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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의 시시각각] 서울역 동사 ‘제로’를 찾아서

중앙일보 2013.03.08 00:15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규연
논설위원
# 1. 서울역 KTX 역사에서 노숙인들이 강제 퇴출된 것은 2011년 여름이었다. 언론은 혹한기에 동사자가 무더기로 생겨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매년 서너 명의 동사자가 발생해 왔는데 노숙인들이 잘 데가 없어지면 그 정도가 심해질 수 있었다. 현장의 구호단체·지자체 관계자들은 초조했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 했다.



 1년 반이 지났다. 얼마 전 여러 신문에 올겨울에 최강 한파가 왔는데도 서울역 일대에서 한 명의 동사자도 생기지 않았다는 기사가 실렸다. 강제 퇴출 전보다 나아진 것이다. 작은 기적은 우연이 아니었다. 서울시 대응팀과 민간단체 관계자들이 노숙인숙소를 찾아 서울역 주변을 헤맨, 힘든 여정의 결실이었다. 이제 이들을 ‘서울역 오디세이 탐사대’로 부르려 한다.



 # 2. 서울역박물관 앞 노숙인지원센터. 초저녁인데도 노숙인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이수미 주무관(서울시 거리노숙인 담당)은 강제 퇴거 당시의 심경을 회고했다. “이대로 두면 재앙일 텐데 숙소를 어떻게 마련해 주지.” 탐사대는 대책회의를 거듭하다가 ‘노숙인 자유카페’를 생각해 낸다.



 노숙인들은 인간관계와 규율을 거부한다. 움직이기도 싫어한다.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자유+카페’ 수용센터를 현장에 마련하자는 아이디어였다. 후보지 중 한 곳이 노숙인지원센터였다. “기존 가건물을 2층으로 올리면 가능해 보였다.”(여재훈 센터 소장) 의외의 격랑을 만난다. 문화재청의 반대였다. 자유카페가 서울역박물관의 조망을 가릴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 3. 남대문 쪽방촌 앞 작은 건물도 자유카페의 후보지였다. 일반주택가와 달리 님비현상이 미약할 거라고 생각했다. 탐사대는 건물주와 계약을 하고 냉난방 시설을 설치했다. 개소를 앞두고 이번에는 쪽방촌 주인들이 일어났다. 공짜시설을 만들면 쪽방 장사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카페건물을 에워쌌다. 겨울이 코앞에 다가왔는데 탐사대 행로는 다시 안개에 휩싸였다.



 현장에서 긴급회의가 열렸다. 김상범 행정부시장 등 서울시 간부들도 나섰다. 자유카페는 보류하고 응급대피소 장소라도 찾아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인적이 드문 지하통로를 지목한 건 김 부시장이었다. 나병우 서울시 자활정책팀장은 “마침 중구청 소유여서 결정은 신속하게 내릴 수 있었다”고 했다.



 #4. 서울역 2번 출구 옆 지하통로의 응급대피소에는 100여 명이 누워 있다. 밤 9시. 바닥에 온돌이 깔려 있고 6대의 공기청정기가 돌아간다. 장판을 녹일 정도로 시큼한 냄새가 진동하지만 한번 맛보면 거리로 나갈 생각이 안 날 온기가 느껴진다.



 처음에는 대피소에 제 발로 찾아오는 노숙인은 거의 없었다. 상담요원과 의료진이 새벽까지 돌며 거리노숙인을 설득해 데려왔다. 안 가겠다고 버티는 노숙인에게 따뜻한 커피를 주고 스킨십을 하며 대화를 유도했다. 요원들은 일당 3만5000만원을 받았다. 봉사정신이 없으면 못할 일이었다. 노고가 겹겹이 쌓이면서 작은 기적은 가능해졌다.



 복지행정의 힘은 현장에서 나온다. 정책의 돌파력·적응력은 그곳에서 비롯된다. 서울역 탐사대도 현장의 힘으로 ‘동사 제로’라는 첫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책상에 앉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현장에 귀 기울이고 이를 지원하는 것이다. 탐사대는 2차 항해를 떠나려 한다. 다시 자유카페 부지를 찾는 것이다. 여재훈 소장은 “주변 이해관계자의 반대에 부닥쳐 방황을 했지만 과거에도 미래에도 정작 무서운 난관은 시민들의 무관심일 것”이라고 했다.



 밤 10시, 탐사대와 헤어져 서울역 5번 출구로 나왔다. 귀걸이에 목걸이, 여장 차림의 사내가 거리에 누워 있었다. 여성지향성 정신질환자였다. 상담요원이 달라붙어 설득하지만 사내는 고개를 저어댔다. 5분쯤 지켜봤다. 그동안 이들에게 눈길을 주는 행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규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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