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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일본서도 “동의보감은 천하의 보물”

중앙일보 2013.02.27 00:53 종합 24면 지면보기
『동의보감』은 간행 직후부터 한·중·일 삼국에서 인기를 끌었다. 사진은 세 나라에서 나온 다양한 『동의보감』 중의 일부. 가운데 놓인 책이 원본. 왼쪽은 일본에서 인쇄된 『동의보감』을 1890년 중국에서 번각(종이를 대고 그대로 옮김)한 책. 오른쪽은 1917년 상하이에서 출간된 중국판 『동의보감』. [사진 국립중앙도서관]


지난 달 나는 생면부지의 프랑스 학자로부터 문의 이메일을 받았다. 중국 청나라 때 윈난(雲南)성에서 이뤄진 의학 지식 유통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자신이 본 두 책에서 『동의보감』이 인용되어 있다면서, 17세기 조선 책이 중국 서남쪽 변방에까지 등장하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했다.

한의학사 최고봉, 동의보감 400년 ③ 허준과 동아시아 과학사



 『동의보감』은 1613년 간행 직후부터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주목받았다. 1724년 일본의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가 막부 차원에서 『동의보감』을 펴냈다. 의학의 표준을 얻고자 함이라 했다. 중국에서는 이보다 42년 늦은 1766년 출간됐다. 중국판본 서문에서 “천하의 보물을 마땅히 천하와 더불어 하고자 함”이라 했다. 1780년 연행사(燕行使·청나라에 파견된 사신)의 일원이던 연암(燕巖) 박지원이 베이징 서점가 류리창(琉璃廠·유리창)에서 본 『동의보감』이 바로 이 책이다. 중국에서는 이후 30여 종 이상의 다양한 판본이 나왔다.



나는 지금도 베이징 출장 때면 대형서점에 들러 현대 간체자로 인쇄된 최신 『동의보감』이 꽂혀 있는 걸 확인하곤 한다.



 『동의보감』의 명성에 비해 저자 허준에 관한 정보는 정확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허준(1539~1615)은 권세 있는 양반 가문의 서자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경전·역사·글짓기 등의 교육을 잘 받았다. 『의림촬요』 같은 기록에는 그가 총명한 자질을 타고 났다고 하며, 여러 학문 중 특히 의학에 밝았다고 씌어 있다. 허준의 벼슬길은 승승장구, 서자 출신의 의원으로는 전례가 없던 1품의 관록까지 생전에 누렸다. 임진왜란 때는 피난길의 선조 건강을 잘 돌본 공으로 공신에 들기도 했다. 그의 이름 앞에 따라다니는 양평군은 그가 받은 공신 녹호이다.



 1608년 선조가 승하하자 그 책임을 물어 벌을 받지 않았다면 그의 인생은 어떤 곡절도 없이 순조롭게 끝났을 터이나, 그의 성공을 배 아파하던 양반 관료의 미움을 받아 유배 길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유배 생활이 『동의보감』 집필을 완성할 시간을 주었으니, 그는 전화위복의 방법을 아는 인물이었다. 지지부진하던 『동의보감』 집필을 유배지 의주에서 불과 2년 정도 만에 끝냈다.



 임진왜란이 소강상태에 있던 1596년 어느 날, 선조는 허준에게 의학서적을 편찬하라는 왕명을 내린다. 전란의 피폐함을 의학으로 극복하려는 의도였다. 선조는 올바른 의학이론에 우수한 처방을 가려내는 것 이외에도 약을 쓰지 않고도 건강을 관리하는 법, 국산약 활용을 특별히 강조했다. 허준은 궁중 내외의 쟁쟁한 의원인 양예수·정작·김응탁·이명원·정예남 등 5인과 함께 편찬 작업을 시작했으나 이듬해 정유재란으로 일이 중단되었다. 공동 편찬자는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1601년 무렵 선조는 다시 허준에게 『동의보감』의 단독 편찬을 맡겼다. 하지만 나이 일흔을 앞둔 그가 궁중의 으뜸 의원으로 너무 바빴기 때문에 일을 잘 진척시키지 못했다. 선조의 임종 무렵까지 채 절반도 끝내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유배가 없었다면 『동의보감』은 출현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의사와 환자 모두 간절하게 소망하는 건 모든 병의 원인·증상·예후 판단을 정확히 알아내는 것이다. 16세기 중반 인물로 의학에 밝은 사대부인 묵재(默齋) 이문건(1494~1567)의 『묵재일기』를 보자. 병증 파악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대목이 여럿 보인다. “아, 병증을 제대로 보았다면 병이 악화하지 않았으련만!” 그릇된 처방 후의 탄식이다. 퇴계(退溪) 이황(1501~1570)의 『퇴계전서』에도 자신과 가족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옛 처방집을 뒤적이나 신통치 않은 경우가 여럿 실려 있다. 두 사람 다 허준보다 약간 앞선 시기의 인물이다.



 이런 상황에 등장한 『동의보감』은 동아시아 의학이라는 큰 산을 올라가는 길을 표시한 나침반이었다. 허준은 여러 선현이 앞서 그린 의학지식을 바탕으로 삼고, 자신이 얻은 경험과 정보를 종합해 전인미답의 새 지도를 그려냈다.



 “환자는 자신이 앓는 병이 무엇인지, 그게 몸에 허해서 생긴 것인지 삿된 기운이 지나쳐서 생긴 것인지, 곧 나을 병인지 아닌지, 예후가 좋아질지 나빠질지, 살게 될 것인지 죽음에 이를 것인지 명확히 알게 되리라.” 이같은 허준의 말처럼 『동의보감』은 가까이는 묵재와 퇴계 같은 이들을 위한 책이었다. 나아가 “천하의 보물을 마땅히 천하와 더불어 하고자 할 것”이라는 중국판 편찬자의 말처럼 멀리는 세계인을 위한 것이었고 실제 그렇게 되었다.



 연세대 의대 여인석 교수는 서양의 내과학 분야 교과서로 100여년 이상 군림해온 해리슨의 『내과학』이란 책이 한 역할을 한의학에서 『동의보감』이 해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어떤 이들은 『동의보감』이 중국 의서를 짜깁기한 것이라고 혹평한다. 교과서란 원래 기존의 모든 연구 성과를 자신의 식견으로 잘 소화하여 정리해낸 것임을 모르는 오해의 소치다. 『동의보감』에는 모든 인용 문헌이 일일이 다 밝혀져 있으니 표절과도 거리가 멀다.



 허준이 만약 조선적 특수성, 지역성만 강조했다면 해외에서 인기를 그처럼 얻진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인정한 것은 의학 전체를 관통하는 저술의 수준이다. 이런 자부심으로 허준은 동의(東醫)라는 표현을 썼다. 이를 중국의학과 차별되는 별도의 조선의학을 세운 것으로 오해말기 바란다. 허준은 중국에 우뚝한 남의(南醫), 북의(北醫)에 견줄만한 당시 세계의학의 한 축으로서 동의를 내세운 것이다.



신동원 카이스트 교수



◆신동원=1960년생. 서울대에서 한국과학사 전공으로 박사학위. 영국 케임브리지 니덤 동아시아 과학연구소 객원연구원과 계간 ‘과학사상’ 편집주간 역임. 카이스트 한국과학문명사연구소에서 진행중인 ‘한국과학문명사 총서’ 연구책임자. 저서 『조선사람 허준』 『한권으로 읽는 동의보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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