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5월 미국 CNN 방송은 사상 최악의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 소식을 긴급 속보로 전했다. 그의 파키스탄 은신처를 급습한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 씰의 전광석화 같은 작전의 결과였다. 그 소식은 10년 전 빈 라덴이 일으킨 9·11 테러 이상의 충격을 전세계에 전해줬다.
‘제로 다크 서티’ 캐스린 비글로 감독
이번에도 전쟁터… 빈 라덴의 최후가 남긴 것
7일 개봉한 영화 ‘제로 다크 서티’는 미 정보당국이 빈 라덴의 은신처를 파악해 사살하기까지 10년 간의 집요한 추적을 담았다. 빈 라덴의 최후를 다룬 ‘코드네임 제로니모’ 등과 달리 그를 쫓는 요원들의 고뇌와 집념에 초점을 맞췄다. 영화에서 광기에 가까운 집념으로 빈 라덴의 숨통을 죄는 CIA 여성요원 마야(제시카 채스테인)는 실존 인물이다.
그 외 모든 등장인물과 설정도 실제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영화 같은 현실을 실제 같은 영화로 만들어낸 이는 캐스린 비글로(62) 감독이다. 이라크전 폭발물 제거반을 소재로 한 ‘허트 로커’로 201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성 최초로 감독상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전 남편이었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를 눌러 화제가 됐다. 전쟁 등 남성적인 소재를 섬세하게 풀어내 ‘할리우드의 여걸’로 통한다.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허트 로커’ 때와 마찬가지로 가장 리얼한 영화를 만들려 했다. 빈 라덴을 추적하는 과정을 CIA 요원의 관점에서 풀어갔다. 9·11부터 빈 라덴 사살까지 10년 넘게 이어진 어둠에 빛을 비추고 싶었다. 그리고 하나의 목적을 위해 10년간 버텨낸 요원들의 헌신과 희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역사와 예술의 중간 지점에 있는 영화다.”
-동일 사건을 다룬 영화나 책들과 차별화한 지점은.
“작전에 참여한 CIA·FBI 요원과 네이비 씰 요원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그들의 인간적 고뇌와 갈등을 담았다. 한마디로 인간미가 느껴지는 추적이다. 영화로서 이 이상 더 사실과 가깝게 만들기는 힘들 것이다.”
-2년 전 빈 라덴 사살 소식을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그 때 동료와 함께 빈 라덴을 쫓는 영화의 각본을 쓰고 있었다. TV에서 그의 사살 속보를 접한 순간 흥분으로 가슴이 벅차 올랐다. 각본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빈 라덴 체포에 대해 비관적이고 회의적인 CIA 내부의 기류가 그려졌는데, 실제로도 그랬나.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고, 빈 라덴의 행방이 묘연해지면서 CIA 내 공기가 무거웠던 때가 있었다. 빈 라덴의 은신처를 추정하는 보고에 대해 간부들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고, 은신처를 잘못 짚으면 해고될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요원들도 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확신을 갖고 빈 라덴의 은신처를 지목한 이가 실제 있었다. 영화 속 마야다. 승진이나 조직의 생리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는 성격이었기에 가능했다.”
-CIA 요원들이 알카에다 포로를 고문하는 장면이 논란이 됐는데.
“영화를 잘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만든 논란이다. CIA 요원들은 초반 고문장면에서 아무 정보도 얻지 못하고, 결국 다음 테러가 발생한다. 그 후 영화는 CCTV, 현장방문, 자동차 추적, 휴대전화 도청 등 다양한 정보수집 과정을 보여준다. 빈 라덴 은신처를 찾는데 가장 결정적인 단서는 오랫동안 묻혀있던 CIA 내부파일이었다. 고문을 지켜보는, 가장 힘든 장면을 불평 없이 소화해낸 배우 채스테인에게 감사한다.”
정현목·장성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