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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로빈후드', '반미 선봉장' 차베스 사망

중앙일보 2013.03.06 11:16
[로이터=뉴시스]
  중남미 좌파 지도자의 대표주자였던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암 수술 뒤 합병증 등으로 인해 5일(현지시간) 사망했다. 59세.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부통령은 이날 TV 생중계를 통해 차베스의 사망 소실을 전한 뒤 “깊은 고통의 순간”이라며 “동포들이여, 평화를 지켜달라. 영광, 존엄과 함께 차베스를 위한 깃발이 게양될 것”이라고 말했다. 2년 동안 암으로 투병한 차베스는 지난해 12월 쿠바 아바나에서 네 번째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뒤 심각한 폐 감염과 호흡 곤란 등에 시달렸고 한때 의식 불명에 빠지기도 했다고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전했다. 차베스는 출국 70일만인 지난달 18일 ‘깜짝 귀국’해 건재를 과시했으나, 결국 회복하지 못했다.



차베스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군중이 거리로 몰려나왔다. 이들은 “차베스는 살아 있다”, “우리가 바로 차베스다”라고 외치며 그를 애도했다. 수도 카라카스 시내의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보안군은 즉시 차베스가 치료받던 군 병원을 둘러싸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1999년 대통령직에 오른 뒤 지난해 10월 대선에서 4선에 성공하기까지 14년 동안 베네수엘라를 통치해온 차베스는 중남미 국가 지도자 가운데 가장 논란이 많은 인물로 꼽힌다. 그에 대한 국내외의 평가도 극명하게 엇갈린다. 지지층은 그를 빈곤층을 대변하는 ‘라틴 아메리카의 로빈 후드’라고 칭송했다. 하지만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국부를 유용하는 ‘괴짜 독재자’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차베스는 54년 7월 서부의 농촌 사바네타의 검소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모두 노동자 계급인 교사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베네수엘라 등 라틴 아메리카 독립 영웅인 시몬 볼리바르를 우상으로 여기며 성장했다. 볼리바르는 베네수엘라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19세기 스페인에 맞서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한때 야구 선수를 꿈꿀 정도로 운동에 열중했지만, 75년 베네수엘라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군에 입대한 것 역시 볼리바르의 영향이 컸다. 승진 가도를 달리던 그는 공수부대 중령 시절이던 92년 당시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 대통령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쿠데타를 감행했다. 차베스는 볼리바르의 이름을 딴 비밀운동 조직을 만들어 이 쿠데타를 10년 가까이 준비했다. 하지만 이는 결국 18명의 사망자와 부상자 60여명만 남긴 채 실패로 끝났고, 차베스는 2년 동안 수감됐다.



정권 교체 뒤 사면을 통해 풀려난 차베스는 제5공화국운동당을 창당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당시는 거대 양당이 번갈아 권력을 잡고 원유 생산으로 얻은 부를 착복하는 등 부패가 극심한 때였다. 이로 인해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자 엘리트 집권층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바로 이때 차베스는 스스로 반체제 운동가를 표방하며 대중 앞에 나타나 오일 머니의 재분배와 의회 해산 등 급진적인 공약을 내걸었다. 결국 그는 98년 대선에서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됐다. 당시 그의 나이는 44세로 베네수엘라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이어 2000년 신헌법체제에서 치러진 첫 대선에서도 6년 임기의 대통령직에 다시 당선됐다.



그의 정치 역정은 영화보다도 더 드라마틱했다. 2002년에는 반대파의 쿠데타로 47시간 동안 실각했지만, 헌법 무력화 등에 반발한 군부가 차베스 편으로 돌아서면서 다시 직위에 복귀했다. 2004년에는 국민소환 투표가 있었지만, 이 역시 이겨냈다. 그는 2006년 대선에서도 당선, 3선에 성공하면서 베네수엘라식 사회주의를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차베스의 ‘선거불패 신화’ 뒤에는 베네수엘라의 4분의1 이상을 차지하는 빈곤층의 압도적인 지지가 있다. 그가 14년 집권 기간 동안 빈곤층을 위한 복지재원에 투입한 금액은 1조 달러에 이른다. 민영기업 국영화와 고유가 등 덕에 재원 마련이 가능했다. 부패한 체제와 견제받지 않는 권력으로 큰 비난을 받는 동시에 ‘차비스타스’라 불리는 열혈 지지층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유다.



차베스는 ‘반미의 선봉장’으로도 유명하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이라크전 때 강도 높게 이를 비난했고, 2006년 유엔 총회에서는 조지 부시 당시 미 대통령을 악마라고 불러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2011년에는 중남미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항하기 위해 라틴아메리카-카리브 국가공동체(CELAC) 창설을 주도하기도 했다. 역시 반미라인으로 꼽히는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과 절친한 사이이기도 하다.



하지만 넘치는 카리스마로 20년 집권 가도를 연 차베스도 병마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차베스는 2011년 암 진단 이후 골반 부위에서 종양을 제거하는 등 여러 차례의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았다. 한때 암 정복을 선언하기도 했지만, 지난해 12월 악성 종양이 발견돼 쿠바에서 러시아 의료진으로부터 소장과 골반뼈에 퍼진 암세포를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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