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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연금 개편 신중해야 한다

중앙일보 2013.02.27 00:17 종합 33면 지면보기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
좋은 취지에서 시작했으나 예상치 못한 일로 역효과가 나는 경우가 있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통합 문제가 그러하다. 많은 진통 끝에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통합 운영하는 ‘국민행복연금’의 얼개가 나왔음에도 논란이 쉽사리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박근혜 정부가 야심차게 준비해 온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가 제대로 닻을 올리기도 전에 암초를 만난 것이다.



 연금 개편 논의만큼 복잡한 사안도 없다. 온 국민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서다. 많은 이해관계자가 제기하는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한 해법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실타래를 푼다는 점에서 연금 개편 문제는 흔히 고차방정식을 푸는 것에 비유된다. 그래도 물리학적인 관점에서의 고차방정식은 단순한 편이다. 형평성 등 사회 구성원들이 느끼는 감정적인 측면을 계량화하는 작업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많은 논란이 있었음에도 기초연금을 조세로 조달하고 연금액을 차등 지급하기로 한 것은 잘한 결정이다. 문제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통합 운영이다. 일정 기간 보험료 납부를 전제로 연금을 받는 국민연금과 보험료 기여 내역과는 상관없는 기초연금의 제도 운영 원칙이 충돌할 수 있어서다. 오랫동안 보험료를 많이 낸 사람에게 더 많은 연금을 줘야 하는 연금정책과 소득이 낮은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줘야 하는 사회정책의 조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꼬인 실타래 몇 가지를 살펴보자. 열심히 보험료를 낸 덕분에 국민연금 받는 것인데, 왜 국민연금을 받는다고 기초연금 지급을 제한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이를 달래기 위해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길수록 기초연금을 더 주도록 했으나 비판도 적지 않다. 소득이 많은 안정된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길 터인데, 왜 이들에게 사회정책 목적의 기초연금을 더 주냐는 것이다. 직장이 불안정해 국민연금에 오래 가입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기초연금 차등 지급의 주된 기준이 65세 이상 노인의 70%인 것도 논란거리다. 극단적인 경우 소득인정액 1만, 2만원 차이로 기초연금 20만원 받는 사람과 4만원 받는 사람이 갈릴 수 있어서다. 노인 인구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70% 기준을 향후 어떻게 변경할 것인가도 논란거리다. 중위소득 이하 저소득층은 국민연금액이 많지 않아 20만원의 기초연금에만 의존할 가능성이 높은 것도 문제다. 특히 임의가입자(전업주부 등), 저소득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의 국민연금 이탈 유인이 높아 보인다. 이 경우 취약계층 국민연금 가입 독려 차원의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사업인 ‘두루누리 사회보험’의 정책목표와도 상충된다.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될 경우 국민연금은 보험료를 원천 징수당하는 봉급생활자와 고소득층 위주의 반쪽자리 제도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지금도 골칫거리인 국민연금 사각지대가 오히려 넓어진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처럼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 기존 제도가 주는 제약이 크다. 주어진 환경 및 제약 조건하에서 새로운 방향으로 제도 설계의 어려움을 지칭하는 말이 경로의존성(path dependent)이다. 25년 국민연금과 5년 동안의 어정쩡한 기초노령연금 족적이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 것이다.



 연금 개편 논의를 틈타 국민연금폐지운동처럼 국민연금을 흔드는 세력도 나타나고 있다. 보험료만 내다 정작 연금 한 푼도 못 받는 것 아니냐는 젊은 층의 불안도 증폭되고 있다. 국민행복연금이 국민의 갈등 유발 요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구체화 과정에서 신중 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윤 석 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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