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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칼럼] 영화 ‘더 리더’를 보며 시마네현을 생각하다

중앙일보 2013.03.02 00:39 종합 17면 지면보기
한석구
성균관대 경제학과 2학년
최근 케이블 방송에서 영화평론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케이트 윈즐릿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스티브 달드리 감독의 ‘더 리더(The Reader)-책 읽어주는 남자’.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한 남자의 첫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독일인의 입장에서 나치와 홀로코스트에 대해 쓴 참회록이었다. 나치 독일에 대한 반성과 참회를 담은 수많은 텍스트 중에서 유독 이 영화가 눈에 띄었던 이유는 접근법이 다른 텍스트들과 조금 달랐기 때문이었다. ‘읽어준다’라는 행위가 은유적으로 드러낸 ‘무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주인공의 첫사랑이자 유대인 수용소의 교도관이었던 여주인공 ‘한나’는 글을 읽을 줄 모른다. 문맹이란 사실을 밝히기 싫어했던 그녀는 자신의 치부를 숨기기 위해 나치 수용소에서 일어난 학살에 대한 모든 책임을 홀로 져야만 했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수용소 동료들이 유대인들을 죽게 한 책임을 그녀에게 돌린 것이다. 평생을 두려움 속에서 떠돌아 다니다 최후의 순간을 차가운 감옥에서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 하지만 한나는 주인공이 카세트 테이프를 통해 읽어주는 책으로 글을 배운다. 글을 읽고 편지를 쓸 수 있게 된 그녀가 자살을 택하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것은 바로 유대인 피해자들에게 남긴 사죄였다.



 이 영화의 장면은 한나 아렌트의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묘사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전범인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과 오버랩된다.



아렌트는 이 책에서 어쩌면 전쟁이 아니었다면 지극히 평범하고 성실한 소시민적 관료였을지도 모를 사람으로 아이히만을 묘사했다. 그는 이를 ‘악의 평범성’이란 용어로 설명했다. 그의 관점대로라면 악이란 자신의 의도로 이루어지기보다 오히려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행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렌트는 아무 지각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흘러간 아이히만에 대해 유죄라고 말한다. 지각하지 않았기에, 이를 성찰하고 되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아이히만도, 그리고 영화 속 한나도 유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달 22일 일본 다케시마의 날 행사가 떠들썩하게 열렸다. 그 행사에 참여했던 사람들 가운데 정확히 자신이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지, 지각하고 행동하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됐을까. 이들은 마치 광신도처럼, 거창한 신념을 가진 듯 목청 높여 확성기로 소리질렀다. 실상은 꼭두각시에 불과한 이들이 안쓰러운 건 바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언제쯤에야 이를 인식할 수 있을까. 3·1절을 맞아 오랜만에 다시 꺼낸 책을 읽으며 생각해본다. 그들에게 정녕 필요한 것은 우리가 읽어줌으로써 글을 배울 수 있는 참회의 수용소가 아닐까.



한 석 구 성균관대 경제학과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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