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차갑다, 아니 뜨겁다… 당신의 목소리

중앙일보 2013.02.27 00:40 종합 26면 지면보기
그의 음악을 듣고 있자면 바람을 타고 떠 다니다 바닥으로 내려앉는 듯하다. 흔들리는 옆 얼굴과 뒷모습을 찍은 앨범 커버처럼, 그의 음악은 바람 같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국의 제인 버킨’ 혹은 ‘한국의 뷔욕’이라는 홍보 문구에 혹해 CD를 걸었다. “네 귓가에…” 첫 소절을 듣는 순간 정신이 확 들고야 말았다. 이런 보컬, 이런 음악이 우리 나라에 있었나. 마치 ‘눈의 여왕’이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속삭이는 듯 차가우면서도 매혹적인 목소리. 정란의 1집 ‘NOMADISM(노마디즘)’을 만난 첫 느낌이다. 온 몸의 세포 하나 하나를 깨우고, 때론 전신에 소름을 돋게 만드는 음악. 때론 차갑고, 때론 온 몸이 녹을 듯 뜨겁고, 때론 향기롭고 달콤한 목소리는 강력한 유혹이다.


1집 ‘노마디즘’ 낸 정란

정란은 라틴 밴드 로스아미고스, 탱고 프로젝트 그룹 라 벤타나(La Ventana)의 객원 보컬로 활동했다. 세계적 재즈 피아니스트 조윤성과 함께 자라섬 국제 재즈페스티벌 메인 무대에 서기도 했다. 10여 년 간 재즈의 언저리에서 활동하던 그는 먼 길을 돌아 자신만의 음악을 들고 왔다.



 본명 조정란(31). 스튜어디스를 꿈꾸던 열 아홉, 담임 선생님을 따라 삼청동의 작은 음악 바에 갔다가 사장 내외가 시켜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 매일 노래하게 됐다. 연극 2편의 주인공을 맡은 적도 있지만 “또 하라고 할까봐” 다시 음악으로 도망쳐왔다.



 “재즈는 모든 걸 다 아우르는 음악이니 그 안에서 그때 그때 어울리는 음악을 했죠. 원스 인 어 블루문 같은 재즈 클럽에 서기도 했지만 그 순간을 즐기고 끝나는 즉흥성이 약간 안일하게 느껴졌어요. 저는 무언가 인이 박히거나 매너리즘에 빠지는 게 싫어요.”



 ‘노마디즘(유목주의)’이란 제목처럼 그는 정주하길 원치 않았다. 그의 음악 도 무어라 규정하기 어렵다.



 “음악을 설명하려 드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미술이야 캔버스에 점 하나 찍고 설명을 길게 하지만, 음악은 듣는 이가 빨아들여야 되는 거잖아요.”



 타이틀곡을 3번 ‘수중 고백’과 5번 ‘나의 용사’라고 뽑아내긴 했지만 이 앨범은 특별한 타이틀곡을 정하는 게 어울리지 않는다. 1번을 듣기 시작하면 바람에 몸을 맡기듯 자연스레 13번 곡까지 흘러가야 비로소 제 자리에 돌아오는 느낌이랄까.



 “CD에 제 발 사진을 프린트 했어요. CD를 틀면 제 발만 뱅그르르 도는 거예요. Never stop, always moving(결코 멈추지 말고 항상 움직여라).”



 앨범의 프로듀서는 네덜란드의 거장 음악학자 레이오 사마마의 차남인 루벤 사마마다. 헤이그 왕립음악원 출신으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그는 정란의 음악에 “슬프고 느린, 그러나 아름다운”이라는 컨셉트를 잡았다. 가사는 루벤이 쓴 8번, 11번 트랙을 빼곤 정란이, 작곡과 편곡은 정란과 루벤이 따로 또 같이 했다.



 “한국에선 프로듀서를 찾기 힘들었는데, 인연이 닿았어요. 서로의 음악성을 존경했기에 호흡이 척척 맞았어요. 이 세상엔 갈 곳도 겪을 일도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경험에 영향을 받아 내 음악이 앞으로 어떻게 펼져질지 감도 못 잡겠어요. 예상치 못한 대로 흘러간다는 사실이 정말 흥분됩니다.”



 ‘내 노래 들리거든/더 가까이 다가오게/(…)사랑을 주러 오는가/더는 받지 않으리라/바닷길처럼 아득한/그대 생명을 바치라’(‘Siren’ 부분)



 선원을 노래로 유혹해 바다에 잠기게 했다는 바다의 여신 세이렌, 정란에게 딱 들어맞는 이름이었다.



글=이경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