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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만원짜리 보청기 돌풍 일으킨 27세 벤처인

중앙선데이 2013.03.02 23:30 312호 11면 지면보기
김정현 대표가 ‘한국에서 성공한 최초의 사회적 기업 딜라이트’라는 글자 앞에 서 있다. 회의실 벽에 걸린 이 목제 간판은 회사의 취지와 제품에 감명받은 한 고객이 직접 만들어 선물했다고 한다. 최정동 기자
서울 영등포구 당산역 인근의 어느 건물 3층. 330㎡(약 100평) 규모의 회사 입구에 깔끔한 로비와 함께 청력 검사실이 있어 이채로웠다. 건물 안에는 사무실과 함께 보청기 생산 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66㎡ 남짓한 공장에선 기술자들이 환자의 귓속 모양의 본을 떠 맞춤형 제품을 만들어 낸다. 창업 3년도 안 된 딜라이트주식회사의 경영 현장이다. 분주한 사무실 저편에서 한 청년이 다가오며 인사를 건넸다. 점퍼 차림, 앳된 모습의 회사 대표 김정현(27·사진)씨였다. 그는 지난 2월까지 실제로 대학생이었다. 가톨릭대 경영학과 07학번이다. “사업 때문에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가 이제야 졸업했습니다. 쑥스럽지만 홀가분하기도 하네요.”
 보청기를 만드는 딜라이트는 2010년 7월 창업한 새내기 회사지만 43명 직원이 한 해 수십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어엿한 강소(强小)기업이다. 김 대표는 대학생 신분으로 이만한 회사를 꾸려 온 셈이다.

파워 차세대 <21> 사회적 기업 만드는 김정현 ‘딜라이트’ 대표


 “비즈니스 모델은 간단합니다. 좋은 제품을 싼 가격에 공급하는 겁니다. 보청기가 꼭 필요한데 돈이 없어 못 쓰는 사람이 없게 하자는 취지입니다. 그렇다고 손해를 볼 수는 없죠. 기업이 유지돼야 하니까요. 창업 이래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습니다.”
 이 회사 제품 중 이온(耳溫·귓속형)과 딜라이트-B(귀걸이형) 최저가 모델의 소비자가격은 34만원이다. 청각장애로 장애인 등급을 받은 뒤 보청기를 사면 건강보험공단에서 보청기 가격 일부를 보조하는데 최고 한도(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34만원이다. 이 조건에 해당하는 사람은 딜라이트 보청기의 표준형 제품을 본인 부담 없이 공짜로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딜라이트는 복잡한 유통단계를 거치는 대리점 위주의 시장 관행을 깨면서 제품 가격을 낮췄다. ① 전국 직영점에서 상담과 청력검사를 하고 ② 소비자들의 귓속 모양에 맞게 가공·제작한 뒤 ③완제품을 직접 판매하는 방식이다.
고2때 인터넷 중고 매매업 뛰어들어
과거에는 시중에서 100만원 이하 제품을 찾기 어려웠다. 보청기 업체가 엄청난 폭리를 취해서가 아니다. 기존 보청기는 대부분 다국적회사의 완제품이었고 유통단계가 복잡했다. 맞춤형 고가 제품 위주여서 일부러 찾지 않으면 값싼 제품을 보기 어려웠다.
 딜라이트는 이 틈새를 파고들었다. 앰프 같은 핵심 부품의 수입과 제조·판매를 모두 직접 하기 때문에 유통단계가 필요없다. 값싼 모델을 주력 제품으로 팔면서도 이 회사가 수익을 내는 비결이다.
 이 회사 제품 중엔 250만원짜리 고가품도 있다. 그러나 ‘무료’를 내세운 마케팅의 위력은 컸다. 창업 2년째인 지난해 4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는 70억~80억원이 목표다. 보청기 시장 자체에도 영향을 줬다. 고가 제품만 팔던 회사들이 지난해에 30만~60만원대의 보급형 브랜드를 내놓은 것이다. 고령화로 난청 환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딜라이트가 중·저가 시장의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할 만한 대목이다. 김정현 대표의 몸값도 덩달아 올랐다. 2010년에는 고용노동부의 ‘소셜벤처’ 창업경연대회 대상, 2011년에는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았다.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곤 새누리당의 청년 비례대표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렸다.

