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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하고 코믹한 몸짓에 눈도 즐거워라

중앙선데이 2013.03.10 02:34 313호 31면 지면보기
azilsay.com
그는 바흐를 재즈처럼 연주한다. 연주하는 모습과 표정을 보면 더욱 요란하다. 팔을 마구 휘둘러대고 허리를 마치 요가하는 사람처럼 굽혔다 폈다 하고 표정은 웃다가 찡그렸다가 찌푸렸다가 돌연 비장감에 젖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재미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한참 신나게 노는 어린애를 닮았다고나 할까. 그는 ‘프랑스모음곡’이건 ‘샤콘’이건 혹은 ‘이탈리아협주곡’이건 장난감처럼 가지고 논다. 용모가 조금 특이해 심하게 표정 변화를 일으킬 때면 마치 무대에 오른 전문 희·비극 배우가 연기하는 것처럼 보는 이의 흥미를 유발한다.

[음악, 나의 동경 나의 위안] 건반 위의 자유인, 파질 세이

파질 세이(Fazil Say·1970~·큰 사진), 이제 막 신세대 딱지를 떼고 중견으로 발돋움한 나이인데 촌스럽게 생긴 데다 체구도 왜소한 이 터키 출신 연주자는 이미 세계를 자기 손가락으로 정복했다. 터키에는 그보다 앞 세대인 이딜 비레(Idil Biret·1941~)라는 걸출한 피아니스트가 있는데 코르토와 켐프의 제자이기도 했던 이 여성 연주자 역시 쇼팽, 베토벤 등 높은 연주력을 보인 음반으로 지금도 그 성가를 유지하고 있다.
파질 세이의 희·비극적인 요란한 연기에도 불구하고 그가 들려주는 음악은 결코 장난스러운 게 아니다. 2000년도에 출시된 바흐 곡만을 수록한 그의 음반-여기에는 ‘프랑스모음곡’, ‘이탈리아협주곡’, 부조니 편곡의 ‘샤콘’, ‘평균율 제1집’ 등 바흐의 주요 건반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이 무엇보다 확고한 증거물이다. 그 음반을 처음 들었을 때 귀가 번쩍 뜨일 만큼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새털처럼 날렵하게 건반 위를 유영하는 손가락이 보였지만 바흐 음악의 고귀한 품성은 가볍고 빠른 터치에서도 여실하게 살려냈다. 그러나 동영상을 보기 전엔 그 연주가 설마 그토록 요란하고 우스꽝스러운 동작과 표정을 거친 연주라는 건 상상조차 못했다.

“벽을 넘어라. 그러면 천국이 보인다.”
“벽이란 뭐지요?”
“음표지요.”
음반 카탈로그에 나오는 파질 세이의 인터뷰 한 대목이다. 유독 바흐를 연주할 때만 자신은 이 말을 새긴다고 말한다. 이 한마디로 그의 연주와 연주 동작 모든 것이 설명된다. 사실은 모차르트를 연주할 때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기는 한다. 그러나 바흐를 유독 강조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바흐는 해석의 여지가 참으로 많다는 얘기일 수도 있고 음악 안에서 자유로운 유영, 그게 바로 바흐 음악의 정신이란 얘기일 수도 있고 일반적으로 경건한 엄숙성으로 바흐 음악을 규정하는 데 대한 반항이란 의미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파질 세이의 자유로운 유영은 청중에게 설득력과 공감을 얻고 있다.

예민하면서도 단단한 음색을 창출하는 독특한 터치로 바흐 음악의 추상성을 풍부하게 끌어올린 글렌 굴드가 건반의 이단아라면 파질 세이는 건반 위의 자유인이란 말이 어울린다. 둘의 공통점은 어떤 위기상황도 거뜬히 통과할 수 있는 출중한 기교와 신선한 발상을 갖췄다는 점이다. 그런 능력이 없다면 이런 호칭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파질 세이는 실제로 ‘서머타임’이나 ‘포기와 베스’ 등 재즈나 재즈풍 곡을 즐겨 연주하는데 그런 때도 기교는 차고 넘친다.
무대에 서면 연주도 연기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게 보면 파질 세이는 청중 앞에서 자기 특유의 연기를 연주와 더불어 충실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연기는 그가 들려주는 음악과 썩 잘 어울린다. 그는 뛰어난 연주자이며 훌륭한 배우인 셈이다. 사람들은 왜 음악을 들으려고 할까? 위안을 구하거나 쾌감을 기대하거나 꿈을 꾸고 싶거나 현실의 감옥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만끽하고 싶은 게 그 이유일 것이다. 파질 세이는 청중에게 해방감을 넘치게 베풀어준다.

나는 몇 해 전 해외 콩쿠르에서 입상한 국내 어느 신진의 연주 모습을 우연히 한 번 보고 그 이후로는 그의 연주를 피하게 되었다. 건반 앞에서 너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모습이 그가 들려주는 음악과는 관계없이 내게도 고통을 주었기 때문이다. 원인을 알 수 없지만 대체로 국내 연주자들은 연기에 서툴거나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연주를 제전(祭典)처럼 너무 딱딱하고 엄숙하게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

캐나다 출신의 앤절라 휴잇(Angela Hewitt·1958~·작은 사진), 프랑스 태생의 엘렌 그리모(Hellen Grimaud·1969~), 이 두 여성도 바흐 연주자로 무대 연기가 뛰어나다고 할 만하다. 이미 중견을 벗어난 앤절라 휴잇은 육감적이라고 할 정도로 표정이 풍부하고 따뜻한 매력 만점의 바흐를 들려주는데 고비마다 감성적 자기도취의 기분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조금 작위적인 듯한 느낌을 주지만 청중의 눈길을 잡아 끄는 카리스마 효과도 있다. 연주시간이 불과 4분여인 쇼팽의 자장가(Berceuse)를 연주하는 엘렌 그리모의 기묘한 표정의 움직임은 보는 이가 아슬아슬할 정도로 연기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런데 그 연기가 음악과 썩 잘 어울리기 때문에 별다른 거부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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