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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키즈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중앙일보 2013.03.06 04:10 강남통신 2면 지면보기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대치동 모녀와 마주앉았다. 이들 모녀는 신상이 드러나는걸 원치 않아 실루엣 처리를 했다.



“외고에 서울대 나와 전문직까지…스스로 이룬 게 아니니 성공했다는 생각 안 들어”

엄마가 짜 주는 스케줄에 따라 유년기와 사춘기를 온통 명문대 입시라는 목표에 쏟아부은 대치동 키즈들. 이제 30~40대가 된 그들은 좋은 학벌을 발판 삼아 전문직에 많이 진출했다. 이른바 성공 모델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만큼 그들은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돌이켜 보니 부모가 고맙다”는 대치 동 키즈도 있었다. 하지만 일부는 “그때 기억이 아직도 상처로 남아 있다”고 털어놓았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때 학원·과외 ‘뺑뺑이’를 돌며 끝없이 경쟁하는 게 고통스러웠다는 두 아이 엄마 정은주(가명)씨도 후자 중 하나다. 30대 중반의 정씨는 명문 외고와 서울대를 나왔다. 다른 사람 보기엔 대표적인 성공 케이스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그 시절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고 말한다. 정씨와 대치동 원조 돼지엄마인 60대의 정씨 어머니가 江南通新에 처음으로 속내를 털어놨다. 20년 세월을 거슬러 올라 그때를 얘기하는 것은 지금도 쉽지 않았다. 이들 모녀를 돕기 위해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자리를 같이했다.



대치동 학원이 밀집한 은마사거리. [박종근 기자]
정씨 어머니는 1984년 아파트 분양을 받아 대치동에 입성한 뒤 아직 대치동에 산다. 스스로를 “오리지널 돼지엄마”라고 부른다. 어머니는 “그때부터 아파트단지 안에 초·중학교가 있고 학원도 즐비했다”며 “유흥가가 들어설 수 없는 독특한 환경의 동네였다”고 회상했다. “좋은 환경에서 공부시키고 싶었는데 대치동이 딱 그런 곳이었다”며 “다행히 애들도 잘 따라 줬다”고 덧붙였다. ‘잘 따라 줬다’는 말은 아이들 모두 서울대를 보냈다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정씨는 어머니 생각과 달랐다.



정="남들은 성공했다는데 전 그런 생각이 안 들어요. 아마 스스로 이룬 성취가 아니라는 기분 때문일 거예요. 학창 시절 학력과 경쟁에 대한 압박감이 심했어요. 언니가 공부를 아주 잘해 늘 비교되는 게 싫었어요. 언니가 서울대에 합격했던 순간이 잊혀지지 않아요. 온 가족이 ‘네가 다음 차례’라는 듯 일제히 절 바라봤으니까요…(※특히 언니는 학창 시절 공부를 유달리 잘했다. 수상 경력도 화려했다. 정씨는 늘 “네가 아무개 동생이구나”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언젠가 엄마가 ‘아무개 엄마가 아니라 은주 엄마로도 불리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오히려 마음에 상처가 됐어요.”



 하지만 돼지엄마 역할에 충실했던 어머니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어머니="당시만 해도 남아선호 사상이 강했어요. 딸만 낳아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고 딸도 아들 못지않게 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대치동은 서울대 간 딸 하나로 아들 가진 부모 콧대를 누를 수 있는 곳이다. 정씨 어머니의 교육열 한 귀퉁이엔 이런 심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목표가 뚜렷하니 다른 것은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지 모른다. 정씨는 교교 시절 친구와의 갈등으로 아침에 눈뜨는 것도 고통스럽던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정="학교에서 매일 한 시간씩 친구와 말싸움을 했어요. 왕따 당해 밥을 혼자 먹던 때도 있었죠. 사춘기 소녀에게 친구와의 마찰은 무엇보다 괴로운 일이에요. 집에서 위로받고 싶었지만 엄마는 계속 완고하게 학업에 열중할 것을 강요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머니="저는 얼마든지 전문직을 가질 수 있었는데 부모님이 보수적이셔서 전업주부가 됐어요. 딸들은 그렇게 살지 않길 바랐어요. 아이들이 자아실현을 통해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남편과 대등하게 살기 바라는 마음뿐이었어요. 지금 모두 직장을 갖고 있습니다.”



정="고3 때 엄마가 이번에 서울대 합격을 하지 못하면 ‘재수(再修)는 없다’고 하시더군요. ‘고졸로 네 인생이 끝날 수 있다’는 협박 아닌 협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효도하려면 등록금 싼 서울대에 가라’는 말도 부담스러웠습니다. 하루는 강남 8학군 학교 전교 1등 남학생들로 구성된 과외방에 저를 넣으셨어요. 매일 오전 2시 자율학습 끝내고 과외방에 갔습니다. 여기선 문제를 틀리면 엉덩이를 때렸는데 사춘기 여학생으로서 너무 창피했습니다. 난이도 높은 영어를 저 혼자 못 읽고 진땀을 흘리니까 과외선생님도 못마땅해하는 눈치였어요. 하루는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빠지려 했는데 엄마가 ‘죽어도 가서 죽으라’고 하셨어요. 아직도 충격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머니="그때는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아 몰랐습니다.”



