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때 배우자 개인 빚 나누지 않아도 된다
결별 앞두고 빚 늘리기 악용 우려
고법, 판례 뒤집고 “공동부담 부당”

그러나 서울고법이 최근 이 판례를 변경했다. 학교 교사인 C씨(55·여)가 사업가 남편 D씨(56)를 상대로 제기한 이혼 및 재산분할소송에서다. C씨는 순재산이 7900여만원이었다. D씨는 빚만 2억여원 있었다. 기존 판례대로라면 C씨는 자신의 재산 7900여만원의 대부분을 D씨에게 줘야 했다. 그러나 서울고법 가사1부(부장 이광만)는 “한 쪽만 빚이 있고 한쪽은 재산이 있다면 재산분할 대상은 재산이 있는 쪽이 가진 돈과 그 재산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발생된 상대방의 직접적 채무에 한정한다”고 판단했다. 한쪽이 진 빚을 이혼하면서 공동 부담하는 건 불합리하다는 게 근거였다. C씨처럼 이혼 과정에서 남편의 예기치 못한 빚이 드러날 경우 자신의 재산 전부를 이혼하는 남편에게 줘야 한다면 문제라는 거였다. 재판부 관계자는 “기존 판례대로라면 빚이 많을수록 재산이 있는 쪽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돈이 늘어나 이혼을 앞두고 일부러 빚을 늘리는 식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혼을 안 했으면 상관없는 상대방 명의의 빚을 이혼했다고 공동 부담하게 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점도 근거로 내세웠다. 또 상대방의 과도한 빚 때문에 이혼하게 되는 부부의 경우 두 사람 모두 경제적 파탄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가사소송 전문 이상원 변호사는 “부부 중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채무가 많을 때 이혼으로 인해 두 사람 다 경제적으로 파탄 나는 것을 막자는 취지의 판결”이라며 “이혼 사유가 있어도 예기치 못한 상대방의 빚 부담 때문에 이혼을 결정하지 못한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분할 대상인 C씨의 재산 7900여만원의 40%인 3100만여원을 D씨에게 지급하도록 했다. 이 재판은 양측이 모두 상고하지 않아 확정됐다.
박민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