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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론즈 컬러와 떡갈나무 매치 클래식한 멋이 절로 우러나죠”

중앙선데이 2013.03.01 22:49 312호 9면 지면보기
1 다이아몬드 모티브로 외관을 꾸민 도쿄 까르띠에 매장 2 스케치로 그린 파리 샹젤리제의 까르띠에 매장
백화점, 호텔, 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살짝 흥분이 되면서도 아늑하고, 어떨 땐 편안하다 못해 나른해지기까지 하는 기분. 좋은 물건을 사고, 맛난 것을 먹으러 왔지만 이미 오감으로 호사를 누린다.
그런데 궁금하다. 대체 공간의 어떤 요소 때문일까. 여기에 답해 줄 적절한 인물을 만났다.

전 세계 까르띠에 매장 디자인 도맡은 브루노 무와나르

바로 프랑스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브루노 무와나르(57)다.
그는 전 세계 까르띠에 매장의 디자인을 총괄하는 것 외에도, 지금껏 파리 라파예트 백화점, 에르메스 본사, 샤넬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부티크 등도 맡아 작업했다. 럭셔리 브랜드 매장뿐 아니라 파리 로댕 갤러리나 콩코드 비행기, 뉴욕 모르간 호텔 등도 그의 손을 거쳤다. 어찌 됐든 모두 ‘고급스럽고 편안해야’ 하는 장소들이다.
최근 한국에 들른 그를 중앙SUNDAY가 단독으로 만났을 때, 그래서 대화는 자연스레 한 방향으로 모아졌다. 한마디로 ‘럭셔리 공간의 미학’에 대한 탐구였다.

브루노 무와나르 1956년 프랑스 노르망디 출생. 프랑스 국립 고등 응용미술 및 예술직업학교를 졸업했다. 로안에 위치한 트루아그로 레스토랑의 디자인을 맡으면서 디자이너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았다. 1979년 이후 15년간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앙드레 퓌망의 핵심 협력자로서 활동하며 콩코드 비행기, 뉴욕의 모르간 호텔, 도쿄의 르 라크 호텔, 문화부 청사, 에어 프랑스 오피스 등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1995년 4BI를 창립한 이후에는 로댕 박물관, 오페라 코미크, 프랑스 국립 도서관 및 까르띠에 전 세계 매장의 디자인을 맡았다.
전날 저녁 늦게 서울에 도착했다는 그는 약속시간보다 10분 먼저 인터뷰 장소에 나와 있었다. 말끔한 재킷 차림에 시각물 자료들을 잔뜩 들고서였다(굳이 가지고 온 이유를 나중에 알게 됐다). 깐깐한 아티스트의 면모 대신 서비스 정신이 투철한 비즈니스맨처럼 느껴졌다.
사실 그는 유럽에선 유명인이지만 국내에선 거의 소개된 적이 없다. 그나마 한국과의 연결고리는 단 하나. 그가 10년 전 서울 로댕갤러리 개관 작업에 참여했다는 것과 까르띠에 한국 매장을 관리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한국에 온 목적은.
“아시아에는 석 달에 한 번 꼴로 온다. 보통 일본을 거쳐 상하이나 중국 대도시로 다녔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에서 큰 프로젝트가 많았다. 칭다오에 호텔 2개, 상하이에선 ‘Wison’이라는 기업 사옥을 작업했다. 그런데 이번엔 서울을 꼭 거쳐갈 필요가 있었다. 1년 반 전부터 한국에서도 프라이빗 맨션을 맡아 달라는 등의 제안이 들어왔다. 아직 초기 단계라 밝힐 순 없지만 이 때문에 실제 서울 분위기를 파악하려고 왔다.”
-지금껏 작업 대상이 다양하다. 일할 때 큰 원칙이 있을 텐데.
“물론이다. 고객(브랜드)의 역사와 가치를 유지시키면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박물관처럼 옛것을 보여주는 곳에서조차 현대적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즉 무에서 유를 창출하기보다 역사를 리모델링해서 연속성을 부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프랑스에서는 ‘모던 클래식’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고전적 미를 갖추면서 현대적이어야 한다는 모순의 조합이다. 적어도 15년 이상을 내다보고 장기적인 가치를 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어려운 얘기다. 예를 든다면.
“기존 공간에 추가적인 것을 설치하는 것도 한 방식이다. (가져 온 책자를 펼쳐 보이며) 여기 샤토 라투르 와이너리를 보자. 몇 백 년 된 건물을 그대로 두고 리모델링을 했다. 건물은 그대로 뒀다. 대신 중앙 문을 설치하고 내부는 완전히 모던한 분위기를 유도했다. 가령 천장이나 바닥은 다 콘크리트로 하면서 조명을 약하게 썼다. 이를 위해 천장에 작은 전구들을 촘촘히 달았다. 사실 와이너리는 직원이 일을 하는 공간이자 고객들이 오는 특별한 곳이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 그 작은 전구들의 조명을 조절할 수 있게 했다. 양초처럼 어둡게, 아니면 형광등보다 조금 덜 환하게. 와인 브랜드의 역사와 가치를 담아내는 데 조명을 최대 활용했다.”