 ※딸의 심리적 고통을 알아채고 다독이진 못했지만 어머니가 무작정 사교육에만 의존한 건 아니었다.



어머니="대치동에 살아서 애들이 공부를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녀 교육을 하면서 기준을 세운 게 있어요. 글씨체는 바르고 예쁘게 쓸 것, 교사와의 유대관계를 통해 아이를 제대로 이해할 것, 용모를 깔끔하게 할 것, 임원을 하며 리더십을 키우게 할 것 등입니다. 임원을 하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게 돼 스스로 열심히 하기 때문입니다. 애들 모두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임원을 시켰죠. 초등학교 4학년부터 수학이 어려워지니까 학원을 찾아 보낸 거고요. 좋은 것을 해 주고 싶은 것은 엄마들의 다 같은 마음 아닌가요.”



 ※어머니는 결과에 만족스러워했다. 같은 방식으로 키워도 잘 안 되는 경우도 많은데 좋은 결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모녀의 대화를 듣던 윤 교수가 부모의 코치 역할은 순기능 못지않게 아이를 지치게 하는 역기능도 있다고 설명했다.



윤=“대치동 키즈는 객관적으로 성공했지만 자신이 별게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삶의 목표가 가치가 아니라 높이에 맞춰져 있어 늘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이죠. 삶에는 브레이크도 있는데 밟는 기술을 잊어버린 겁니다. 브레이크를 밟으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니, 밟아도 됩니다. 세상이 멈추는 게 아니라 또 다른 보완적인 세상이 열리기 때문이죠.”



 ※부모의 과도한 압박은 아이들과 심리적으로 멀어지게 만든다. 강남구청 자료에 따르면 대치동 아이들이 문제가 생겼을 때 부모와 상의하는 비율은 압구정동 등 강남구 내 다른 지역에 비해 낮았다. 대치동 엄마 중엔 아이 등수가 떨어지면 위로 대신 더 강한 드라이브를 거는 이가 많다. 윤 교수는 이를 “태릉선수촌 같다”고 표현했다.



정="당시 불만이 많았는데 신기하게 다들 부모 말을 잘 따르는 편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엄마는 오전 4시에 일어나 3단 도시락을 싸 주시고 잠옷까지 다려 입힐 정도로 정성을 쏟으셨어요. 본인을 위해서는 거의 한 푼도 안 쓰셨죠. 비뚤어질 수 없었던 건 그런 희생을 봤기 때문 아닐까요. 지금도 대치동 친구들끼리 만나면 ‘우리는 절대 아이들에게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고들 합니다.”



윤="경쟁이 심한 대치동에서 희생하는 엄마를 보며 애들은 애정과 증오, 경멸과 존경의 감정을 동시에 갖게 됩니다. 하지만 성인이 된 뒤 문제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중·고교 시절 부모가 강하게 압박할수록 아이들의 사춘기가 미뤄지기 때문이죠.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는데 입학 후 슬럼프에 빠지는 아이들이 대표적입니다. 중·고교 때 부모에게 반항하는 게 정상적인데 대치 키즈들은 엄마 힘에 밀려 독립 발달 자체가 뒤로 밀려난 경우가 많습니다.”



 ※대치동에는 원주민 2세로 다시 대치동에 터를 닦은 ‘연어족’이 많다. 대치동에서 맛본 성공의 가치를 자식에게 물려주려는 것이다. 그러나 정씨는 대치동에서 애들을 키울 생각이 없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 균열이 가고 있다고 인정했다.



정="대치동 사교육 르네상스 시절을 겪어서인지 대치동 교육에 반대합니다. 하지만 주변 엄마들 말을 들으면 점점 불안해지는 것도 사실이에요. 정말 이렇게 사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애들을 제대로 키울 수 없는 걸까요.”



어머니="사실 은주가 ‘대치동 정신’으로 자기 애를 키우지 않는 것 같아 고민입니다. 스스로의 선택이니 존중하지만 이렇게 방치하듯 키우면 결과가 좋지 않을 것 같아서죠. 딸의 교육방침이 기대도 되고 불안하기도 합니다.”



윤="대치동 키즈들은 과거 그들의 엄마가 자신에게 한 것처럼 ‘빡세게’ 공부시킬 자신이 없어 대치동이 아닌 인근 다른 지역에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여차하면 돌아갈 의지가 있는 거죠.”



어머니=“애들에게 어떤 직업을 가지라고 압박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사회에 나가 남과 경쟁할 때 뒤처지지 않도록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서포트를 했습니다.”



정=“제 아이들이 나중에 자라 ‘엄마는 할머니한테 완벽하게 지원받았는데 왜 우리는 내버려뒀느냐’고 원망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매 순간 아이를 위해 더 나은 결정을 해야 한다는 점은 동의해요. 원조 돼지엄마와 대치동 키즈가 느끼는 장점만 모아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글=김성탁·김소엽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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