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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엄마 밀어내는 대치동 키즈 출신 아빠들

중앙일보 2013.02.27 03:30 강남통신 2면 지면보기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대입 필수조건이라는 말은 다 옛날얘기예요. 대치동 유명 학원 입시설명회 한 번 가 보세요. 열에 일곱은 아빠예요.”


정보력 막강한 전문직 아버지, 자녀 입시 총지휘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 할머니의 운전 실력, 본인의 체력, 동생의 희생. 소위 ‘대치동 사교육 성공의 6조건’이 달라졌다. 이젠 아빠가 무관심하면 대학에 못 간다. 초등학교 6학년 자녀를 둔 K대학 의학과 정모(43·도곡동) 교수는 “대치동에서 엄마의 정보력에만 기댄 채 아빠가 무관심하다면 아이를 서울대에 보내기는커녕 ‘학원 바보’로 만들기 딱 쉽다”고 말했다.



 돼지엄마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바뀐 세태와 무관하지 않다. 과거 대치동 정보는 주로 돼지엄마를 중심축으로 한 ‘엄마 커뮤니티’를 통해 유통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독자적으로 정보를 입수해 자녀 교육을 주도하는 아빠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정보로 중무장한 대치동 아빠는 대개 그 스스로가 대치동에서 자라 사교육 수혜를 입고 대학에 간 ‘대치동 키즈’ 출신들이다. 사교육에 대해 긍정적이며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겠다는 욕구가 강하다.



 이미애 샤론 코칭&멘토링 대표는 “대치동 아빠는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은 부자보다는 좋은 학벌을 발판으로 의사·교수·변호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1세대 부자가 많다”며 “자녀에게도 돈보다 학벌을 물려주는 게 최고의 유산이라는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대치동 아빠는 국제중학교 등 입학설명회는 물론 학원설명회도 직접 참석한다. 정보 획득보다 학원과 강사 수준을 직접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아빠 입김이 커진 데는 대입 전형의 변화도 한몫했다. 입학사정관제 확대로 학생 개개인의 특기적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입시전략이 바뀌자 일률적인 학원 정보보다는 자녀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부모가 입시에 개입할 여지가 더 커졌기 때문이다. 김은실 세븐멘토 대표는 “과거 돼지엄마 영향력이 컸던 이유는 성적만으로 상급 학교 진학을 결정했기 때문”이라며 “성적·수능만 보는 입시 시스템에서는 좋은 학원과 최고의 강사를 움직일 수 있는 돼지엄마가 절대 권력을 쥘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대치동 아빠의 등장을 긍정적으로 봤다. 그는 “대치동에선 ‘엄마가 쓰는 사교육비는 아빠가 절대 모른다’는 말이 돌 정도로 사교육비 문제는 가정 안에서조차 쉬쉬하던 주제였다”며 “그러나 아빠의 참여로 사교육비가 투명하게 공개되면서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을 줄이는 효과까지 보고 있다”고 말했다.



 사교육비까지 아빠와 상의할 수 있게 되면서 대치동 엄마의 스트레스는 한결 줄었다. 그동안은 학원 순례에 괴로워하는 아이 등을 억지로 떠미는 것도 괴로운데 남편 몰래 월급 대부분을 학원비로 쓰면서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았다. 하지만 아빠가 직접 사교육 현장을 발로 뛰며 자녀 교육에 나서자 대치동 엄마는 떳떳해졌다. 맞벌이 엄마의 스트레스도 줄었다. 전에는 엄마 커뮤니티에서 소외되는 게 큰 스트레스였지만 이젠 별로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김지연(41·도곡동)씨는 3년 전에 외국 생활을 마치고 대치동으로 이사 왔을 때 겪은 얘기를 해 줬다. 그는 “다른 엄마들한테 밥 사줘 가며 학원 정보를 물었는데 대형 프랜차이즈학원 이름 몇 개 알려 주고 말더라”며 “순간 애 학원도 못 보내겠구나 싶어 공포가 엄습했다”고 말했다. 그때 김씨를 다독인 건 남편 오모(45)씨였다. 대기업 연구원인 오씨는 “그런 엄마 상대하느라 힘 빼지 말라”며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대치동 학원 정보를 구해 왔다. 학원설명회도 같이 다녔다. 김씨는 “남편이 든든한 후원자가 된 뒤론 자잘한 일에 스트레스 받지 않는다”고 했다.



 의사 성기익(44·대치동)씨는 “자녀 교육에서 아빠의 역할은 ‘아이의 숨통 틔워 주기’”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 엄마와 아이가 코앞의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중심을 잡아 주는 것도 아빠의 몫”이라고 말했다.



메트로G팀=안혜리·이원진·김소엽·박형수·전민희·강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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