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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16) 청와대의 폭탄 선언

중앙일보 2013.03.06 00:54 종합 10면 지면보기
2003년 10월 10일 오전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을 시민들이 TV로 지켜보고 있다. 노 대통령은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다. [중앙포토]


2003년 10월 10일 오전. TV를 보고 있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11시에 긴급 기자회견을 한다는 속보가 떴다. ‘나에게 별말 없었는데 설마….’ 오전 10시50분. 그때까지도 청와대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5분 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집무실에 앉아 TV를 지켜봤다. 단상에 선 노 대통령의 모습이 화면에 비춰졌다. 그는 입을 열었다.

盧 긴급 회견 ‘나에게 별말 없었는데 설마….’



 “…그동안 축적된 국민들의 불신에 대해 재신임을 묻겠습니다.”



 “….”



 잠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뭐로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속으로 되뇌기만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한 거지.’



 단 한마디도, 귀띔도 없었다. 생각을 더듬어 봤다. 그래…. 불안함을 느끼긴 했다. 지난 5월부터 노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는 말을 종종 꺼냈다.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노 대통령 측근의 비리 의혹도 연일 터져 나오고 있었다.



 4당(한나라당·민주당·통합신당·자민련) 체제가 시작되고 노 대통령은 정치적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통합신당(열린우리당의 전신)의 출범에 노 대통령은 힘을 실어줬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9월 26일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일이 결정적이었다.



 결국 노 대통령의 승부사적인 기질이 나타났다. 내가 먼저 살고 나서 적을 칠 궁리를 한다는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바둑 용어)’. 그에게 통하지 않은 논리였다.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비서진이 나에게 보고했다.



 “청와대 오찬이 열리는데 참석하시라고 합니다.”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비서진에 말했다.



 “국무위원 전원과 통화해야겠습니다. 시간이 없으니 서둘러 차례로 연결해 주세요.”



 국무위원 거의 전부와 통화를 했다. 말한 내용은 같았다.



 “기자회견 보셨죠. 내각이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습니다. 국무위원 전원이 사표를 내도록 합시다. 오찬 때 대통령을 뵙기로 했습니다. 사표를 직접 거둘 시간은 없으니 일단 사의 표명에 동의해 주시죠. 그럼 제가 대표로 국무위원 전원의 사의를 대통령께 직접 전달하겠습니다.”



 다들 반응은 비슷했다.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참담한 목소리로 “그렇게 하시라”는 답을 했다.



 이날 낮 12시 청와대 오찬장. 노 대통령이 먼저 말을 꺼냈다.



 “총리의 부담을 커지게 했습니다. 힘드시게 했네요. 사전에 상의를 못해서 미안합니다.”



 준비했던 대답을 했다.



 “저희 내각이 잘 못 모셔서 이런 재신임 상황까지 말씀하시게 됐습니다. 국무위원 전원이 일괄 사표를 내기로 했습니다. 일단 제가 국무위원 전원 사의의 뜻을 모아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뜻을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노 대통령은 내 말에 놀라는 듯했지만 바로 표정을 추스르고 답했다.



 “미리 상의를 못해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내각의 문제는 아닙니다. 사의는 반려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뜻을 다른 국무위원에게도 전달해 주세요. 사표는 받지 않겠습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노 대통령이 말했다.



 “이런 때일수록 내각이 중심을 잡고 국정의 공백이나 차질이 없도록 해주세요.”



 무슨 별다른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총리로서 무거운 부담을 느끼지만 국정 운영에 추호도 차질이 없도록 내각을 이끌어 나가겠습니다.”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했다. ‘왜 대통령이 재신임 발언을 했는가. 정말 그 방법밖에 없었나. 이미 대선 전부터 여소야대 상황이 아니었나.’ 아무리 고민해 봐도 명확하게 상황 인식이 안 됐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의 재신임을 물어 책임질 일이 있으면 물러나는 것도 민주정치사의 발전이며, 만일 그렇지 않다면 대통령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었다. 그가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며 진검 승부를 택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난 문제가 생기면 각계 원로를 불러 만찬 회의를 하곤 했다. 그날 강원용 목사, 김수환 추기경, 박영숙 한국여성기금 이사장, 남덕우 전 총리, 송월주 스님, 이세중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등을 만났다.



“너무 놀랐다” “안타깝고 당혹스럽다”는 얘기가 오갔다. 결론은 “국정에 공백이 없어야 한다. 내각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들의 말을 난 주로 듣기만 했다. 저녁 자리에서 돌아온 뒤 비서진에 얘기했다. “내일 아침 일찍 국무위원 간담회를 소집하겠어요. 각 부처에 연락하세요.”



 다음 날인 10월 11일 오전 7시30분 국무위원들이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 모였다. 모두 말없이 굳은 얼굴로 회의장에 들어선 뒤 자리에 가 앉았다. 내가 먼저 말을 했다.



 “대통령께서 고뇌에 찬 결단을 내리게 된 데 대해 총리를 비롯한 전 국무위원들은 국민과 대통령 앞에 책임을 통감합니다. 대통령께 그 책임을 지고 전원 사퇴의 뜻을 모아 전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내각은 더욱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당면한 경제와 민생 안정을 포함한 국정 운영에 추호의 차질이 없도록 빈틈없이 소관 업무를 챙겨 나가야 합니다. 국민 여러분께도 한 치의 동요 없이 정부의 모든 정책을 믿고 따라줄 것을 간곡히 당부 드립니다.”



 그렇게 재신임 정국을 맞았다. 탄핵소추 사태의 전조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정리=조현숙 기자



◆ 이야기 속 사건



재신임 정국



2003년 10월 10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의 불신에 대해 재신임을 묻겠다”고 기자회견을 하며 시작된 정치적 국면. 측근인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SK로부터 비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 발단이 됐다. 다음날 노 대통령은 대통령직 사임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쳐 결정하는 방법을 제안했고 “결과에 따라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물러날 수도 있다”고 했다.



정치적 공방이 계속되다가 11월 27일 헌법재판소는 재신임 국민투표에 대해 “헌법소원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각하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관 9명 중 5명이 각하 의견을 냈는데, 이들 5명 가운데 4명이 “대통령의 신임 여부는 국민투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재신임 국민투표는 실시되지 않았지만 2004년 3월 12일 국회가 노 대통령 탄핵소추를 의결하는 실마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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