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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D 울린 탈북女 "길에 버려진 아이 손에…"

중앙일보 2013.03.02 00:39 종합 2면 지면보기
“어렸을 적, 저는 제 조국이 세상에서 제일 살기 좋은 나라인 줄 알았습니다. 어느 날, 엄마가 길가에 버려진 여자아이를 데려왔는데, 손엔 이런 쪽지를 들고 있더군요. ‘당신이 이걸 읽을 때쯤 우리 가족은 굶어 죽었을 겁니다’라고.”


길거리에 버려진 여자아이 손에 이런 쪽지가…
“당신이 이걸 읽을 때쯤, 우린 굶어 죽었을 것”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 행위예술센터. 글로벌 오디션을 통해 TED 콘퍼런스 연사로 뽑힌 이현서(33·사진)씨가 입을 열었다. 그는 탈북자다. 1990년대 북한에 대기근이 닥쳤지만 이씨 가족은 운 좋게도 ‘먹고살 만’했다. 이씨는 압록강 근처에 살았다. 강 건너는 중국이다. ‘밤이면 이쪽은 칠흑같이 어두운데 저쪽은 왜 밝을까’ 싶었다. 가끔 국경을 넘다 죽게 된 이들의 시체가 강물에 떠내려 왔다. 7살 때는 처음으로 공개처형을 목격했다. ‘북한=지상낙원’이라는 말은 거짓이었다.



 그는 14살 때 탈북했다. 그 후 10년을 중국에서 살면서 언제나 마음을 졸였다. 탈북자란 사실이 탄로 나면 북한으로 송환된다. 북송된 이들이 고문을 받고, 감옥에 가고, 심지어 사형까지 당한다는 얘기가 들렸다. 그는 2008년 한국으로 왔다. 남은 일은 가족을 데려오는 것. 중국에서 모은 돈과 한국에 들어오며 받은 정착금을 털어 가족 탈북자금을 마련했다. 일이 꼬여 이씨가 직접 북한으로 가 가족을 데리고 나왔다. 2주간 버스를 타고 중국 대륙을 통과한 끝에 라오스에 도착했다. 중국말을 못하는 어머니와 동생은 중국 경찰의 검문에 벙어리 행세를 했다.



 라오스 한국대사관을 코앞에 두고 이씨의 가족이 경찰에 잡혔다. 벌금을 낼 돈이 없었다. 끝이구나 싶어 경찰서 구석에 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그때 누군가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사정을 듣고는 그 자리에서 돈을 줬다. 아무 대가도 없이. 이씨가 왜 이렇게 내게 친절하냐고 물었다. 그는 “너를 돕는 게 아니라 북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나에게 일어난 기적을 다른 사람에게도 일어나게 해줄 수 있도록 대학을 마치면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고 발표를 마쳤다. 관객들의 기립 박수가 한동안 이어졌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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