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재일기] ‘조특법’은 나눔 바이러스 죽이는 독약

중앙일보 2013.03.06 00:35 종합 33면 지면보기
이정봉
사회부문 기자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국내 3만 명, 해외 2만2000명의 아동을 지원한다. 복지 사각지대에 처한 국내 저소득층 아이 한 명당 월평균 10만원가량을 지원한다. 이 돈은 전액 후원금으로 충당하는데 개인 후원자는 18만541명에 달한다. 경기도 일산신도시 해오름안과 서원선(57) 원장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지난해 국내 40명, 해외 50명의 불우아동을 지원했다. 6000만원(교회 헌금 2000만원 별도)을 기부했다.



 하지만 서 원장은 올해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의 덫에 갇혔다. 조특법이 지정기부금을 2500만원까지만 소득공제하도록 바뀌면서 지난해처럼 기부하면 2299만원의 세금이 늘어난다. 서 원장은 “개인사업자는 현금 조달이 원활하지 않은데, 세금이 늘면 기부액을 줄이는 게 맞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아이들이 눈에 밟혀 어찌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짓는다. 만약 서 원장이 기부를 줄이거나 포기하게 되면 90명의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조특법이 소득공제를 제한함으로써 늘어나는 세금은 연간 900억원(추정치)이다. 2011년 기부금(개인)은 7조원, 이 중 지정기부금은 4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특법 때문에 10%만 기부를 줄인다 하더라도 4000억원이다. 조특법 시행 후 세금 더 내고 기부는 종전대로 할 사람도 분명히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사람도 많을 것이다.



 기부는 선한 의지에서 출발한다. 조특법의 문제점은 나누는 사람들의 선한 의지를 제한하고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기부금은 정부 복지 제도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 저소득층에게 흘러간다. 기부가 줄면 이들에게도 가슴에 상처를 남길 게 분명하다. 전문가들은 ‘기부는 예술’이라고 한다. 인간이 본래 선한데, 그들의 선한 의지를 끌어내는 게 중요하다. 그러려면 다양한 창의적인 발상이 중요하다. 미국에는 ‘빌 게이츠 공학관’ 등 기부자의 이름을 딴 건물·도로 등이 수두룩하다. 미국이 고액의 개인기부자 천국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금 위주의 나눔 방식이 기부연금·기부자조언기금 등으로 진화하는 데도 조특법이 걸림돌이 될 공산이 크다. 걸음마 단계인 한국의 고액 개인기부 확산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다.



  나눔은 전염병이다. 분위기를 타면 ‘행복 바이러스’가 바로 바로 전염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기분 좋게 바이러스가 번져 왔다. 경기가 좋지 않았던 지난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모금액이 사상 최고(4159억원)였다는 사실도 이를 방증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공약을 이행할 재원 135조원이 필요한 건 알겠지만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조특법을 내버려두면 나눔 바이러스를 죽이는 독약이 될 것이다.



이 정 봉 사회부문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