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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질 권리, 기억할 권리

중앙선데이 2013.03.10 03:19 313호 34면 지면보기
나를 스스로 아는 것은 인생의 중요한 과제다. 심리학에서는 영유아기에 타인과 나를 구별하기 시작하고 청소년기에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하면서 본격적인 자아상(self-image)이 형성된다고 본다. 자아상, 즉 ‘내가 생각하는 나’는 나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것이다. 성인이 돼서도 자아상은 수많은 관계 속에서 조금씩 바뀐다. 결국 나를 안다는 것은 내가 보는 나와 타인이 바라보는 나를 통합시켜가는 과정이며,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사회적 역할을 적절히 수행하거나 정서적 안정과 만족감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사소한 행동들에도 자아상과 관련된 선택은 숨겨져 있다. 누군가와의 만남을 준비하면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거나 대화 중에 예의를 갖추는 말을 하는 것에서부터, 심지어는 직업으로 무슨 일을 택하고 누구와 어울려 여가를 보낼 것인지를 결정함에 있어서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자아상이 작동을 한다. 30대 여성이 육아로 인해 사직하려면 사회적 유능감을 스스로 포기해야 하고, 건실한 중년의 가장이 혼자 여행을 떠나려면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무책임한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자아상을 위협받을 수 있는 선택에는 항상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누구도 혼자만의 선택을 고집할 수 없으므로, 타인의 시선은 이러한 선택들에 대한 평가의 기준이 되기도 하고 사회적 압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우리는 나의 욕구와 타인의 압력 사이에서 쉼 없이 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문제는 자아상에 영향을 주는 관계들이 갈수록 더 복잡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환경이 소통의 장면을 다양화해 실제로 얼굴을 맞대는 관계가 아닌 불특정 다수와의 관계가 유명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에서의 활동 구분이 어려워지고 한번 노출된 개인적인 활동이나 정보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확대 재생산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인들과 일상을 공유하기 위해 사용하는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에서조차 상대적 박탈감이나 열등감으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례도 있다. 나와는 상관없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나에 대한 정보로 인해 고통받는 사례도 적지 않기 때문에 ‘잊혀질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논의까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모든 개인의 고통이 더 이상 개인적인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개인의 자아상을 지킬 권리를 찾아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이 내 마음까지 다스려주진 못한다.

 페이스북 우울증이나 잊혀질 권리에 대한 논의는 사람을 가리고 있을 자리를 가리라는 선인들의 말씀을 따르기가 참으로 어려워진 현실의 단면이 아닐 수 없다. 비단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인간관계 속에서 불편한 마음을 해소하려면 우선 나부터 과시적 성향을 다스려야 할 것이다.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니까 기왕이면 최상의 상태만을 골라 올린다고 해서 언제나 만족스러울 순 없다. 다른 사람의 생활이 나보다 나은지 못한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서로를 이해하고 친밀해지기 위한 것이라면, 나에 대한 기록도 진솔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나 자신을 더 잘 기억할 권리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명암이 함께 존재하는 삶을 기억할 권리가 있다. 웃는 아이에게만 사랑을 줄 수는 없듯이, 빛나는 것만이 주목받을 만한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성공은 고단한 인내로, 성숙은 지독한 방황으로 빛이 난다. 보통 사람들의 하루하루는 인내와 성공, 방황과 성숙의 사이 어디쯤이다. 그 시간 속에서 나만의 가치를 확인하고 기억할 권리를 적극적으로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기쁨과 슬픔, 희망과 좌절, 자부심과 자괴감이 교차하는 나의 일상을 복원해야 한다. 트로피만 가득 찬 진열장 같은 일기장은 소용없다. 나를 제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의 기억들이 필요한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이 없다면 위대한 창조도 없으며, 오늘의 나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내일의 나도 충분히 아름답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수진 연세대 인지과학연구소에서 일한다. 수용자 중심의 예술비평을 바탕으로 전시·출판·교육 등 시각적 소통이 필요한 다양한 방면에서 작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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