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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대치동 DNA

중앙일보 2013.03.06 04:10 강남통신 2면 지면보기



[스페셜 리포트] 대치동 그 오해와 편견, 그리고 진실 ③ 마지막편
“학창시절 혹독한 학원 순례 … 못할 게 없다”

대치동 안팎에 대치동 키즈의 성공 사례가 넘쳐난다. 엄마의 정성과 노력으로 외국어고·과학고를 거쳐 명문대에 입성한 이른바 ‘엄친아’ 얘기 말이다. 그 어린 나이부터 혹독한 학원 순례를 마다하지 않고 엄마를 잘 따라준 대치동 키즈들은 겉으로만 보면 모두 대치동 사교육의 대표적인 수혜자다. 그런데 과연 본인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엄마의 엄격한 사교육 스케줄에 맞춰 19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대치동 키즈를 만나 속얘기를 들어봤다. 일부는 “사교육을 강요받던 시절의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다”고 털어놓았다. 물론 “나를 이끌어준 부모가 고맙다”며 자기 자녀를 본인과 똑같은 대치동 키즈로 키우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다.



글=김소엽 기자 , 사진=김경록 기자



“학원 다니는 거 돈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려서부터 여러 가지를 해보면 잘하는 걸 찾을 수 있거든요. 대치동 엄마들 특징은 자녀 적성을 찾아 전폭 지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대 스포츠경영학 박사과정인 권기성(32·일원동)씨는 학창 시절 대치동 학원가를 누볐다. 성인이 된 지금 학교 동창보다 학원 친구를 더 자주 만난다. 집안 형편이나 분위기가 다들 비슷해 형제처럼 편하단다. 결혼은 했지만 아직 자녀는 없다. 권씨는 “아이를 낳으면 꼭 대치동에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대치동 키즈 중에는 과도한 경쟁에 내몰려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권씨처럼 대치동의 장점을 높이 사는 이도 많다.



 대치초를 나와 대청중·단대부고를 나온 주헤어(Joo Hair)34 대표 이구연(38·분당)씨도 마찬가지다. 이씨는 어릴 때 교과 공부는 기본이고 첼로·피아노·속셈·유도·검도·합기도 등 안 다녀본 학원이 없다. 엄마가 공부를 열심히 시키긴 했지만 정작 수능 성적은 좋지 않아 지방대에 진학했다. 이씨는 “대치동 출신치고는 특이한 케이스”라고 자신을 표현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실패자’라고 표현하지는 않았다. “어릴 때부터 워낙 잡다하게 해봐서 사업에서도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며 “어머니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미혼이다.



 서울메디컬 대표이자 기러기 아빠인 주세흥(38·청담동)씨는 “대치동에서 부모의 학업에 대한 압박은 별로 특이한 게 아니어서 학창 시절 반항할 일도 힘들어할 일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대치동 사람은 도전에 두려움이 없다”며 “강남 8학군 가운데 대치동만 사교육 1번지로 살아남은 것도 이런 이유”라고 말했다.



대치동 키즈인 주세흥·이구연·권기성씨(왼쪽부터).




학교 선후배 사이인 이들에게 대치동 키즈의 삶은 어떠했는지를 물었다.



권기성(이하 권)=“학창 시절 성적을 받쳐준 게 학원이었다. 초등학교 때 국·영·수 학원을 두루 다녔다. 영어회화 학원에다 서예·웅변·피아노·새벽축구도 했다(※축구도 팀을 짜 돈 내고 한다). 영재학원과 큰 학원 유명 강사의 강의를 빼놓지 않고 수강했다. 과외도 엄청나게 받았다. 그때 나를 가르친 과학 과목 과외 선생님이 지금 큰 학원을 운영한다. 신기한 것은 어머니에게 끌려가 앉아 있건, 내 의지건 하루 종일 학원을 돌다 보면 어느 순간 공부를 한다는 거다. 학원이 기본을 만들어 준다. 이렇게 성적이 나오니까 애들도 학원을 안 다닐 수 없다는 걸 다 안다. 학습 관련 학원은 내신에 도움이 됐다. 축구나 클라리넷 같은 예체능은 지금까지 남더라.”



주세흥(이하 주)="어린 시절 어른들 인사가 ‘공부 잘하느냐’나 ‘몇 등이냐’가 아니었다. 대치동은 질문 자체가 달랐다. ‘너 서울대 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서울대 못 갈 것 같다고 답하면 ‘유학 가서 좋은 대학 가야겠구나’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서울대 못 가면 유학이라도 가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 중학교 때부터 이런 질문을 계속 받았다. 대치동에선 목표 자체가 서울대다. 서울대를 못 가면 연세·고려대, 아니면 못 가도 한양대 공대 정도지 그 외에는 없다. 내신이 낮아도 전국 등수는 높은 곳이 대치동 아닌가.”



이구연(이하 이)=“초등학교 5학년 때 중학교 2학년 과정을 배웠다. 원래 우등생이었다. 집에서 관리를 열심히 해줬다. 어머니는 늘 ‘해 볼 거 다 해 봐라, 그중에서 고르라’고 하셨다. 여러 종류의 학원을 정말 많이 다녔다. 그런데 공부에 소질 있는 친구는 따로 있더라. 8학군은 부모의 기대심리로 만들어진 것인데, 내 경우는 공부 잘하는 친구들 들러리였던 셈이다. 소질이 없는 것은 빨리 포기해야 한다.”



