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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국회선진화’시대, 박근혜 대통령의 선택은?

중앙일보 2013.02.27 00:15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
후세의 정치학 교과서는 2012년 5월 2일을 기점으로 한국 정치의 근본 질서가 뒤바뀌었다고 평가할 게 틀림없다. 바로 국회선진화법이 국회를 통과한 날이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국회선진화법은 정치제도의 측면에서 1987년 개헌 이후 가장 중대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이, 심지어 일부 정치인마저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해 대선이란 빅 이벤트에 가려 이 사안을 제대로 음미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국회선진화법이란 다수당이라도 의석수가 180석(재적의원의 5분의 3)에 못 미치면 법안(예산안은 제외) 강행처리를 불가능하게 만든 ‘국회법 개정안’을 가리키는 말이다. 과거엔 야당 소속 상임위원장들이 법안 처리를 하지 않으면 다수인 여당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동원해 본회의에서 표결을 강행했다. 속칭 날치기다. 18대 국회만 해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나 미디어법 등이 이런 식으로 처리됐다.



 그러나 이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이런 일을 꿈도 못 꾼다. 국회선진화법이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이나 국가 비상사태 등으로 엄격히 제한해 놨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이 당론으로 특정 법안을 반대하고 나서면 새누리당은 속수무책이다. 민주당의 저지를 돌파하려면 본회의나 상임위에서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해당 법안을 신속처리 대상으로 지정하는 길밖엔 없는데 현 새누리당 의석(153석)으론 어림도 없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하고 집권당이 다수를 확보해도 통과가 안 되는 법안이 생긴 것이다. 야당의 거부권은 절대적이다!



 현재 국회선진화법은 정부조직법의 발을 묶으면서 위력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정부가 출범했는데도 정부조직법이 처리가 안 되는 상황이면 과거 여당에선 직권상정 카드를 만지작거릴 때다. 그러나 지금 새누리당은 민주당의 ‘선처’만을 기대하는 처지다. 새누리당에선 “국회선진화가 아니라 국회식물화”라는 분통 속에 법 개정 주장도 나오지만 그마저도 ‘5분의 3 룰’을 통과해야 한다. 되돌리는 게 불가능하단 얘기다.



 박 대통령에겐 세 가지 대응책이 있다. 첫째, 예전 대통령들처럼 야당 의원을 빼와 180석을 채우는 방법이다. 간단하긴 하지만 현 정치구도에서 실현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둘째, 장기 대치를 감수하고 장외 여론으로 야당을 굴복시키는 방법이다. 야당도 다음 선거를 치르려면 여론을 무시한 채 막무가내로 발목 잡기는 어렵다. 다만 이 같은 전략이 먹히려면 청와대가 평소 대통령 지지율 관리에 많은 신경을 기울여야 하고 오피니언 리더 그룹과의 꾸준한 소통도 필수적이다. 셋째, 정책 입안 단계부터 야당과 긴밀히 의견을 교환하는 방법도 있다. 야당에 권력의 일부를 나눠 주는 대신 국정 운영에 대한 협력을 보장받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할진 두고 봐야 한다. 다만 분명한 하나는 18대 대통령의 권력이 전임자들보다 줄었다는 것을 감안하지 않고 세운 모든 입법 과제는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김 정 하 정치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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