3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극장 부티크 4 멀티미디어 테니스 박물관인 롤랑 가로스 내부 5 여러 개의 작은 조명으로 장식한 샤토 라투르 와이너리
-고급스럽다’는 느낌도 조명에서 나오나.
“음(잠시 뜸들이다), 럭셔리 공간의 핵심은 우아함을 담아내는 것이다. 물건을 사러 온 매장이지만 고객에겐 돈이 오가는 곳이라는 느낌보다 친구의 집, 혹은 특별한 성에 왔다는 느낌을 줘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조명이 중요한 역할을 해내는 것은 분명하다. 그 외 카펫을 두껍게 깐다거나 향기를 은은하게 풍기는 방법도 있다.”
그는 돈을 많이 들여 꾸미는 것이 곧 럭셔리는 아니라고 못박았다. 사람이 말을 많이 할 때 설득력이 떨어지듯 공간도 장식을 많이 하면 호감이 줄어들기 때문. 또 사람처럼 공간도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했다. 호화롭다는 인상보다는 편안함을 줘야 하고, 그러려면 서너 가지 컬러와 재료로 통일감을 주는 정도가 충분하다는 설명을 했다.
-그런 맥락에서 기억나는 작업이 있나.
“부유층을 상대로 하는 스위스의 한 민간 은행을 꾸민 적이 있다. 부자들을 상대하지만 은행 자체는 결국 고객의 돈으로 굴러가는 곳이라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너무 사치스러운 분위기는 배제했다. 오히려 일반 은행처럼 입구에 들어섰을 때부터 은행이라는 티를 내지 않았다. 로비를 집안 거실처럼 벽난로를 놓고 도서관처럼 서가를 꾸며놨다. 정작 은행 창구는 거기를 지나 방문을 열고 들어가도록 했고, 또 개별 공간으로 분리했다. 로비에서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야외 정원, 지하로 내려가면 갤러리를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6 파리 라파예트 백화점 매장 7 스위스 취리히의 율리어스 베어 은행 스케치 8 홍콩 까르띠에 매장 9 파리 생-오노레 까르띠에 매장
원래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까르띠에 매장을 얘기할 줄 알았다. 그도 그런 것이, 까르띠에라는 세계 최고 럭셔리 브랜드의 전 세계 340개 매장을 담당하는 사람이 바로 그이니까. 내친김에 그의 이력을 대표하는 까르띠에 매장으로 화제를 옮겨 갔다.