권=“아이가 생기면 대치동에서 살고 싶다. 다른 동네는 너무 낯설기도 하지만 그보다 대치동 교육환경이 월등히 좋지 않나. 내가 많이 해 봤으니 감도 잡을 수 있겠고…. 대치동 엄마들은 교육에 대한 철학이 확실하다. 그래서 외부 사람이 무조건 따라하면 위험하다. 학원도 다 특성이 달라 숙제 많은 곳, 내버려 두는 곳, 흥미 위주로 이끌어 내는 곳 등 다양하다. 나에겐 이끌어 주는 곳이 맞더라. 아이에게 적합한 곳을 찾아 보내야 한다. 하루 시간 관리법과 공부하는 법을 배우는 과외도 받았는데 엄청나게 도움이 됐다. 학교가 할 수 없는 역할을 학원은 해 줄 수 있다. 아이가 뭘 잘하는지 찾아내는 게 바로 그것이다. 그런 용도로 활용하면 된다. 공부만 시키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관리해 주고 흥미를 유발하는 게 중요하다.”



주=“아이가 지금 미국에 있는데 국내로 데려오려 외국인학교를 알아봤다. 학비가 1년에 3000만원이고 무엇보다 재학생 집안이 다들 대단한 것 같더라. 그런 곳에 진학시키고 싶진 않다. 대치동은 다양한 애들이 섞여 있다. 이곳에서 아이가 친구를 고루 사귈 수 있길 바란다. 전체적으로 공부하는 분위기여서 면학 분위기가 좋다. 모임에 가면 유학파는 강남에서 고등학교 졸업한 애들 앞에서 큰소리 못 친다. 소위 어렵고 치열한 강남에서 뚫고 승리했다는 자부심이 강한 친구들이 많다.”



권=“대치동 아이들은 보고 듣는 게 많다. 나도 방학이면 해외 어학캠프에 다녔다. 돌이켜 보면 공부에 소질 있는 애들은 외국어고에 다녔고, 그렇지 않은 애들은 일반고에 가서 다른 소질을 찾았다고 본다. 공부에 대한 부모 압박이 있지만 주변이 다 그러니 학생들도 대부분 그러려니 하고 넘기지 않았나 싶다. 대치동은 뭐든지 남과 비교하는 경향이 강하다. 잘된 사람이 많으니까 비교도 하는 것 아니겠나. 내 친구들은 대체로 강남 출신끼리 결혼한 편이다. 대부분 동네 친구, 학원 친구니까 생활 수준이나 생각이 비슷해 편하게 느끼는 면이 있다.”



주=“대치동은 누구한테나 떳떳하게 여기 나왔다고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동네인 것 같다. 강남 산다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들도 대치동 공립학교 출신에게는 크게 반발심이 없더라.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대치동 인맥도 장점이다.”



이=“어딜 가도 대치동 출신은 다르다. 군대에서도 대치동 살았다고 하면 잘해 준다. 배운 사람들의 동네라고 보는지 대부분 호의적이다. 유행도 먼저 돈다.”



권=“군대에 있을 때 양재천이 TV에 나왔는데, 우리 집 뒤에 있다고 하니까 동료들이 안 믿더라. 거기 사는 사람들은 딴 나라 사람처럼 생각한다. 난 어디 사는지 잘 얘기 안 한다.”



주=“대치동에 본격적으로 학원이 등장한 세대는 1975년생인 우리 시절이다. 결혼하고 아이가 없을 때는 대치동이 싫었다. 학벌만 강조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에서 경영학 석사(MBA) 따고 아이도 키워 보니 과외도 좀 시켜 뭔가 잘하게 만들고 싶고, 또 그렇게 해서 잘하면 은근히 자랑도 하고 싶어지더라. 아이에게 투자하는 돈이 많이 나갈 때는 우리 아버지 생각이 난다. 나 고3 때 편히 다니라고 기사 딸린 차를 내주셨다. 한 번은 출제위원 수준의 대학교수가 과외를 해줬다.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치맘에 대해 안 좋게 보는 시각이 있는데, 극소수 비뚤어진 방법으로 성적에만 목매는 엄마들 이야기다. 대부분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더 나은 방법을 강구한다. 1등만을 위한 대치동이었다면 모두 의사·변호사만 됐을 것이다. 부모님의 믿음과 투자가 자식들에게 방황을 멈추게 하는 브레이크였던 것 같다.”



권=“학교 다닐 때 보면 부모의 압박이 심해 힘들어했던 친구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압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다들 그냥 그렇게 넘어가는 게 아닌가 싶다. 대치동 엄마의 장점은 무조건 교육하는 게 아니라 아이가 흥미를 갖고 찾아서 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다녔던 학원 중 오전 6시에 일어나 하는 축구가 가장 즐거웠다. 어머니가 ‘축구 좋아한다고 선수만 돼야 하는 건 아니다’며 다른 진로도 알려주셨다. 그래서 서울대 체육교육학과에 진학했고 스포츠경영을 전공한다. 그게 대치맘의 다른 점이다.”



주=“요즘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부모님과 상의한다. 대치동에서 적응하지 못한 친구가 있었지만 소수다. 90%는 흔들리지 않고 계속 공부했다. 성공에 대한 생각이 다른 지역 애들보다 확고한 편이었던 것 같다. 부모세대의 노력을 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이가 노력할 때 우리 부모들은 어떻게 도와줄지 고민했지 그냥 뭐든지 떠먹인 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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