 경력과 현직만 보면 누가 봐도 부러울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김 대표가 담담하게 털어놓은 과거는 평범하다. 남다른 게 있다면 난관에 부닥칠 때마다 상식보다는 혁신과 도전의 길을 택해 왔다는 점이다.
 1986년생인 김 대표는 서울 마포구에서 태어났다. 사업을 하던 부모 덕에 어린 시절에는 어려움을 모르다 97년 외환위기 여파로 가세가 기울었다. 김 대표는 “부모님이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나를 세심하게 돌보지 못했던 게 기억난다”며 “비슷한 경험을 한 또래들이 많더라”고 말했다.
 청소년기에 집안 사정이 어려우면 크고 작은 방황을 하기 마련이다. 김 대표의 방황은 특이했다. 고교 2학년 때 인터넷을 통한 중고품 매매업에 뛰어들었다. 요즘과 달리 2000년대 초반에는 중고품 매매시장에 빈틈이 많았다. 열심히 정보를 찾으면 괜찮은 물건을 싸게 사서 제값을 받고 팔 수 있었다.
 “전자제품이나 명품 가방 등 사람들이 많이 찾는 물건에 집중했어요. 괜찮은 제품을 싸게 파는 경로를 파악해 사들인 물건을 좋은 값에 팔았죠. 한 달에 수백만원을 벌기도 했어요. 학과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님은 전혀 모르셨죠.”

 이후로도 김 대표는 고비마다 ‘남다른’ 선택을 반복했다. 고교 졸업 후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하자 재수(再修) 대신 사업을 선택했다. 동업자와 함께 커피숍을 운영하기도 했고, 프랑스산 중저가 향수제품 독점 판매권을 사들여 유통업도 했다. 회사원 못지않은 돈을 벌었지만, 1년 남짓 시간이 지나자 한계를 느꼈다. “행복하지가 않았어요. 어린 나이에 사업을 하다 보니 부족한 점도 많았고, 배움에 대한 열정이 생겼죠.”
 2007년 가톨릭대 경영학과에 입학해 장학금도 받으며 1년간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대학 입학과 동시에 취업 스펙 쌓기에 치중하는 분위기에 또 한계를 느꼈다. 이때 접한 게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이었다.
 “돈을 위해 하는 사업이 아니라 남을 돕고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업이라는 설명에 눈이 번쩍 뜨였던 것 같습니다.”
 국내 사회적 기업 창업자들의 산실인 대학 연합 동아리 ‘넥스터스(Nexters: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사람들)’를 알게 됐다. 넥스터스는 길지 않은 우리의 사회적 기업 역사에서 상징적인 존재다. 소셜 멘토링 업체 ‘위스돔’의 한상엽(29) 대표가 연세대 경영학과 재학 중이던 2006년 만든 동아리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30여 명의 넥스터스 멤버는 여전히 교류가 활발하다. 출신 멤버로는 한상엽·김정현 대표 외에 시지온 김범진 대표, 터치포굿 박미현 대표 등 10여 명이 사업체를 창업했다. 은사인 가톨릭대 경영학부 라준영 교수가 사회적 기업 분야의 대표 학자인 것도 인연이 됐다.

