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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조 백일장] 2월 수상작

중앙일보 2013.02.27 00:44 종합 25면 지면보기
[장원]



서(鼠)참봉이 사는 법- 이은주




105동 목련 아래 몇 년째 그가 산다



돌덩이로 막아 봐도 끓인 물을 쏟아 봐도



금세 또 딴 구멍 차려 머릴 쏙쏙 내민다



백여 마리 자식을 매년 낳아 키우려면



돌멩이 발길질과 빗자루 따귀에도



음식물 수거통 옆이 최고의 더부살이



온갖 욕 눈총에도 질긴 악취 들락대며



빈손으론 못 간다고 악착 떠는 참봉부부



그득한 군더더기에도 쥐구멍이 고만 밝다



◆이은주=1965년 서울 출생. 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 졸업.



[차상]



목민심서- 용창선




질척이는 창동 골목, 갈필로 부는 바람



닳아진 먹 같은 하루 해가 저물 때



소목장 솜틀기계에



목련 송이 벙근다



처마 끝 눈뭉치가 목덜미에 떨어지면



가슴 속 혈죽(血竹) 하나 호되게 꾸짖는다



붓 잡고 눈 가만 뜨면



먼 달빛의 기침소리



얼음장 밑 물고기를 어떻게 그릴 건가



잠 못 든 불빛 한 점 멀리서 깜빡이고



세상은 온통 눈보라



새 한 마리 길을 낸다



[차하]



빙하시대 탈출기- 정소산




월세고지 쌓이듯 빙판 위 눈 내리는 밤



툰드라 단칸방에 면벽하는 독거노인



굽어져 더 움츠린 등뼈, 입꼬리도 처졌다



공룡 알은 언제쯤 아궁이서 부화하나



상고시대 잿빛 흔적 비탈길에 흩뿌리고



백악기 따사한 햇살 눈동자 담아둔 채



아메바 곰팡이 꽃 검푸르게 진을 치고



차디찬 몸 달구려 검은 제 들어설 때



은하행 꽃수레 타고 달동네를 내려온다



[이 달의 심사평]



입춘·우수가 지나갔다. 꽃소식도 반가운데 이달은 투고작들의 수준이 다른 달보다 높아서 더 반갑다.



 2월 장원은 이은주씨의 ‘서(鼠)참봉이 사는 법’이다. 어떤 상황인지 그림이 잘 그려진다.



음식물 수거통 옆에 구멍을 뚫고 살아가는 쥐들의 눈물겨운 인생 극장이다. 그런데 여기에 세상의 어떤 모욕과 굴욕도 참아내며 억척스럽게 살아 자식을 키워내는 우리 소시민들의 모습이 그대로 겹쳐진다. ‘목련 아래’라는 공간 설정이 마지막 부분 ‘쥐구멍이 고만 밝다’를 받쳐주고 있는 것을 보면 치밀한 구성을 위한 고민의 시간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신선한 발상과 재미있는 전개 방식으로 새로운 형태의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낸 점도 좋았다.



 차상은 용창선씨의 ‘목민심서’다. 실학의 중심에 있던 정약용의 경세치용과 이용후생의 개혁사상이 잘 담겨있어 사뭇 엄숙해진다.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손수 ‘소목장’이 되어 ‘솜틀기계’를 만들기도 했던, 고금을 통해 몇 안 되는 훌륭한 목민관이었던, 그래서 늘 ‘얼음장 밑 물고기’같은 백성들을 위해 고뇌했던 다산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



 차하는 정소산 씨의 ‘빙하시대 탈출기’다. 일제시대 암울했던 조선인들의 극빈의 삶을 다룬 최서해의 ‘탈출기’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노인빈곤의 사회 문제를 우회적으로 잘 형상화했다. 다소 거친 감은 있으나 추운 겨울 달동네 독거노인의 삶과 죽음을 ‘빙하시대’를 연상하여 직조한 것도 좋았다.



심사위원=강현덕·이달균(대표집필 강현덕)



◆응모안내= 매달 20일 무렵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해 그 달 말 발표합니다. 장원·차상·차하 당선자에게 중앙시조백일장 연말장원전 응모 자격을 줍니다. 서울 중구 서소문로 100번지 중앙일보 편집국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 (우편번호 10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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