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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차베스의 스승들

중앙선데이 2013.03.10 03:13 313호 33면 지면보기
5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생전 여러 중남미 좌파 지도자를 정신적 스승으로 삼았다. 그의 스승 리스트는 그야말로 중남미 혁명의 역사다.

 가장 존경했던 인물이 ‘남미의 해방자’라고 불렸던 시몬 볼리바르(1783~1830)다. 베네수엘라 태생인 볼리바르는 19세기 초 스페인 식민지이던 중남미의 베네수엘라·콜롬비아(당시 파나마도 포함)·에콰도르·페루·볼리비아의 독립과 민주공화국 수립을 이끌었다. 이 혁명가는 왕정과 식민 통치의 이중 압제에서 벗어나 신분제를 철폐하고 모든 인종과 계층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자유민주 세계를 꿈꿨다.

 차베스는 그를 존경한 나머지 국호를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으로 바꾸고 그의 정신을 계승한 볼리바르주의를 국정 지표로 삼았다. 볼리바르주의는 우선 남미의 경제·정치적 자주를 추구한다. 이는 반미·반서방으로 이어졌다. ‘참여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선거와 국민투표를 통한 국민의 풀뿌리 민주주의 참여도 강조한다. 하지만 이 정책은 차베스의 정치적 야심을 채우는 데 이용됐다. 지지자들의 친정부 시위와 국민투표를 활용해 대통령 연임 제한 조항을 폐지하고 장기집권의 발판을 다졌다.

 식량·소비재 등 경제적 자급을 추구했지만 생필품 부족과 인플레를 유발했다. ‘연대경제’라는 이름의 포퓰리즘 정책도 펼쳤다. 석유 수출로 번 돈으로 빈곤층에 의료·교육·식료품을 무상 제공했다. 절대 빈곤층이 줄어든 성과는 있었지만 국유화와 무상분배 정책으로 경제가 활력을 잃어 인플레율과 실업률이 치솟았다. ‘21세기 사회주의’ 또는 스페인어로 ‘차비스모’ 즉 차베스주의로 불린 이런 정책은 평등을 추구한 인간적인 정책이라는 칭송과 포퓰리즘 독재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볼리바르 다음으로 차베스가 존경한 인물이 쿠바 사회주의 혁명을 주도한 피델 카스트로다. 1959~76년 총리, 1976~2008년 국가수반을 지낸 카스트로는 반미 수장으로 이름이 높다. 무상의료·무상교육의 아이디어도 쿠바에서 따왔다. 차베스는 쿠바는 물론 볼리비아·니카라과·에콰도르 등에 값싼 석유와 원조를 제공하면서 중남미 좌파연대를 구축했다.

 카스트로와 함께 중남미 좌파의 아이콘인 체 게바라(1928~67)도 차베스의 정신적 스승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의사인 그는 중남미를 두루 여행하며 가난·차별, 그리고 사회적 모순을 목격한 뒤 혁명에 뛰어들었다. 카스트로와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 뒤에도 중남미 전역에 혁명을 확산하려고 나섰다가 볼리비아 산중에서 사살됐다.

 73년 민주선거로 대통령에 오른 남미 최초의 좌파 정치인인 살바도르 아옌데(1908~73)도 차베스가 존경했다. 외국자본의 추방과 산업 국유화 등의 정책을 배웠다. 73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정권과 목숨을 함께 잃었다.

 파나마 지도자였던 오마르 토리호스(1929~81)도 차베스가 존경을 언급했다. 68~81년 혁명 최고 지도자라는 직함으로 나라를 통치했다. 내정에선 진보적인 정책을 펼쳤지만 소련에는 반대해 미국의 지지를 얻었다. 77년 지미 카터 당시 미 대통령과 담판해 파나마 운하의 주권 회복을 약속받았다. 운하는 99년 12월 31일 자정, 파나마 소유로 돌아왔다. 그 후광인지 아들 마르틴이 민주선거를 통해 2004~2008년 대통령을 지냈다.

 차베스는 지지자와 적이 모두 많은 인물이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중남미 세계에서 국내외에 뚜렷하게 기억되는 정책을 편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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