 김 대표가 보청기라는 품목에 착안한 것도 넥스터스 활동 과정에서였다.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기업, 공익 기업의 모델로 유명한 인도의 아라빈드(Aravind) 안과병원을 연구하던 중이었다. 이 병원은 76년 안과의사 고빈다파 벤카타스와미가 세운 백내장 수술 전문 병원이다. 창립 초기부터 병상의 절반 가까이를 할애해 극빈층 환자에게 무료 수술을 해줬다. 백내장 치료의 핵심 소재인 인공수정체를 값싸게 공급하기 위해 직접 생산공장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아라빈드도 실패한 적이 있다. 안과병원의 경험을 살려 값싼 보청기 보급에 나섰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것이다.
 김 대표는 아라빈드의 실패 사례에 착안했다. 그는 “아라빈드의 보청기는 가격을 낮추느라 중요한 점을 간과했어요. 인도 등 아시아에서는 구미와 달리 보청기를 끼고 있다는 것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합니다. 안 보이게 하려면 귓속형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어려워요. 크기도 줄여야 하고, 사람마다 귓속 모양이 달라 맞춤형으로 하다 보면 값이 올라가는 겁니다.”
 아라빈드는 가격을 따지느라 소비자들의 욕구를 간과했다고 김 대표는 판단했다. “인도보다 기술 인력 등 인프라가 발전한 우리나라는 맞춤형 제품도 충분히 싸게 만들어 공급할 수 있다고 확신했죠.” 김 대표는 뜻을 같이하는 김남욱(KAIST)·원준호(연세대)씨 등 동업자들과 함께 창업 준비에 나섰다. 시제품을 들고 음향학자와 전자공학자들을 두루 만나 신제품을 준비했다. 2010년 7월 경기도 부천시에서 창업한 뒤 꾸준하게 사업을 키울 수 있었던 비결이다.
 
기존 업계 “성능 다른데 싼 것처럼 마케팅”
김 대표는 스스로 “사업을 하는 데 두려움이나 부담이 적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래들과 달리 고교 때부터 사업 현장을 경험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큰 어려움은 기존 보청기 업계와의 갈등이었다. 보청기 업계로부터 이런저런 고발을 당하고, 수사기관을 드나드는 곤욕도 치렀다. 법인에 벌금이 부과되거나 일시적인 영업정지조치도 당했다.
 김 대표는 “제품 포장이나 표기 방법의 오류 등 물건 자체와는 무관한 지적이 많았다”며 “기존 업계의 과도한 견제라고 느끼는 부분도 있었지만, 잘못한 점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에 지적받은 내용은 모두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딜라이트에 대한 보청기협회의 입장은 여전히 강경하다. 권순관 협회장은 “의료기기인 보청기는 품목마다 일일이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허가를 받는 등 엄격히 관리돼야 한다”며 “표기 오류 등이 사소하거나 실수라고 볼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권 회장은 또 “마치 기존 보청기와 똑같은 성능의 제품을 훨씬 싼 값에 파는 것처럼 마케팅을 해온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또 다른 어려움은 커가는 조직을 관리하고 미래 비전을 세우는 일이다. 자칫하면 의사소통 단계가 많아지는 대기업병에 걸릴 수 있어서다. 김 대표는 “회사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선 국내 매출을 현재의 두 배까지는 키워야 한다”며 “지금까지 직영점만 운영해 왔지만 올해는 대리점을 여는 등 사업방식을 다각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시장에서 무리하게 점유율을 높이기보다 해외 진출을 추진할 생각이다. 그는 “미국과 동남아 시장에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과 제품을 공급하면 승산이 높다”고 강조했다.
 그는 창업 때 내세운 ‘사회적 기업’의 이상적 모델을 만드는 데 관심이 많다. 올해 초 서울 삼성동에 문을 연 벤처인들의 공동 작업·사교 공간 ‘허브 서울’에 힘을 보태며 사회적 기업에 관심 있는 후배 창업자들을 돕는 이유다. 김 대표는 견실하게 성장하면서 우리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차세대 사회적 기업의 모델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가톨릭대 라준영 교수는 “김 대표가 연구개발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제조업 벤처의 모델과 사회적 기업의 이상을 합치려고 시도하는 건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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