-까르띠에와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10여 년 전 까르띠에 재단에서 페라리 브랜드 자동차 60대를 전시한 적이 있었다. 그때 디자인을 총괄했다. 이후 문화 장르별로 재단 프로젝트 7개 정도 참여하며 인연을 맺었다. 물론 매장 디자인은 경쟁 입찰을 통해서였다. 프랑스에서 그런 일이 개인 인맥으로 성사되지 않는다(웃음).”
-340개 매장에 통일성을 갖추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맞다. 도시마다 각각 다른 분위기와 조건을 가진 게 사실이다. 파리는 오스만 스타일, 런던은 클래식 스타일. 상하이나 두바이는 상업적인 냄새가 짙다. 이럴 땐 브랜드의 본질을 꿰뚫어야 한다. 즉 매장은 보석들을 돋보이도록 하는 게 목적이라는 것이다. 방법을 말하자면, 각 매장의 창문 높이를 같게 해서 상품들이 같은 높이에 진열될 수 있도록 하고, 항상 카펫 같은 소품에 브론즈 컬러를 고른다. 나무를 쓸 땐 떡갈나무를 고집해 고전적 멋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여러 도시의 예를 보여주기 위해 꺼내든 책자에는 실사보다 스케치가 비중 있게 들어갔다. 모두 그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가방 앞주머니에도 컬러 펜 수십 개가 불룩하게 들어 있었다. 어디를 가든 가방 속에는 항상 카메라와 이 펜들을 가져간다고 했다.
-3차원 작업 하면서 2차원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사실 스케치를 하는 건축가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고객과 함께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고객 중 많은 이들이 자기가 어떤 거실을 원하는지, 어떤 쇼 룸을 바라는지 잘 표현할 줄 모른다. 또 지역과 문화에 따라 표현방식이 다르기도 한다. 이럴 때 스케치가 유용하다. 가끔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의사와 비슷하다고 느낀다. 상대가 무엇이 필요한지 진단하는 게 똑같지 않나. 까르띠에 도쿄 매장도 그런 예다. 나는 제일 먼저 다이아몬드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리고 2년 뒤 실제 외관 파사드를 다이아몬드 형상으로 만들었다. 이런 것을 말로 설명하기보다 (책자를 다시 보여주며) 이렇게 스케치로 설명하면 훨씬 쉽다.”
그는 여기서 스케치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1983년 필립 스탁을 비롯한 6명의 인테리어 건축가들과 함께 미테랑 전 대통령 사저를 맡았을 때다. 중요한 프로젝트라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스케치 덕을 톡톡히 봤다. 담당자들에게 미리 컨셉트와 장식에 대해 말이 아닌 그림으로 보여주었더니 오케이 사인을 받기가 훨씬 수월했다.
-지금껏 유명한 고객들 중에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누구였나.
“칼 라거펠트(샤넬 수석디자이너)다. 나는 그의 아파트는 물론 로마 메종, 모나코 맨션 등의 인테리어를 맡은 적이 있다. 그의 일하는 스타일은 매우 즉각적이었다. 자신이 필요한 자료를 직접 찾아 나서고, 도서관에 가서 원하는 자료를 발견하면 책을 찢어 바로 보내줄 정도였다. 디자인 자체에 대한 열정, 신속한 피드백이 인상적이었다.”
-다양한 공간, 고객들과 일해 왔다. ‘무와나르 스타일’을 간단히 정의할 수 있나.
“긴 시간 동안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인테리어다.”
짧은 답에 긴 연륜이 묻어났다. 이런 그가 아직도 도전해 보고 싶은 일이 남았을까. 그는 질문에 잠시 빙그레 웃더니 입을 열었다. “지금껏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들, 가장 고급스러운 장소를 위해 일해 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자동차와 관련된 프로젝트가 없어 욕심이 난다.”
그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얼마나 큰 일이냐, 새로운 일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작은 카페라도 상관없다. 백지 같은 공간을 놓고 사무실 직원들과 함께 이해하고 상상하는 과정이 진짜 즐거움이다. 나는 이것을 ‘공간의 연금술’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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