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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칩거와 네 탓으론 정국경색 못 푼다

중앙일보 2013.03.06 00:30 종합 34면 지면보기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국무회의를 또 취소했다. 취임 후 두 번째다. 공식 일정도 잡지 않았다. 취임한 지 9일 동안 벌써 네 번째다. 민생현안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칩거 모드에 들어간 대통령의 모습에 국민은 당혹스러워한다. 박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 주요 고비에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칩거 카드를 가끔 사용한 적이 있다. 결연한 의지를 시위함으로써 국면돌파에 에너지를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돼서까지 그럴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강경한 공세에 이은 싸늘한 칩거를 국정 파트너인 야당은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대통령의 임전무퇴(臨戰無退) 의지만 부각돼 대화의 여지를 더 좁히는 역효과가 우려된다.



 대통령은 언제나 당당히 할 일을 해야 한다. 국민은 일하는 대통령을 원한다. 어제 국무회의에서 다룰 안건이 없었다는 건 이유가 될 수 없다. 일은 찾아서 해야 한다. 대통령은 이미 국회 인사청문회를 마친 장관 후보자들에게 임명장을 주고 즉시 일을 시켜야 하는데도 미루고 있다. 행정수반으로서 업무 방기(放棄) 아닌가. 그러다 보니 모든 정부부처가 일손을 놓고 있다. 오죽하면 정부청사가 거대한 PC방 같다는 비아냥이 나오지 않나. 앞으로 5년 동안 더 큰 고비가 들이닥칠 수도 있는데 그때마다 대통령이 칩거하면 정부 의사결정 회로의 공동화(空洞化)가 나타날 위험이 크다.



 야당도 출구전략을 영 찾지 못하고 있다. 대화 분위기가 실종되면서 민주당은 대책 없는 교착 국면을 이어갈 듯하다. 하지만 민주당이 박근혜 정부를 상대로 장기 농성전을 벌일수록 국민의 지지와 힘을 얻는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민주당의 이율배반적인 행태는 국민이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 그동안 새누리당과 협상 과정에서 상당한 조정과 절충을 했으면서도 계속 국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버티는 게 과연 설득력이 있나. 국회는 국민의 대의기구다. 수권정당으로서 책임 있게 협상하고, 그 결과로 국민에게 심판받으면 된다.



 뒤늦게나마 여야에서 모두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건 다행이다. 어제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은 “너무나 급박하게 야당을 밀어붙이는 모습이 적절했느냐”며 박 대통령의 강경자세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또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정부를 운영하는 국정책임자의 뜻을 존중해 주는 것이 맞다”고 했다. 일단 박근혜 정부의 뜻대로 정부 출범에 협조하되 그 결과에 대해선 사후에 준엄하게 책임을 묻자는 얘기다. 지금의 숨 막히는 여야 대치국면을 감안하면 둘 다 용감한 발언을 한 셈이다.



 어제 2월 임시국회 회기가 성과 없이 만료됐다. 새 정부 조직개편안을 확정 지으려면 3월 임시국회를 기다려야 한다. 더 이상 여야와 청와대는 네 탓만 하며 국정을 방치해선 안 된다. 국민을 불안하고 허탈하게 만든 데 대한 책임을 3자 모두 통감하고 맹성(猛省)해야 한다. 국민은 어느 쪽이든 먼저 얼어붙은 정국에 대화의 숨구멍을 뚫어주길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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