습과는 대조적이라는 점이다. 전시는 4월 14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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