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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경 시인, 시의 궁극 실험하고 떠나다

중앙일보 2013.02.27 00:21 종합 31면 지면보기
전위적인 작품으로 한국 현대시의 영역을 넓힌 성찬경(사진) 시인이 26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83세.


현대시 영역 넓힌

 1930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와 동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56년 ‘문학예술’에 조지훈 선생의 추천으로 등단했고, 시 동인지 ‘60년대 사화집’을 주도했다. 성균관대 영어영문학과 교수와 한국시인협회장, 한국가톨릭문인회장을 역임했다. 2001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됐다.



 그의 작품 세계는 끊임없는 실험의 연속이었다. 그를 대표하는 것은 단어 수를 최소화해 의미의 밀도를 극대화하는 밀핵시(密核詩)다. 밀핵시는 요소시(要素詩)와 기시(氣詩) 등으로 확장되며 다양한 시적 실험으로 이어졌다. 요소시는 ‘의미의 다이아몬드’나 ‘의미의 라듐’과 같은 것으로 군더더기 말을 제한 시를 뜻한다.



 그의 전위적 실험은 75세이던 2005년 출간한 시집 『논 위를 달리는 두 대의 그림자 버스』(문학세계사)에 등장한 일자시(一字詩)에서 정점에 이른다. 한 글자가 한 행을 이루는 일자일행(一字一行)의 극단적인 실험은 의미의 무한한 확장을 가능케 했다는 평을 들었다. 그는 시집 후기에서 “많은 시간을 들여 궁리한 끝에 일자시 103편을 확정했다. 일자시는 50여 년에 걸쳐서 내가 추구해온 밀핵시론의 종국적 마무리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개성 있는 표현을 추구하는 시인은 시의 형식뿐만 아니라 운율에 있어서도 새로운 시도를 해 운문과 산문의 중간 정도인 우주율(宇宙律)이라는 리듬도 만들어냈다. 또한 시각과 청각 등 다섯가지 감각을 상응하는 것을 시의 본질로 삼는 오관연습(五官練習)을 주장했다.



 현대시에 영문학적 형식과 정서를 접목하고 전통과 어우르는 시 세계를 펼치는 등의 문학적 성과를 인정받아 월탄문학상과 공초문학상, 한국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작품 뿐만 아니라 넉넉한 인품으로 2008년에는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을 수상했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시류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존경받을 만큼 작품은 큰물처럼 깊고 넓으며, 인품은 햇살처럼 만물을 따뜻하게 만든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작품뿐만 아니라 고인은 예술인 가족으로도 유명하다. 부인인 이명환(75)여사는 수필가이고, 장남은 시인 겸 인디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의 기타리스트인 성기완(46) 계원예대 교수다. 지난 1월 아시아 예술잡지 ‘빛과 숲’이 제정한 제5회 바움문학상에서 고인(문학상)과 함께 작품상 수상자로 선정돼 화제가 됐다. 차남인 성기선(45) 이화여대 교수는 지휘자, 셋째인 딸 성기영씨는 시나리오 작가다. 가톨릭 신부인 넷째 기헌씨와 수학강사인 막내 기우씨만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빈소는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이며, 발인은 3월 1일 오전 9시, 장지는 충남 아산 선영이다. 02-3779-1918.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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